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녀와 별감은 약재 창고 한쪽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두 사람의 애정 행위는 점점 과감해졌다.
조금 더 수위를 높이려는 찰나, 침술사 하나가 약재를 들고 둘의 공간에 침범한다. 화들짝 놀란 별감을 내의녀가 안심시키며 스킨십을 이어간다. “안 보여. 안 보여. 소경(시각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야.”
‘올빼미’(2022)에서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에피소드다. 일터에서 비밀 연애를 하다 들킨 사람은 빠르게 자세를 정돈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커플은 애정 행각을 계속한다. 어차피 못 보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짓이나 해도 괜찮다고 여긴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극에 재미를 더하는 양념 같은 일화를 넘어선다. 이 영화에서 공포를 빚어내는 핵심 재료는 바로 감각 또는 인지 기능이 제한적인 사람을 기만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남은 의문, 여기서 시작한 팩션 “목격자가 있다”
전체 내용과 콘셉트를 짧게 살펴보자. 영화는 팩트와 팩트 사이에 픽션을 덧대 만든 팩션이다. 청에 인질로 잡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가 약 2개월 만에 의문스럽게 죽은 역사적 팩트에 뿌리를 내리고, 죽음의 배후에 아버지인 인조(유해진)가 있다는 픽션으로 가지를 뻗는다.
인조에 의한 독살설은 새로운 게 아니니 그 자체로 흥미로운 픽션이 되긴 어렵다. 영화는 아무도 본 자가 없기에 언제까지나 ‘설’로 남아야 하는 독살 현장에 사실 목격자가 있었다는 상상력을 접해 개성 있는 이야기로 발화(發花)를 도모한다.
그 목격자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다소 모순적으로 들리는 설정이 작품의 차별점이다. 인조에게 독침으로 세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어의가 독살 현장에 맹인 침술사를 동반한다. 사실 어의 혼자 들어가는 게 독살의 비밀 유지를 위해 최선이겠지만, 침술을 보조할 최소한의 인원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침술사를 조수로 데리고 들어간다면 비밀을 유지하면서도 독살의 성공적 수행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하지만 어의가 몰랐던 사실이 있다. 경수는 완전 실명이 아닌 주맹증이라 밤에는 약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불을 껐더니, 눈앞에서 어의가 세자를 살해하고 있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자 외려 앞을 가장 잘 보는 상태가 된 경수는 자기 앞에서 세자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공포스럽게 그려진 신이다. 세자를 치료하는 줄로만 알았던 공간에서 빛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살해 현장으로 바뀌는 연출, 이목구비에서 피를 쏟아내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세자의 얼굴, 긴장하는 경수의 심장 박동을 닮은 배경 음악 덕분이다. 어의가 경수의 실명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날카로운 침을 눈앞까지 들이밀 때도 서스펜스가 있다.
살인을 목격하는 건 그 자체로 공포스럽지만 경수 입장에선 더 무섭게 느껴진다. 자신을 향한 세상의 악의가 적나라하게 시각화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할 어의가 경수의 목전에서 살인을 범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숨겨야 할 범죄를 경수에겐 굳이 감추려 들지 않은 것이다.
어의에게 경수는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일 뿐이어서다. 자신이 구태여 경수에게 설명하지만 않는다면 그 살인은 없었던 일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 나를 이토록 완벽하게 기만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누구나 소름 끼칠 것이다. 어의가 자기 치부를 감춰야 할 ‘타인의 목록’에 경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의는 경수 앞에서 아무 일이나 벌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은 것이다.
마음씨 좋은 부부는, 경수에게 정량보다 적은 고기를 건넸다
독살 신은 영화가 시작한 지 약 50분만에 나온다. 감독은 해당 장면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탄탄한 사전 작업을 한다. 어의가 살해 현장에 특별한 의심 없이 경수를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을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세상이 늘 경수를 기만해 왔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비밀 연애 커플 외에도 경수를 속이려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동네 침술사이던 경수가 궁으로 들어가게 됐을 때,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던 정육점 부부도 좋은 예다. 친절하고 상냥한 부부는 고기를 담다가 덩어리 하나를 밑으로 슬쩍 떨어뜨려 정량보다 적은 양을 건넨다. 고기를 받아 든 경수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자 “뭐 문제 있나?”라며 슬쩍 떠 본다.
경수를 돕던 동료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경수를 궁으로 안내하던 도중 길을 잘못 들고, 경수가 이를 지적하자 “지름길로 가는 것”이라고 둘러댄 후 제자리에서 빙 돌아 궁으로 향한다. 모두 시각장애인인 경수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전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경수는 상대가 자신을 기만한 걸 모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정 행각을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 거친 숨소리를 통해 두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육점에서는 손에 건네받은 고기 무게가 가볍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경수를 속인 심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앞에선 더러운 행동도, 음탕한 말도, 간악한 행위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로의 부족한 감각을 모아, 세상을 더 또렷하게 인지하기
경수는 가상의 인물이다. 인조에 의한 세자 독살도 여전히 ‘설’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역사적 교훈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시각장애를 대하는 기만적 태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다. 이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이어져 온 인간의 어두운 얼굴에 대한 창작자의 명민한 관찰이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팩션인 이 영화에 핍진성(그럴듯함)을 부여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감독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능이 제한적인 상대방을 속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존재란 것이다. 영화에서 소재로 삼은 건 신체장애이지만, 유사한 사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을 앞에 두고, 한국어로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한국인이었다면 부끄러워서 못 했을 말을 주저 없이 내뱉는다.
고객을 소외시키려고 직원들끼리 업계 은어로 대화한다든지, 어른들끼리 아이 앞에서 하기 부적절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애는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고 여기는 것도 같은 경우다.
물론 세상엔 남을 속이려는 인물만 있는 게 아니기에 희망이 존재한다. 극에서 그린 소현세자는 기만적 인물들의 정반대 편에 서 있으면서 인간성이 무엇인지 사유하게 한다. 세자는 경수가 어두운 곳에서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확대경을 선물한다.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타인의 감각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삼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남과 연대하려는 세자의 태도가 결국 경수의 양심을 자극해 억울한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게 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어느 영역에선 남보다 제한적인 감각 기능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남의 인지 기능이 제한적이라며 비웃고 속이는 데서 쾌감을 느낄 것인지, 서로의 부족한 감각을 모아 세상을 좀 더 뚜렷한 모습으로 인지할지 선택해야 할 일이다.
‘씨네프레소’는 OTT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영화와 드라마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