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버젓이 있는데도…"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조작돼 입양됐다"
"배신감 컸지만 한국인 정체성은 자랑…연결고리 잃지 않을 것"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 태어난지 1달만에 지구 반대편인 미국으로 입양됐다. 시간이 흘러 가족을 만난 후 알게 된 입양 경위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산부인과에서 부모님에게 자식이 출산 중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나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미국에 입양돼 평생을 살았다.(Lynn Stransky, 한국명 유정란·35·여, 미국 시카고 거주)
#. 8살 쯤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입양 후 평생 인종 차별 등 고통속에 살아왔다.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의 얼굴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한국에서 확인한 입양서류에서 내가 고아로 기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Sook, 한국명 안정숙·54·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주)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앞서 <뉴스1>이 보도한 기획 '해외로 거래된 아이들' 속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둘다 부모님이 있는데도 서류가 조작돼 고아로 입양됐다.
이들은 이날 개막한 '해외입양인들과함께하는문화예술협회(KADU·대표 박찬호) 해외입양 예술가 작품전시회' 개막식에 예술가로 참석했다. 이번 전시회는 해외입양 70년을 맞아 미국, 독일,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등 11개국으로 입양된 28명이 '모국'을 주제로 한 그림, 사진, 설치미술, 영상 등 80점을 국회와 인사동에서 약 1달간 선보인다.
유정란씨와 안정숙씨도 KADU의 초청을 받아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개막식 행사를 마친 후 이들은 입양된 이후 겪은 차별, 작품에 담긴 의미, 한국에 대한 인식 등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입양 경위 알고 배신감 느껴…타국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해외 입양된 아이들은 평생을 이방인으로 산다. 유씨와 이씨도 다르지 않았다.
유씨는 좋은 양부모를 만났다. 그럼에도 평생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낯선 땅에서 동양인으로 겪은 차별의 상처는 양부모의 사랑만으로 치유되지 않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친가족을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학창시절부터 한국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수많은 좌절을 겪은 후 10년만에 개인 SNS를 통해 친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만난 친가족은 유씨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출산 당시 병원에서는 유씨 가족에게 아들이 태어났는데 죽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좋으면서도 입양 경위를 듣고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며 "친어머니는 아직도 충격 때문에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좋은 입양 가족조차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입양한 네덜란드 가족은 백인우월주의를 갖고 있었다"며 "그곳에서 나는 항상 권리를 존중받지 못했고 차별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아직 친가족을 찾지도 못했다. 그는 "수십년간 친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쉽지 않다"며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생활은 어느정도 안정됐지만 한국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가슴 한켠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인 정체성 자랑스러워…연결고리 잃지 않을 것"
자신들을 외면한 한국에 적개심을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한국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회에 참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이 전시한 작품에는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씨는 한국의 지하철, 대학 MT 사진에 자신의 사진을 합성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성장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며 "그런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한국인 예술인 단체에 가입했는데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만으로도 기뻤다"며 "한국에 머물 때마다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 또한 한국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씨는 "내가 기억하는 한국을 작품에 고스란히 시각화했다"며 "작업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존재는 큰 영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양과정에서 서류 조작부분은 큰 상처지만 아직도 한국과 연결돼 있다는 감사함을 느낀다"며 "네덜란드에 있을때는 항상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전시회를 위해 모국을 찾은 두 사람은 "좀 더 머물며 한국 여행을 할 계획"이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한국에 배신당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국인이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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