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1년 앞두고…나랏돈으로 노인회 간부에게 年 5~31억 주는 법 발의한 여야 60여명

세종=손덕호 기자 2023. 4.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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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원이 법안, 국민의힘 의원 10여명 공동발의
2년 전 국민의힘 김태호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 발의
전임 노인회장이 사재로 간부들에게 주던 수당
국가 재정으로 지원할 근거 마련하는 내용

노인단체가 대한노인회와 비(非) 대한노인회로 양분됐다.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때문이다. 이 법안은 대한노인회 간부들에게 직책수행을 명목으로 매월 일정금액을 지급하고, 그 재원은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대한노인회에 올해 34억원을 지원했는데, 추가로 31억원 또는 5억원을 더 주자는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이 법안에는 여야 의원 60여명이 사이 좋게 이름을 올렸다. 총선을 1년 앞두고 표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등 임원진들과 노인복지 문제 등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 /조선DB

◇대한노인회 사단법인에서 법정단체로 전환하는 법안…국가 예산 지원 가능하게 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8일 ‘대한노인회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대한노인회는 사단법인인데, 대한노인회법에 따라 새로운 법정단체 대한노인회를 설립하자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대한노인회가 특수법인으로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노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 활동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대한노인회의 각급 회(會)의 회장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직책 수행에 따른 경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국가와 지자체가 대한노인회 조직과 활동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하고, 업무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민주당 소속 김원이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60명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정우택(국회 부의장)·박진(외교부 장관)·윤상현·안철수·김석기·최재형(전 감사원장) 등 11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보다 앞서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도 2021년 5월 ‘대한노인회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마찬가지로 대한노인회 각급 회의 회장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직무 수행에 따른 경비 등 실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대한노인회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공동발의했다.

김원이 의원과 김태호 의원의 법안 모두 대한노인회가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또 장의·상조·관광·추모공원 조성·운영 등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해 12월 5일 정진석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국민의힘-대한노인회 정책협약식에서 김호일 회장 등 대한노인회 임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선DB

◇56개 노인단체 반대 나서…”국민 세금으로 보수 지급하겠다는 것”

김 의원이 대한노인회법안을 발의하자 다른 노인단체들이 반발했다. 대한은퇴자협회, 새시대노인회, 한국경로복지회, 한국노년학회, 한국노인복지학회 등 56개 노인단체는 ‘대한노인회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모임은 성명에서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의 선거 공약이 그대로 복사된 대한노인회법이 발의되면 노인회 회장당 등 임원에게 매월 활동비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다”고 비판했다.

대한노인회법안이 노인회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게 한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 됐다. 연대모임은 “노인문화건강증진센터 등 대한노인회의 조직을 책임질 회장들에게 사업 성과와 관계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연대모임은 대한노인회가 체육시설운영, 장의업, 상조업, 관광업, 추모공원조성운영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과포화 경쟁 체제”라며 “공적 기능을 가진 대한노인회가 불공정 경쟁으로 노인단체 생태계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2017년 8월 9일 17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이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부영 이중근(오른쪽 두 번째) 회장이 17대 대한노인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회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대한노인회장 자리가 700만 노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생각으로, 노인이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어른다운 노인으로 당당하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어른다운 노인으로, 노인회는 노인으로’라는 대한노인회의 새로운 슬로건을 제시했다. /조선DB

◇전임 노인회장인 이중근 부영 회장, 노인회에 기부해 월 100만원씩 지급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한노인회의 재정을 국가 또는 지자체가 지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한노인회는 이미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김원이 의원의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에서 보건복지부를 인용해 정부는 올해 ‘대한노인회운영지원’으로 대한노인회를 지원하고 있고, 올해 예산은 34억100만원이라고 밝혔다. 2021년에는 18억1800만원이었는데, 2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그러면서 “대한노인회법이 제정되면 확대되거나 신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대한노인회법에 따라 노인회 간부들이 지원받게 되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계산 방법에 따라 다르다. 대한노인회는 중앙회 1개, 연합회 16개, 지회 245개의 단위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정처는 법안이 제정된다면 업무수당을 받는 대상은 이 262개 조직의 중앙회장 1명, 연합회장 17명, 지회장 245명 등 총 262명으로 추정했다.

예정처는 2021년 5월 작성한 김태호 의원의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에서 필요한 비용을 연간 31억4400만원으로 추산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전임 대한노인회장이었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재임 기간 대한노인회에 재원을 기부했고, 중앙회와 연합회, 지회에 업무수당 월 100만원을 지급했다. 이를 적용해 나온 소요 예산이다. 포브스는 지난해 4월 이 회장의 재산이 16억5000만달러(약 2조1000억원)로 추정하며 한국 부자순위 28위에 이름을 올렸다.

2년 뒤인 올해 3월 예정처는 김원이 의원 법안 비용추계서에서 필요한 비용을 작게 추정했다. 예정처는 기획재정부의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의 기관운영경비 중 직책수행경비를 준용해 기관장급 경비를 지급하는 것을 가정했다. 이에 따라 매월 중앙회장은 65만원, 연합회장은 40만원, 지회장은 15만원을 받게 되고, 필요한 예산은 연간 5억2900만원이다. 계산 방법은 다르지만, 정부가 대한노인회에 현재 지원하는 34억원 외에 추가로 5억~31억원을 더 지원하게 되는 셈이다.

대한노인회 고위 관계자는 노인단체들이 대한노인회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대한노인회는 900만 노인을 대표하고, 노인 관련 모든 단체 중 대표적인 단체”라며 “재향군인회나 경우회, 자유총연맹처럼 법정단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수적인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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