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한손엔 드릴 한손엔 가위…은퇴 소방관의 '나눔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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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나갔던 첫 화재 출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주택에서 불이 났는데 장애가 있는 분이 미처 빠져나오질 못해서 그대로 돌아가셨더라고요. 마음 아픈 기억 탓에 소방 퇴직 후에도 화재 취약계층에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때의 기억을 30여년간 가슴에 품고 살던 김씨는 2018년 8월 명예퇴직 후 이듬해 1월부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약자 등 화재 취약계층의 주거지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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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31년 전 나갔던 첫 화재 출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주택에서 불이 났는데 장애가 있는 분이 미처 빠져나오질 못해서 그대로 돌아가셨더라고요. 마음 아픈 기억 탓에 소방 퇴직 후에도 화재 취약계층에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삐용삐용'. 새내기 소방관으로 출근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고요하던 소방서에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화재 출동에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잠시, 김이구(55)씨는 출동 대기 중이던 소방 펌프차에 바삐 몸을 실었다.
1992년 강원 삼척시 한 마을 화재 현장으로 향한 김씨는 전소된 주택 안에서 불에 타 심하게 훼손된 시신을 발견했다.
망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화마(火魔)에 변을 당한 뒤였다.
그때의 기억을 30여년간 가슴에 품고 살던 김씨는 2018년 8월 명예퇴직 후 이듬해 1월부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약자 등 화재 취약계층의 주거지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다시 누군가가 화재 현장에서 무참히 돌아가시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화재 취약계층 같은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고 우선 안전한 곳에 몸을 피하는 게 중요해요. 이분들에게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해드리기 위해 제가 이리저리 다니는 이유예요."
김씨는 지난 2월 연기가 발생할 경우 음향 경보를 울려 화재 위험성을 알리는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달기 위해 온 마을을 누비기도 했다.
그는 정라1통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장애인 등 화재 취약계층 28가구에 감지기를 2개씩 설치했다.
그렇게 삼척 곳곳에는 주식회사 농심으로부터 무료로 지원받은 감지기 300개가 각 주택 천장 위에 자리를 잡았다.
퇴직한 소방공무원으로 구성한 삼척재향소방동우회 회원 10여명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70∼80대로 적지 않은 나이의 회원들은 주름이 깊게 패고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 됐어도 봉사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김씨와 동우회 회원들은 마을에서 자발적인 '화재 예방 캠페인'을 벌이거나, 직접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로도 활동할 만큼 봉사에 '진심'이다.
30년 가까운 소방관 생활을 마친 김씨는 또 다른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기도 하다.
군대에서 이발병을 했던 경험을 살려 책상에서 엉덩이 싸움을 벌인 끝에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실기시험마저 곧바로 합격해 그는 은퇴 한 달 만에 어엿한 이발사가 됐다.
그의 손재주는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닌 또 다른 봉사 활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찾아 무료로 머리를 손질해주고 그들의 뒤편에 서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곤 한다.
머리칼에 내려앉은 시선이 정돈되지 않은 옷가지나 어지러이 흩어진 살림살이로 향할 때면 빨래와 청소까지 하고 떠나는 게 김씨다.
김씨의 이발소 '이발청춘'엔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젊은 날, 그가 품었던 따뜻한 마음이 서려 있다.
이런 탓에 그는 어느새 마을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됐다.
"거동이 어려운 분들을 찾아 다니며 봉사하는 일이 고되긴 해도 뿌듯할 때가 많아요. 가끔은 절 가족보다 더 반기거든요. 소방관으로 살면서 국민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서 어떻게든 그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봉사하면서 살래요."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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