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확대 우려 속 재정준칙 법제화는 오리무중[세종백블]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올해 들어 기획재정부가 우선적으로 법제화를 추진한 두 가지. 반도체 업계 지원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과 재정준칙 마련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조특법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니 기재부가 현재 올인하고 있는 것은 국가재정법 개정안. 개정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 비율을 2%로 축소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른바 ‘재정준칙’이다.
정부가 재정준칙 마련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재정 건전성 제고의 목적이 크다.
올해 2월까지 걷힌 국세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7000억원이 줄었다. 역대 최대 감소폭이다. 세수 진도율도 13.5%로 2006년(13.5%) 이후 17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살림(재정)이 힘들어 지는 건 명약관화한 일. 2월말 누계 관리재정수지는 30조9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적자폭이 10조9000억원 커졌다. 기재부가 올해 예산에서 추산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는 마음이 급한데 이에 대해 ‘외부’에서는 시각차가 있어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재정준칙 도입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재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재정준칙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법제화보다는 취지에 맞는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 등 재정준칙 도입에 엇갈린 견해를 내놓았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재정지출을 총수입보다 많이 가져간 상황에서 적자는 예상됐던 바로, 현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을 말할 게 아니라 재정준칙을 더 도입해야 한다”며 “‘지키도록 노력하자’는 신의칙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법제화가 빨리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재정준칙을 도입해 시행 중인 국가는 106개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서는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36개국이 이미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반면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준칙은 있으면 좋다”면서도 “단지 법제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취지에 맞는 운영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당 입장에서도 경기가 안 좋아져서 적자 지출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준칙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도 셈법이 복잡하다.
국회 기재위는 지난 12일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었으나 재정준칙 논의는 사실상 없었다. 앞서 정부가 2020년 10월 재정 준칙 법제화 방침을 밝혔으니 2년 6개월째 표류 중인 셈이다.
대신 사회간접자본(SOC)과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지원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국비 지원 5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예타 면제에 대해 “나라도, 국민도 없이 오로지 정권의 이익을 위한 총선만 있다”고 맹비난한 국민의힘은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데는 소극적이면서도 지역 사업이 걸려 있는 예타 면제에는 적극적이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정준칙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의 최고 10%를 사회적기업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사회적경제법’을 함께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계산과 여야 간 밀당에 나라 살림살이는 하루가 다르게 더 힘들어지고 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나 경기둔화 시에는 적용 예외를 인정하고 있으니 재정 운영의 유연성 제고는 지금 당장은 제쳐두고 현 재정 악화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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