“너 있으면 탈중국도 OK?”...한미일·유럽 앞다퉈 ‘러브콜’ 하는 이 지역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4. 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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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8-1] 서정인 前 주 아세안 대사

지난해 11월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한 한중일 정상들.
“아세안, 한국 무역 최대 흑자시장으로 부상”

한국에게 아세안이 새 버팀목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아세안 교역 및 무역 수지가 2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미국을 넘어 최대 무역 흑자 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했으나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는 급감했습니다. 중간재 대부분을 자급하게 된 중국이 반도체 정도를 빼면 이제 더 이상 한국산 물품을 수입하지 않게 된 것이 주원인으로 분석되고 있죠. 올들어 지난 2월까지 대(對)중 수출이 30% 급감하면서 올해 한중 수교 30여년만에 처음 대중 교역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아세안에 주목하고 있는 건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경제적 가치는 물론 ‘지정학의 귀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요즘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이 앞다퉈 아세안에 공을 들이고 있죠. 서정인 전 아세안 대사는 아세안을 미중 분쟁의 최대 수혜지 이자, 지금 한국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상생과 번영의 파트너로 꼽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다음은 일문 일답.

Q.지금 아세안이 우리 경제와 안보에 왜 그리 중요한가?
A: 키워드는외교·경제 다변화, 지정학적 갈등이다. 중국의 산업정책 변화 및 미중 디커플링으로 한국에게 중국을 보완할 시장이 더욱 필요해졌다. 아세안이 지금 우리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정도인데, 향후 5%대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중국의 완충지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성장전망이 불투명 할수록 아세안과의 경제 협력은 더 중요해지며, 글로벌 가치사슬의 지역화 아세안 중심 공급망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미·중간 범용 제품 분야에서는 디커플링이 쉽지 않지만 안보 함의가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는 이미 디커플링으로 가고 있다. 아세안도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입장에서 지정학적 갈등 구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Q.미중일, 유럽 강국들이 앞다퉈 아세안에 공들이는 이유는?
A: 일단 경제 잠재력이다. 현재 아세안 인구가 6.7억 정도 되는데 2050년 8억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평균 연령이 한국은 43세 정도인데 아세안은 30세 정도다. 이런 풍부하고 젊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거대 시장이 있다. 젊은 인구는 빠른 디지털화로도 연결된다. 앞서 말한 높은 경제성장률은 덤이다.

자원도 풍부한데 석유, 천연가스, 석탄도 생산되지만 특히 4차산업혁명 관련 핵심 광물인 니켈이 세계 최대로 매장돼 있다. 이외에 주석, 보크사이트 등 기타 광물과 요소수, 팜유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치권력, 즉 지정학적 가치다.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핵심 통로로 한중일 등 아시아 주요국의 수출입 물동량의 30% 이상, 특히 중동 원유의 80~90%가 경유한다. 중국 일대일로 전략의 시작이 동남아가 된 이유 이기도 하다.

EU도 아세안에 대한 누적투자액이 세계 2위다. 특히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서 경제 활로 다변화의 일환으로 아세안을 점찍었다.

무엇보다 아세안의 장점은 EU 다음으로 성공한 아세안공동체와 이들이 중심이 되는 동심원적 다자 플랫폼을 꼽을 수 있다. 예컨데, 아세안 경제 공동체(AEC)는 2015년 출범 이후 단일시장과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ARF, ASEAN+3, EAS 등 아세안이 운영을 좌우하는 회의에는 미, 중, 일 포함 주요 선진국 정상들이 모두 참석하곤 한다.

Q. 한계점이나 리스크는 없을까?
A: 회원국간 그리고 회원국 내 소득 격차가 크다. 아세안 10개국은 3개 소득 국가군으로 이뤄져 있다. 싱가포르, 브루나이 고소득군, 말레이, 태국, 인니, 필리핀 중간 소득군, 소위 CLMV로 불리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저소득군이다. 싱가포르와 미얀마는 각각 1인당 소득이 7만불, 1천500불정도로 50배 가량 차이 난다. 이런 격차는 아세안 공동체 진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아직 아세안 역내 교역 규모가 23%로 EU(60%)와 USMCA(40%)에 꽤 못 미친다. 비관세 장벽도 높다.

또한 안보 의식이 상이해 친미, 친중으로 갈려 단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2012년 친중성향 캄보디아가 의장국일 당시 남중국해 관련 의장성명이 45년만에 채택되지 못한적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회원국들간 입장이 다르다.

이외에 인프라가 부족하고 부정부패로 행정이 불투명하다. 특히 R&D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빈약하다. 싱가포르가 아세안에서 최고 부국으로 발전한 이유가 위치 덕에 중계무역이 발달 한 것도 있지만 R&D 및 교육에 대한 투자에 있어 다른 아세안과의 차별점이 주요했다고 본다.

Q. 아세안간 소득 및 개발 격차가 큰 원인은?
A: 결국 정치와 제도의 문제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로 정치와 제도 문제를 중시했는데, 아세안도 여기 해당한다고 본다. 제도관련 수출지향적 개방경제냐 폐쇄경제냐의 차이에 갈린 경향이 있고, 앞서 언급한 R&D 등 기술투자 여부도 관건이다.

아세안은 국가내 격차도 두드러진다. 싱가포르는 고소득군이지만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가 0.47(한국 0.33)이니 매우 심한 수준이다. 그래서 서울과 비슷한 면적인 싱가포르에 싼 점심을 파는 호커센터가 140개가 넘게 있는 것이다. 국가내 빈부격차는 종사 분야가 수출지향이냐 내수지향이냐에 따라서도 갈리는 특성이 있다.

여기에 상속세와 누진세가 없는 곳이 많아 부의 대물림을 부추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득권 중심 조세 정책은 경제사회 구조가 경직돼있다는 걸 뜻하며 빈부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Q.아세안 경제는 화교자본이 잡고 있다던데 왜 그런가? 문제는 없나?
20세기 초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1세대 화교의 모습.
A:전 세계 화교의 60%가 아세안에 있다. 아세안 화교 인구는 2천 6백만명 정도지만 아세안 전체 인구의 4%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이 지역 경제를 주름잡고 가장 많은 부를 지배한다. 아세안 10대 부호를 보면 1명 정도 빼면 모두 화교다. 때문에 화교 자본에 대한 이해는 아세안 소득분배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세안 상장기업 총 가치중 상위 10대 화교 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인도네시아 57%, 필리핀 52%, 태국 46%, 싱가포르 26%, 말레이시아 24%였다. 부가 소수 화교 가문에 집중됐다는 의미고 이는 국가내 소득격차의 요인일 수 있다.

화교 경영의 3가지 키워드는 가족경영, 꽌시, 정경유착이다. 문제점이라면 이런 경영은 불투명하고 부가 집중되다 보니 사회 전반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또 이들이 부동산, 금융 등 서비스업에 집중하면서 제조업 분야는 다국적 기업들이 차지하게 됐고 오늘날 결과적으로 아세안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게 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정경유착 문제에 화교 기업인만을 탓할순 없다. 정경유착은 정치인의 필요에 의해 초래됐기 때문이다. 개발독재체제에서 국민들에게 경제발전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던 권력자들은 현지인보다 기업가 정신이 있었던 화교기업인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정치권력과 화교자본의 유착은 사회적 부패구조의 결과였다.

Q. 한국은 아세안에서 유독 베트남에 집중해왔다. 베트남에 계속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분산을 모색해야할까?
A: 수출과 투자, 공급망을 다변화 하는 ‘베트남 플러스 원’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코로나 펜데믹 이후 공급망 교란으로 기업들도 효율성만 고려할 수 없고 추가 투자를 해서라도 복원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최근 2인자인 국가주석이 사임하는 등 베트남 정치의 불확실성이 커진점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 일본 기업들은 아세안에서 태국에 집중했었는데 2011년 홍수로 특히 많은 피해를 봤다. 도요타, 혼다 등 자동차 공장이 침수됐고 도시바 등 전자업체들도 타격을 받았다.

이후 일본은 ‘태국 플러스 원’ 전략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에 공장을 신설했다. 한국이 베트남에만 집중한 사이 일본은 메콩 5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태국,미얀마)모두에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수출입규모가 일본을 앞서지만 나머지 국가에서는 일본이 앞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의 대안 후보지도 메콩지역 또는 인도네시아가 제격이라고 본다. 메콩지역 인구는 2억명을 훌쩍 넘고 한국 면적의 9배 크기다. 태국을 중심으로 남북,동서, 남부 경제회랑이 완공돼 생산과 물류지도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는 중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리더국가인데, 그동안 한국은 투자가 상대적으로 미미했기 때문에 발전 여지가 많다. 아울러 친환경차 분야에서 잠재력도 있다. 지난해 현대가 전기차 공장을 열었는데 세계 인구 4위라는 거대 시장 뿐 아니라 다른 아세안 시장을 공략하는 거점 생산국으로서 의미가 있다.

Q. 향후 아세안이 얼마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나? 중국을 완전히 대체할순 없을까?
A: 현재 IMF 등 기관들은 아세안 성장률을연 5%대로 보고 있다. 세계경제 성장률 평균치 3% 보다 상당히 높다.

수년전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세안의 미래를 낙관, 비관 두개 시나리오로 전망한 바 있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이고 통상환경이 바뀌었지만 시사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낙관적 시나리오는 연 6.4%성장률, 국내개혁을 통한 셍산성 제고 및 지역협력 강화시 2030년 1인당 국민소득이 9천불, 즉 지금의 3배 이상 증가 할것으로 봤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고 재난, 기후변화, 영토분쟁, 국내 정치 긴장으로 2047년이 돼서야 1인당 국민소득이 9천불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론 3가지- 향후 30년 인구 보너스 효과, 미중 경쟁 격화로 더 커지는 반사이익, 아세안경제공동체 진전으로 늘어나는 역내 교역- 에 주목하고 싶다. 그래서 낙관적, 비관적 시나리오의 중간이 미래 아세안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한국 교역에 있어 홍콩까지 합친 중국 시장의 비중이 25%, 아세안은 16%정도다. 아직 차이가 있기 때문에서 당분간 대체보다는 보완시장으로 보는게 좋을 것 같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경제 다변화의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아세안이라는 계란을 담아두고 있긴 하나 아직은 중국이라는 계란에서 필요한 부분도 고려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 중국시장은 계속 어려워질 것이고 비중이 낮아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아세안 비중은 늘 여력이 많다. 때문에 머지 않아 양쪽 비중이 비등해 질 것이고 역전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음 회에선 ‘미중대립과 남중국해 분쟁속 대한민국과 아세안의 인·태 전략’ 에 대한 의견을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과 자세한 내용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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