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경찰관]⑤ 위드코로나에 지하철 범죄 급증...휴대폰 전문 털이범 검거한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

최효정 기자 2023. 4.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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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기창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
지하철 만취 승객 휴대폰 털던 절도범, 장물업자 ‘검거’
작년 지하철 범죄 3378건...위드코로나에 증가
범인 찾으려 CCTV 수백 대 대조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얼굴을 뜻하는 일본어로 체면을 의미)가 없냐?”란 대사로 유명한 한국 영화 베테랑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재벌 3세가 연루된 사망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과묵하고 성실한 신출내기와 발차기와 위장이 특기인 여형사, 불도저 같은 성격의 중참 형사가 구름 위 존재인 재벌가 자제를 붙잡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어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범죄수사를 포함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인 우리 주변의 서도철(황정민 役)과 봉윤주(장윤주)를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달 23일 새벽 1시 서울 동작구의 한 공원에서 서성이던 남성 두 명에게 김기창(48)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경정)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들은 지하철 만취 승객에 접근해 휴대폰을 훔쳐 파는 전문 절도범과 장물업자였다. 야심한 시각에 몰래 훔친 휴대폰을 거래하려다 잠복을 이어가던 김 계장에게 덜미가 잡힌 것이다.

김 계장이 이끄는 지하철경찰대 수사팀은 이들을 포함해 전문 절도범과 이를 해외로 밀반출한 베트남 국적 장물총책 A씨 등 총 15명을 검거했다. 특히 단순 절도범이 아닌 ‘장물총책’을 검거한 것은 지하철경찰대 역사상 최초 성과다. 인근 수백여대의 CCTV를 분석하고 잠복수사를 통해 수사력을 집중한 결과다.

김 계장이 ‘휴대폰 절도’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작년 4월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되면서 만취 승객이 증가하고, 덩달아 휴대폰을 분실했거나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대폭 늘어나면서다. 작년 11월 잡힌 절도범 조모씨가 진술에서 국내 장물 휴대폰 판로의 몸통급인 ‘총책’ A씨의 존재를 언급했고, 이후 김 계장은 A씨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를 지속했다.

지난 7일 김기창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계장 인터뷰./최효정 기자

장물총책이었던 A씨는 매입한 장물 휴대폰을 수출대행업체를 통해 정상적인 중고 휴대전화에 끼워 넣거나 보따리상·베트남 가이드를 거쳐 한 대당 2만 원을 주고 베트남으로 밀반출했다. ‘피싱(phishing·전자금융사기)’ 수법으로 피해자들에 휴대전화를 찾은 양 사칭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해자들에게 아이디·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이를 이용해 휴대폰을 초기화해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수법을 썼다.

A씨는 범행 흔적을 없애기 위해 대포폰을 사용하는 등 치밀했지만 김 계장의 집념에 결국 꼬리를 밟혔다. 김 계장은 절도범 조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종로에 있는 A씨 사무실 위치를 파악한 이후 인근 CCTV 500여대를 분석하고 통신추적·잠복과 미행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난달 초 A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 작년 지하철 범죄 3378건...수백대 CCTV 동원해 수사

김 계장은 올해로 3년 째 서울경찰청 생안계 소속 지하철경찰대 수사팀을 이끌고 있다. 서울 지하철경찰대는 치안업무를 담당하는 안전팀과 지하철 내에서 발생한 강도나 절도,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수사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동차나 승강장 등에서 발생하는 불법촬영부터 소매치기·절도 등 사건을 수사한다. 지하철 경찰대 수사팀은 총 4개로 종로3가역과 왕십리역, 이수역과 당산역에 각각 팀 별로 사무실이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3378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2021년(2619건)과 비교해 29% 늘었다. 코로나19 상황 안정화 이후 유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하철 범죄도 증가 추세다.

범행 유형은 다른 승객이 지하철에서 잊고 내린 유실물을 가져가는 점유이탈물횡령이 137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절도(789건), 성추행(788건), 불법 촬영(430건)이 뒤를 이었다.

절도 사건의 경우 취객이 많은 심야 시간대에 집중된 편이고, 강제추행 사건은 탑승 인원이 많고 정신없는 출퇴근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김 계장이 검거한 지하철 휴대폰 절도범들도 주로 전동차 내 폐쇄회로(CC)TV가 없는 서울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을 범행 장소로 삼고, 심야시간대 만취 승객에 접근해 휴대폰을 빼냈다. 취객을 부축하는 척 하며 물건을 터는 ‘부축빼기’ 수법을 썼다.

◇ “CCTV 설치율 높아지면 범죄 예방·해결에 큰 도움”

지하철은 공간 특성 상 목격자를 찾기 어려워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CCTV가 매우 중요하다. 포렌식을 통해 증거 확보가 가능한 불법촬영을 제외하면 CCTV가 수사의 핵심이 된다. 하지만 지하철 전동차 내 CCTV 설치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해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피해자의 전체 동선을 파악한 뒤 용의자를 찾기 위해 승강장과 역 밖 지상까지 수십·수백 대의 CCTV를 동원해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김 계장은 “지하철 범죄 수사의 시작과 끝은 CCTV”라면서 “지하부터 지상까지 수백대의 CCTV를 대조해 범인의 동선을 연결하고 추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철 객차 내 CCTV 설치율은 1·3·4호선 지하철 객차엔 CCTV가 한대도 없고, 5·6·8호선 설치율은 3~6%에 불과하다. CCTV가 100% 가깝게 설치돼 있는 라인은 2호선(97.7%)과 7호선(97.2%) 뿐이다. 대부분 노선의 설치율이 10% 미만인 것이다. 현행 도시철도법은 2014년 1월 이후 도입된 열차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해 이전에 운행을 시작한 열차들은 사실상 CCTV 사각지대로 방치됐다.

CCTV 설치율이 낮은 지하철 노선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지하철경찰대 소속 직원들이 무작정 잠복 수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김 계장은 “작년에 당산역에서 부하 직원이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 3개월이 넘게 잠복 근무를 했다.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실제로 소매치기 현장을 잡아내 결국 범인을 잡는데 성공했다”면서 “CCTV 설치율이 높아진다면 범죄 예방과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 말했다.

김 계장은 지하철경찰대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어떻게든 잡겠다는 ‘의지와 사명감’이라고 강조했다. 범인의 행적을 쫓기위해 수백 개가 넘는 CCTV를 들여다보고 대조하는 일에는 끈기와 집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범인을 꼭 검거해 처벌받게 할 거라는 각오가 필요하다. 세상에 안걸리는 사건은 없다는 믿음으로 수사를 하면 범인은 잡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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