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인 음주운전 3범은 고작 3년형... 유족은 생업 접어"
"사고 현장 매일 지나칠 수밖에 없어 통곡"
"사고도 2차례 내 40여 년 한 택시기사 접어"
"가해자는 형사합의 없어도 공탁해 징역 3년 말이 되나"
"택시기사인 아버지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소를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요. 그럴 때마다 통곡하시니까 제대로 운전할 수가 없었죠. 결국 40여 년 해 오시던 개인택시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최근 자동차 온라인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글 '음주 사망 사고 징역 3년 선고되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에 등장한 피해자 유족인 A(30)씨는 지난 12일 본보와 통화에서 아버지(67)를 걱정하는 말부터 꺼냈다. 아버지가 지난해 6월 음주운전 사고를 당한 아내(당시 63)를 떠나보낸 이후에도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서다.
대구에서 반평생 택시를 몰면서 경미한 접촉사고만 몇 차례 냈을 뿐 졸거나 인명사고를 낸 적 없었던 아버지가 어머니 사건 충격 때문인지 6개월 사이 사고를 두 번이나 냈다. 그중 한 번은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을 녹색불인 줄 알고 그냥 들이받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차량 앞쪽이 완전히 찌그러져 폐차하면서 생업을 접었다. A씨를 비롯한 자녀 3명 모두 출가해 덩그러니 혼자 남은 아버지는 생계를 이어가야 함에도 내린 결단이었다. A씨는 "아버지가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종종 멍하니 있거나 정신적으로 통제가 안 돼 자칫 큰 사고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일을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도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자동차 얘기가 나오면 우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열린 A씨 결혼식은 어머니 생각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와 정상적인 진행이 힘들 정도였다.
A씨는 "저희 어머니를 사망케 한 음주운전 3범 가해자는 고작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반면, 피해자 가족은 생업도 접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가해자, 사고 몇 달 뒤 연락 와... 가해자 측 사과도 안 해"
문제의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지난해 6월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던 남성 B(69)씨는 죽전네거리 교차로에서 교통섬 안쪽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A씨의 어머니를 들이받았다. A씨가 경찰을 통해 전해 들은 당시 속도는 시속 90㎞ 정도였다고 했다. A씨 어머니는 이 사고로 숨졌다. B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56%의 만취 상태였고,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2단독 김여경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상 '음주운전치사'의 처단형 범위(징역 3년~30년 이하) 중 가장 하한선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제공한 판결문을 보면, 양형에 반영된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피고인이 운행한 차량은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보험회사와 피해자 유족 사이에 민사상 손해배상에 관한 합의가 성립하였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추가로 3,000만 원을 형사공탁하였다"는 점이 제시됐다.
그러나 유족 측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가해자인 B씨는 사과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몇 달 뒤에야 B씨의 매형이 나타나 합의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만났을 때 기대와 달리 사과도 없어 합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보험금에 대해선 "저희는 '합의 안 하겠다'고 했는데도 보험회사 측에서 계속 연락이 왔고, '돈(보험금)을 수령하더라도 재판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받았다"며 "판사는 그것을 합의로 보니까 저희는 매우 당황했고, (가해자와 보험회사 측에) 뭔가 이용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험금도 합의로 간주한다는 걸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문철 "형사합의 없이 공탁 참작해 3년형? 부적절"
전문가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본보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고, 형사합의 없이 공탁 3,000만 원을 참작해 징역 3년은 적절치 못한 형량으로 보인다"고 양형에 의문을 나타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합의가 안 될 경우 가해자가 공탁금을 내는 건 일반적인 행위"라며 "두 차례 음주운전 이력을 가진 자가 세 번째 음주운전을 해 결국 사람을 죽게 한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사안과 음주운전을 살인 행위로 보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판사가 감안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은 B씨의 형량에 전관예우가 영향을 준 것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가해자가 선임한 변호사의 이력을 확인해 보니 판결이 이뤄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장' 출신이었다"며 "전관 변호사 선임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전관예우 효력을 분석한 연구 논문도 있다. 2018년 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사법부 전관예우 분석 경제학의 관점에서'란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인 318명의 변호인과 최종 형량을 분석한 결과 전관 변호사가 변호한 피고인의 집행유예율은 25%, 비전관 출신이 변호한 피고인의 집행유예율은 14%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관 변호사의 집행유예율이 일반 변호사의 집행유예율보다 거의 2배 높았다.
"음주운전자 면허 재취득 불허하고 엄벌해야"
어머니 사망 이후 A씨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본인도 어머니처럼 차량이 뒤에서 갑자기 돌진해 오는 사고를 당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특히 횡단보도 건널 때는 두세 걸음 걸을 때마다 뒤돌아본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병 걸려 못 살 것 같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친구 중에 비보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최근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A씨는 "어머니와 40여 년 알고 지낸 친구분이 원래 심장이 안 좋았는데, 어머니 사망 소식에 쇼크를 받아 응급실에 실려갔었다"며 "몇 달 동안 누워 계시다가 올해 결국 심장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유사한 음주운전 사망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음주운전자에게는 운전면허 발급을 영구 금지하거나 처벌을 매우 강화해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가해자도 항소심에서는 죗값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음주운전으로 세상을 떠난 배승아양 사건 영상도 봤다"며 "어머니 사건이 공론화돼 승아양 사고를 비롯한 다른 음주운전 가해자를 엄벌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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