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찰·소방이 구토물 치우랴 옷 입히랴…전국 최초 ‘주취해소센터’ 24시

노경민 기자 2023. 4. 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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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첫 단순 만취자 보호시설 부산에 개소…"술 달라"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경찰·소방 3인 한팀 24시간 근무…센터 나가고 대형 사고 날까 '발동동'
14일 오후 11시쯤 최모 경위가 부산 주취해소센터에서 응급 주취자를 살펴보고 있다.2023.4.14/뉴스1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직접 지원해서 들어왔는데 쉽지 않네요."

지난 14일 오후 11시48분쯤 부산 주취해소센터에 40대 남성 A씨가 순찰차에 실려오자 최모 경위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만취 상태인 A씨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경찰관들의 부축을 받고 침대로 옮겨졌다.

A씨는 침대에 눕자마자 경찰관이 펼친 봉투에 구토했다. 약 5분간 이어진 구토 후 윤모 소방장은 침대에 묻은 구토물을 닦아내고, A씨의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달아 상태를 지켜봤다.

2시간 뒤 잠에서 깬 A씨는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에 경찰의 부축을 받고 화장실로 이동했다. 화장실 안에서 A씨가 갑자기 소리를 치자 요원들은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해 비닐장갑을 끼고 화장실 앞에 서서 대기했다.

◇ 물만 먹어도 토하는 주취자들 "술·담배 주세요"

단순 만취자도 보호할 수 있는 '주취해소센터'가 지난 11일 전국 최초로 부산에 문을 열었다. 센터는 경찰관 2명과 소방관 1명이 한팀을 이뤄 24시간 순환 근무제로 운영되고 있다.

개소 첫날인 11일부터 13일까지는 주취자 3명이 센터를 들어왔지만, 지난 14일에는 주취자 신고가 잇따라 접수돼 '불금'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6시50분쯤 네팔 국적 B씨(20대)가 낮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길에 쓰러져 있다 경찰의 도움으로 센터에 입소했다. 이날 부산에 비가 내려 A씨의 옷은 온통 젖었다. 요원들은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B씨를 위해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B씨는 물만 마셔도 계속해서 구토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술과 담배를 구하러 밖을 돌아다니고 편의점을 찾아다녔다.

B씨가 응급실 앞 들것에 실려 있던 응급환자에게 다가가 담배를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최 경위는 "스탑!스탑!"을 외치며 제지했다. 그는 센터에 다시 들어와서도 "술 주세요"라며 애걸복걸 매달렸고, 경찰관들은 하는 수 없이 통역관을 끼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네팔에서 온 B씨는 취업비자를 받고 경남에서 일을 하다 알코올 중독으로 직장에서 나오게 됐다. 경찰이 네팔 외국인단체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B씨의 지속적인 알코올 중독으로 단체에서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B씨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오후 11시16분쯤 또다른 40대 여성 주취자가 술에 취했다는 지구대 전화가 센터에 접수됐다. 박모 경장은 "현장에서 주취해소센터 입소 조건이 맞는지 확인한 후 센터에 입소시켜달라"며 "난동이나 폭행 시에는 센터에 바로 입소할 수 없고 경찰서에 이송돼야 한다"고 경찰관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박 경장은 "보통 길거리에 누워 있는 주취자들이 센터에 실려 온다.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안 닿는 경우도 있어 센터로 오기도 한다"며 "주취자가 센터에서 완전히 술이 깨면 의료원에서 운영하는 무료 버스 등을 태우고 귀가시킨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11시48분께 경찰관들이 부산 주취해소센터에 실려온 40대 남성을 부축하고 있다.2023.4.14/뉴스1 노경민 기자

◇ 일반 환자보다 힘들어…술에 취해 말도 안 통해 '땀 뻘뻘'

이날 최 경위를 비롯한 요원 3명은 B씨가 술에 취해 비협조적인 데다 말도 통하지 않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체온증을 겪던 B씨 때문에 센터 내부는 더운 히터 온기로 가득했다. B씨가 밖으로 나가려는 돌발 행동을 할 때마다 이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최 경위는 "물을 줄 때마다 토하는 상황에서 자꾸 음식을 달라하니 난감할 뿐"이라며 "응급 구조사 자격이 있는 소방관이 지금 상태에서 음식물을 주면 위험하다고 해서 주지 않는 것인데 계속 보채니 지친다"고 말했다.

요원들에게 주취자를 강제로 퇴소시키거나 입소시킬 권한은 없다. 당장 주취자가 외부로 나가 또다시 술병을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도 무작정 강제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 경위는 "만약에 센터 밖으로 나간 후 사고가 나면 경찰에 책임이 돌아가니 불안하기도 하다"며 "그렇다고 강제권이 없는 우리들이 주취자를 강제로 붙잡을 수는 없지 않나"고 쓴웃음을 지었다.

15일 오전 0시10분께 윤모 소방장이 부산 주취해소센터에 입소한 40대 남성 A씨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 있다.2023.4.14/뉴스1 노경민 기자

◇ 거리두기 풀리니 주취 신고↑…"보호시설 부족"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지역 주취자 신고 건수는 2019년 8만1522건이었다가 코로나19 이후 2020년 6만9703건, 2021년 6만3575건으로 줄었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2022년 7만7096건으로 증가했다.

센터 직원들은 조만간 날이 풀리면 주취자 신고가 더 늘지 않을지 조심스레 예상했다. 지금의 '경찰 2명·소방 1명' 근무 체제는 늘어날 주취자를 대비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수로 보인다.

요원들은 주취해소센터가 없었다면 이날 주차장에서 엎어진 채 발견된 A씨나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던 B씨가 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 걱정했다.

최근에는 골목에 쓰러져 있다 차량에 밟혀 주취자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월19일 50대 만취자가 서울 동대문구 한 골목 입구에서 누워있다 우회전하던 차량에 깔려 숨졌다.

경찰이 주취자를 일으키려 해도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주취해소센터 같은 쉼터가 있었다면 주취자를 곧바로 이송할 수 있었지만, 마땅한 보호시설이 없어 경찰관들은 건너편 순찰차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4조에 따르면 술에 취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주취자의 경우 구호 요청을 받은 보건의료기관 등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긴급 구호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단속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은 응급실·병원에서 주취자 신고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정학섭 부산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대표는 "그동안 주취자를 인계할 시설이 부족해 현장에서 주취자에 신경 쓰느라 다른 신고가 들어와도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주취해소센터가 주취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취해소센터는 부산 15개 경찰서와 협조해 시범 운영 중이고, 추후 주취해소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가 발의되면 정식 운영될 예정이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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