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태양절에 ‘3대 세습’ 균열음…조악한 선물, 행사 동원에 ‘태양절 저주’ 반응까지

박준희 기자 2023. 4. 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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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 맞아 선물 주고 행사 열지만
저품질, 생활고 등 이유로 장마당에 되팔고
“먹고 살기 어려운 판에 무슨 태양절이냐”
주민들 일각서 노골적 불만 품는 분위기도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 (태양절·4월 15일) 111주년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발사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조선중앙TV 화면 캡처

15일 북한 당국이 ‘최대 명절’로 여기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 ‘태양절’을 맞아 주민들에게 선물을 지급하고 각종 행사를 치렀지만, 당장 생활고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오히려 태양절을 계기로 당국에 대한 반발심만 더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정권 ‘3대 세습’의 시초이자 정점인 김일성 주석을 기리는 날조차 당국이 주민들의 환심을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3대 세습의 신화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4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올해도 어김없이 태양절을 기념해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간식을 선물로 지급했다. 그러나 이를 받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탐탁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올해도 당국은 어린이를 왕으로 떠받들며 사랑했던 어버이수령님(김일성 주석)의 뜻을 받들어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또 다시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간식을 태양절 선물로 공급했다고 선전했다"면서도 "오히려 어린이들은 태양절이 다가오면 할머니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장마당에서 할머니가 사주는 고운 옷이 더 좋고 당과류 간식이 더 맛있다"며 "태양절 선물 당과류가 고마워 눈물을 흘리기보다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올해 태양절을 앞두고 지난 11일 평양의 평양면옥에서 제26차 ‘태양절 요리축전’이 열린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출품 요리들을 둘러보고 있다. AP·뉴시스

북한 당국이 어린이들에게 태양절 당과류 선물을 하는 관행은 김일성 생일 65주년이던 1977년 수령 신격화가 본격화되던 당시부터 시작됐다. 올해도 지난 13~14일 북한 전국의 탁아소(1~4세), 유치원(5~7세), 소학교(8~12세)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태양절 111주년을 맞아 당과류 간식을 선물로 받았다. RFA는 "선물 당과류는 3대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주민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세뇌 수단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런 당과류 선물이 당국의 선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국 세부담으로 마련된 것이란 점을 북한 주민들도 잘 알기에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RFA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도 이제는 태양절 기념 선물 당과류가 주민 세부담으로 원자재가 마련돼 지방식료공장에서 생산된 것임을 잘 알고 있다"며 "3대로 세습되는 선물정치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당국이 지급한 ‘수령님의 선물’임에도 저급한 품질 등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는데다, 생활고 때문이라도 장마당에 내다 파는 일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이번 선물 당과류도 1월 8일(김정은 생일)과 2월 16일(김정일 생일)에 공급한 것과 품질이 비슷하다"며 "당에서 선물의 품질을 높이라고 강조하지만 지역의 자체생산이다 보니 재료가 제대로 없어 품질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 선물은 사탕과 과자, 엿, 쌀강정, 콩알사탕, 껌으로 정해져 있는데 품질 불량으로 아이들이 선물을 받기도 전에 깨지고 부서져 있다"며 "일부 주민들은 자식에게 당과류를 먹이지 않고 팔아서 쌀을 사거나 제사상에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당국이 지급한 선물을 몰래 사고팔다 걸리면 ‘수령님의 선물을 팔았다’거나 ‘원수님의 사랑과 배려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돼 공개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절 선물을 내다 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태양절 111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평양 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제8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이 개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태양절을 계기로 주민들의 반감을 부추기는 것은 선물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 동원도 마찬가지다. 올해도 당국에서는 전국의 모든 단위와 기관, 공장, 기업소, 학생, 인민반 주민들에게 태양절 경축 분위기를 띄우는 행사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이에 대해 내부 소식통은 RFA에 "요즘 중앙(당국)의 지시에 따라 모든 학생과 주민들이 태양절 행사연습에 강제로 내몰리고 있다"며 "학생들은 소년단 입단식, 노동자, 농민, 주민들은 충성의 노래모임과 군중무용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대부분의 주민은 이런 강제적인 모임에 충성심이 아닌 반발심을 갖고 있다며 "일반 주민들이 거의 식량부족으로 인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처지인데 무슨 이유로 김일성에 대한 충성을 노래하겠냐"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강제로나마 김일성 관련 노래를 불러도 실제 생각은 온통 가족의 생계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쏠려 있다"고 덧붙였다. 평안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도 "요즘 갑자기 닥친 이상기후로 영하의 날씨가 계속 되고 중국발 황사에 찬바람까지 몰아치자 일부에서는 태양절을 저주하는 분위기까지 생기고 있다"며 "먹고 살기 어려운 판에 무슨 태양절이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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