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의 아침밥’… 돈은 대학이 내고 생색은 정치권이?

조해동 기자 2023. 4. 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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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의 아침밥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울시립대에서 먹는 ‘천원의 아침밥’<YONHAP NO-2002>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배식받고 있다. 연합뉴스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천원의 아침밥’이 젊은층의 인기를 끌자 “1000원의 아침밥 사업을 전 대학으로 확대하겠다”, “1000원의 점심·저녁밥도 먹게 하자” 등 여·야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학생이 저렴한 가격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국민 세금)에서 일부를 지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가능하면 확대 실시하는 방향도 맞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 ‘돈 뿌리기 경쟁’에 나서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천원의 아침밥’은 학생이 1000원을 내면, 농림축산식품부가 1000원을 내고, 나머지 비용은 대학이 부담하는 구조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원래 아침밥 가격이 5000원 정도라고 하면 대학이 3000원을 부담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 구내식당 아침밥 가격이 4000원이라고 해도 대학이 2000원을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천원의 아침밥에 가장 많은 재원을 내는 곳은 정부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뜻이다.

원래 올해 농식품부의 ‘천원의 아침밥’ 예산은 7억7800만 원이었다. 농식품부에서 대상 인원이 68만5000명이라고 밝혔지만, ‘인원 수’라기보다 ‘끼니 수’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 명이 두 번, 세 번을 먹을 경우 대상 인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가 최근 대대적으로 늘렸다고 밝힌 ‘천원의 아침밥’ 예산이 15억8800만 원이었다. 농식품부는 대상 인원이 81만5000명이라고 밝혔지만, 이것도 역시 81만5000 끼니가 정확한 계산일 것이다.

예산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1000원을 내고 아침밥을 먹으려고 줄을 섰다가도 순번이 끝나서 못 먹는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요즘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도블럭 교체 공사만 조금 크게 해도 예산이 7억 원을 넘는다. 애당초 이런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정부가 마치 많은 대학생에게 ‘천원의 아침밥’을 준다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인기를 끌자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1000원의 아침밥 사업을 전 대학으로 확대하겠다”, “1000원의 점심·저녁밥도 먹게 하자”, “학기중 뿐만 아니라 방학 때도 먹을 수 있게 하자”, “대학생뿐만 아니라 전문대 학생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학생이 아침밥을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대학생의 아침, 점심, 저녁값을 지원하고, 학기중 뿐만 아니라 방학 때도 지원하자는 것은 과도한 ‘포퓰리즘’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왜 대학생이나 전문대 학생에게만 국민 세금으로 식사비를 지원하는가. 대학이나 전문대를 다니지 않는 청년층에게도 모두 지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어쩌면 대학이나 전문대를 다니지 않고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든 학생에게 지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를 확대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젊은층에게만 지원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노인빈곤율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 노령층에게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의 종착점은 결국 “전 국민에게 아침, 점심, 저녁뿐만 아니라 간식까지 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자”로 귀결된다. 모든 국민에게 모든 것을 식사비를 지급한 공산주의는 구 소련, 오늘날의 북한 등에서 보듯 국민을 더욱 배고프고, 가난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고려대의 시도

고려대는 최근 예산 등의 이유 때문에 매달 1만1500명, 하루 평균 600여 명에게만 주던 ‘천원의 아침밥’의 인원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 ‘천원의 아침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가 인원 제한 때문에 못 먹고 물러나는 학생들이 없게 하기 위한 조치다. 부족한 재원은 졸업생 소액 기부 캠페인 ‘KUPC(KU PRIDE CLUB)’를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사립대의 재정 현실을 고려하면 대학이 학생의 아침밥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 유명 사학이 실시하고 있는 ‘기여 입학제’ 등 재원 마련 방안이 대부분 제도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려대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천원의 아침밥’ 인원 제한을 없앨 수 있었지만, 지방의 재정 형편이 어려운 사립대의 경우 대학이 지원해야 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 농식품부의 ‘천원의 아침밥’에 신청을 하지 못하는 곳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국민 세금으로 무조건 대학생 아침밥을 주자”는 것은 옳은 대안이 아니다. 국공립대는 정부가 예산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사립대의 경우 스스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기여 입학제 등에 대한 국민 여론이 크게 엇갈리겠지만, 대부분의 해외 유수 사립대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여 입학제 등을 공정하게 잘 시행만 한다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쉽게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해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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