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Zoom] "니가 거기서 왜 나와?" 멕시코 자생 선인장 제주에 떡하니

제주방송 신동원 2023. 4.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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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제주의 작은 해안가 마을, 월령리를 찾으면 색다른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막에나 있을 법한 선인장이 해안가 바위틈이나 농경지 등 마을 곳곳에서 자라는 모습인데요.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월령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멕시코가 원산지로 알려진 이 선인장이 제주의 해안가 마을에서 자생하게 된 배경과 그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 바닷가 마을 월령리 명물은 '선인장'

제주시 서쪽 한림읍에 있는 월령리는 지난해 말 기준 181가구 342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입니다.

행정에선 200년 전후로 월령리의 설촌 시기를 소개하고 있지만, 마을 향토지 기록이나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참조하면 월령리의 설촌 시기는 약 400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의 특징을 꼽자면 단연 선인장을 들 수 있습니다.

해안가 검은 색 현무암 바위 사이에 자리한 초록색 선인장들은 커다란 바람개비 모양의 흰색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제주 앞바다를 배경으로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을 뽐냅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마을 돌담 사이로 보이는 선인장의 모습도 이색적입니다.

집을 둘러싼 선인장은 쥐나 뱀의 접근을 막아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여름엔 노란색 꽃을 띄우고, 겨울엔 보라색 열매를 맺어 질릴 틈 없는 다양한 매력을 선보입니다.

월령리는 우리나라 유일한 선인장 자생지입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손바닥 모양을 닮았다고 해 '손바닥 선인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4·3희생자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 삶터(생가) 마당에 있는 선인장


그렇지만, 선인장이 언제부터 월령리에서 자라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한 시기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마을 이장님이나 90대 어르신도 그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입을 모을 뿐입니다.

제주4·3 생존 희생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월령리에 살았던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도 살아 생전 선인장을 재배해 용돈벌이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보존된 생가 마당에도 할머니가 기르던 선인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인장 재배가 본격화된 시기는 비교적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군락지


■ 관상용에서 '효자' 소득 작목으로

선인장은 한때 월령리 주민들의 살림살이에 큰 보탬을 주던 효과 소득 작목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선인장이 '귀한 몸'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닙니다.

선인장 열매의 효능이 알려지고 선인장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퍼지자, 1990년대부터 서서히 선인장 재배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마을에선 너도나도 선인장 재배에 나서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콩이나 조, 보리를 심던 밭에 선인장을 재배했는데, 한창 때는 마을 경작지의 70%에서 선인장을 재배했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주민도 땅만 갖고 있다면 선인장 농사에 뛰어들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선인장 재배가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잡초만 제거해 주면 됐기 때문에 다른 작물에 비해 품이 덜 든다는 이유였습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재배지


물론, 가격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선인장은 열매를 따서 판매하는 것인데, 수요가 많았을 때는 선인장 열매 15kg 한 상자에 15만 원씩에 팔렸다고 합니다.

단순 관상용으로 자생 선인장을 관리하던 수준에서 마을의 주요 소득 작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 2001년 9월에는 마을 선인장군락이 천연기념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마을에 선인장 조합까지 생겨 운영됐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0년쯤 전부터 가격이 시들해지면서 선인장 재배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월동채소에 자리를 내두고 마을 내 경작지 가운데 20% 정도에서만 선인장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 그래서 어떻게 제주에 뿌리 내렸나?

선인장의 연원은 북아메리카 멕시코로 추정됩니다.

제주에서 약 1만km, 2만5천 리(里) 정도 떨어진 곳이 원산지인 셈입니다.

도대체 선인장이 이 먼거리를 건너와 제주에서 자라게 됐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는데, 최근 이러한 내용을 알아보는 연구용역이 추진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제주자치도 세계유산본부가 추진한 발주한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 종합학술조사 용역'이 그것인데요.

이 연구 용역은 지난 2월 21일 최종보고회를 갖고, 보고서에 대한 마무리 보완 작업에 이른 상태입니다.

연구 용역은 월령리 선인장의 종 분류와 개체수, 생육상태 등을 파악하고, 천연기념물인 선인장 군락의 보존 및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주시 월령리 선인장


이 보고서가 최종 공개되는 데에는 약간의 시일이 소요될 예정이지만, 선인장 유입에 관한 이야기도 보고서에 담길 예정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멕시코에 있던 선인장의 씨앗이나 열매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제주 해안가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는 설입니다.

보고서에서는 이 가설을 비롯해 '당동 하르방'(할아버지의 제주어)이라는 인물이 표류해 온 종자를 심었다는 설과, 원양어선에 의해 유입됐다는 설 등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주자치도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선인장 유입설에 관해서 직접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단정 짓지 못한다"면서도 "이번 용역에서 제주로 선인장 종자가 유입될 경로나 가설에 대한 설명을 정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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