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KBS 사면초가…수신료 분리징수 강행만이 답일까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야 공세를 받았지만, 대통령실이 국민제안에 부친 건 이례적이다. 이번 국민제안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견된 점을 차차 하더라도, KBS를 향한 여론이 부정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중한 논의없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강행하면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을 시 공영방송 존폐 위기만 자초할 수 있다.
◇국민제안 오류
KBS 수신료는 월 2500원이다. TV가 있는 가정은 전기요금에 포함해 일률적으로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수신료 일괄 징수는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시청자들이 TV에서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터넷TV(IPTV)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요금을 이중 부담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통령실은 지난달 9일부터 이달 9일까지 한 달간 국민제안에 'TV 수신료 징수방식(TV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 징수) 개선' 주제를 올리고 의견을 들었다. 약 5만6016명(96.5%)이 수신료와 전기요금 분리 징수에 찬성했고, 반대는 2019명(3.5%)에 그쳤다. KBS는 이번 국민제안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국민제안은 동일인 중복 투표가 가능하고, 정당 차원 투표 독려 등이 이뤄진 만큼 여론 수렴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수신료를 둘러싼 국민들의 오해가 적지 않은데, 구체적인 설명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은 방송법 개정보다 시행령을 바꾸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방송법 제64조에 따르면, TV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사에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 법 개정없이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시청자에게 돌려주면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KBS 오성일 수신료국장은 "'수상기 소지자는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가면 그 자체가 문제"라며 "수신료를 내도 되고 안 내도 되는 제도는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없는 사례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법을 어기는 경우가 발생되는 게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공영방송 흔들
수신료 분리징수 시 KBS는 재정적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KBS 연간 운영비는 약 1조4000억원~1조5000억원이며, 이중 수신료 비중은 45% 내외다. KBS 수신료는 43년째 2500원으로 동결 돼 있으며,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높지 않은 수준이다. 독일 연간 수신료 220유로(31만5605원), 영국 159파운드(26만1157원), 일본 1만4700엔(14만5502원)의 5분의 1, 10분의 1에 불과하다. 유럽방송연맹에 가입한 56개국 중 23개국이 수신료를 유지하고 있고, 이중 50% 이상인 12개국은 전력회사가 수신료 징수하거나 감당했다. 무엇보다 분리 징수하더라도 수신료 납부 의무는 유지, 추가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1994년부터 전기요금과 통합해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일괄 징수하고 있는데, 분리 징수 시 효용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KBS에 따르면, 수신료 분리 징수 시 수익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비용은 2배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공영방송 사업이 당장 존폐 위기에 처하고,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까닭이다. 더욱이 수신료 분리 징수로 재정이 악화되면, 당장 글로벌 미디어 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KBS를 포함해 지상파 규제는 많지만, 넷플릭스 등 OTT는 별도 규제없이 시장에 들어와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KBS 자산을 활용해도 OTT와 경쟁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낮다.
◇제도 개선 뒷받침
KBS는 사면초가에 처했다. 그동안 방만 경영과 보도·시사 프로그램 공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고, 시청자 불만이 누적 돼 수신료 분리 찬성으로 이어진 면도 없지 않다. 대하사극과 다큐멘터리, 클래식 프로그램, 국제·대외·장애인 방송 등으로 공영방송 역할을 강조했지만, 점점 시청자 채널 선택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KBS 드라마는 몇 년째 부진을 거듭, 수목극을 폐지한 상태다. KBS 2TV 주말극은 40% 이상을 찍어 시청률 효자로 불렸지만, 백진희 주연 '진짜가 나타났다!'는 16%대까지 떨어졌다. KBS는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편성을 고려했지만, 막대한 제작비(약 150억원)를 부담스러워 해 놓친 뒤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공영방송으로서 가치·신뢰도는 점점 떨어지고, 케이블채널·OTT 등과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MBC·SBS 역시 지상파 위기를 맞았지만, 넷플릭스·티빙·웨이브 등 국내외 OTT와 손을 잡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점과 비교됐다.
공영방송 수신료 문제는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추세다. 미디어환경 변화 속 수신료 분리징수를 성급하게 시행하기 보다, 1987년 제정된 방송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이 수신료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인상에도 부정적인 만큼, 공영방송 신뢰도를 회복하고 인식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 KBS 최선욱 전략기획실장은 "유럽 27개국은 자국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동대응하고 있다"며 "대통령실에서 분리징수 자체 이슈보다, 우리 미디어산업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큰 그림을 제안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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