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법개혁에 반대 시위 이끈 이스라엘 특전사[PADO]
이스라엘 예비군, 반대 투쟁의 선두에 나서
[편집자주] 한국은 이스라엘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독교의 영향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스타트업 부문은 이스라엘의 국가 경쟁력에 큰 공헌을 하고 있죠. 특히 이스라엘 군대는 국민 정체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국민들의 군에 대한 신뢰도 높고요. 그런데 최근 군대는 물론 정보기관을 비롯한 이스라엘 안보 부문이 대대적으로 정부 시책에 반발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인데 법관 선임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하고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권한을 축소시키는 게 주요내용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우파가 극우 유대교 정치 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벌어진 일인데 본래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건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세속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정통파'라 불리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본격적인 유대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하죠. 지금도 근본주의 교파(하레디) 유대인들은 병역 면제를 받으며 국고 보조금도 받고 있어 세속적 국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는데 심지어 세속 민주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과도한 종교 편향적 정책을 제지하던 사법부마저 정부가 무력화시키려고 하니 대대적인 반발이 터지는 겁니다. 이러한 반발의 핵심에 예비군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아래에 요약 소개하는 3월 27일자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은 사법개혁 반대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이스라엘 예비군 단체에 대해 상세히 소개합니다.
모래 언덕에 반짝이는 태양으로부터 눈을 가리며 에얄 나베는 이스라엘 중부의 육군 기지에 모인 신병 수백 명을 바라보았다. 아침 훈련으로 지친 18세의 신병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끼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키 6피트(약 182cm)에 다부진 체격의 나베(47)는 이스라엘 최정예 특전부대 사이렛 매트칼 출신 예비역이다. 작년 1월말, 그는 예비역 군인으로서 신병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들 중 누군가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겠지, 그는 생각했다. 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도 50년 전 사이렛 매트칼에서 복무했다.
신병들을 교육시킬 때 나베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곤 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그는 심란했다. "이들이 복무하게 될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점심 시간, 나베는 다른 예비역 동료 다섯과 함께 앉았다. 탁자에 놓인 신문에는 불안한 내용의 헤드라인이 걸려있었다. 네타냐후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사법부에 대한 전례없는 수준의 통제권을 행정부에게 주게 된다. 법관 임명에 대한 행정부 입김도 더 커지고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 권한에도 제약이 걸린다.
"이건 개혁이 아니야." 나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건 쿠데타일세. 우리가 뭔가 해야 돼." 나베를 비롯한 예비역들은 이스라엘의 사법부가 정치화되면 이스라엘 사법제도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도 사라져 군 복무를 한 이스라엘 시민들이 (국제법 위반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될 가능성 또한 우려했다. "국외로 나가게 되면 체포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예비역들은 왓츠앱으로 단체 채팅방을 열어 정부의 사법개혁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의논해보기로 했다. 채팅방 이름은 '전우회'였다. 하루 만에 채팅방 참여자 수는 800명이 됐다.
1월 25일 밤, 나베와 50명의 예비역들(대부분 이스라엘방위군의 엘리트 부대 출신이었다)은 텔아비브 바로 북쪽의 해안 마을 헤르츨리야에 모였다. 나베가 설립을 도왔던 공유오피스 플랫폼의 사무실 하나를 빌렸다. 모인 예비역들은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갖고 있었으나 과거 정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집회 조직과 대정부 협상 등을 비롯, 이스라엘 민주주의를 구할 전략에 대해 토의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도 함께 작성했다. '예비역 군인으로서 우리의 계약은 유대 민주국가와 맺은 것이다. 우리 전우들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당시 명시적으로 넣지 않은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독재라고 생각하는 국가에는 복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의 모임이 열리고 두 달 후, '전우회'는 이스라엘을 뒤흔들고 있는 사법개혁 반대 투쟁의 중심에 있다. 활동하는 인원은 3만 명으로 늘었다. 나베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사법개혁이 무산되기 전까지 예비역 복무를 보이콧하겠다고 맹세한 상태다. 이는 이스라엘군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방위군 대변인은 이스라엘에 현역보다 훨씬 많은 "수만 명"의 전투예비역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예비역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대변인은 말했다. 지난 3월 25일에는 예비역의 보이콧이 이스라엘의 방위태세를 심각하게 약화시킬 것을 우려한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행정부가 사법개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튿날 해임됐다. 그 다음날이 되자 이스라엘 인구의 6%에 해당하는 60만 명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벌였다. 노조 지도자들은 3월 27일 대대적인 파업을 촉구했다.
군대가 국가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나라에서 군인들이 공개적으로 저항에 나섰다는 사실은 충격을 줬다. (모든 유대인 이스라엘 국민은 이론적으로는 군 복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면제를 받는다.)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전직 안보기관 수장들이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스라엘방위군, 보안기관 신베트,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직 수장들이 이스라엘이 사실상 독재국가로 전락할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우린 이 사법개혁 반대 투쟁을 제2의 독립전쟁으로 여깁니다." 전 이스라엘방위군 참모총장 댄 할루츠가 텔아비브에서 가두시위를 이끈 후 내게 말했다. 그를 알아보는 행인들이 다가와 말을 거는 통에 우리의 대화는 몇 분마다 끊기기 일쑤였다. 한 젊은이는 거의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제발 우리를 떠나지 마세요." 할루츠는 양손으로 젊은이의 왼손을 잡고 말했다. "우린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전우회의 집회는 통상적인 집회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군 복무를 거의 하지 않는 초정통파 유대교인 동네에 가짜 모병소를 세우고 상징적으로 '민주주의 이스라엘'과 '독재 이스라엘'을 구분하는 검문소를 세운다. 2월 2일 열린 첫 집회를 두고 전우회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사흘 동안 집회 참가자들은 라트룬(이스라엘 독립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기로 손꼽히는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지금도 이스라엘방위군 행사가 많이 치러진다)에서 예루살렘의 대법원까지 행진했다. 나베는 춥고 비 오는 날에 15km를 걷는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첫날에는 800명이 참여했다. 이튿날에는 2500명이, 사흘째에는 1만 명이 참여했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히브리어 애국가를 부르며, 시위대는 차량 통행을 가로막으며 행진했다.
다음주가 되자 수만 명이 정부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정규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획을 밀어붙였다. 연립여당이 사법개혁 법안 몇몇을 추진하자 전우회의 입장은 보다 적대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의원 수십 명의 자택 바깥에서 집회를 벌였다. 연립여당 의원의 참석이 예정된 컨퍼런스장 바깥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 몇몇 의원들이 참석을 취소하기도 했다.
3월 9일, 나베를 비롯한 전우회 지도부는 정부의 대법원 약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예루살렘 소재의 싱크탱크 코헬렛포럼을 겨냥했다. 코헬렛포럼의 사무실 문 밖에 모래주머니와 철조망을 깔아놓고 '코헬렛은 폐쇄됨'이란 팻말을 걸어놓았다. 나베는 CCTV 영상에 걸리지 않도록 옷을 갈아입은 다음 건물 밖에 있는 수백 명의 전우회원들에 합류했다.
전우회의 공동창립자이자 나베와 마찬가지로 사이렛 매트칼 출신 예비역인 론 셔프가 이날 체포됐다. 나베는 회원들을 셔프가 구금된 예루살렘의 경찰서로 이끌었다. 그는 경찰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론을 석방하라! 그는 다음주에 예비역 복무하러 출근해야 한다!"
나베도 다음주에 예비역 복무를 해야 했다. 평소라면 고대하던 일이었다. "저는 군을 사랑합니다. 제 나라를 사랑하고요. 나라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복무를 결정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이스라엘이 민주주의 국가인 한, 전심전력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복무할 겁니다." 그는 내게 말했다. 그는 전우회의 다른 회원들에게도 그리 할 것을 권했다.
부대 내 사기는 엉망이었다. "다들 쿠데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어요. 우리 모두 두렵습니다." 나베의 예비군 업무 마지막날인 3월 15일, 그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이 현 상황이 내전으로 악화되는 걸 피하기 위해 타협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하는 걸 보았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나베를 포함해 여러 단체 대표들과 회담을 가졌다.) 네타냐후는 한 시간도 안 돼 타협안을 거부했다. "우린 이미 내전이에요." 며칠 후 그가 비통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한 말이다. 이때가 바로 티핑포인트였다.
사흘 후 전우회는 저항의 수위를 높혔다. 복무를 거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이제 전우회는 모든 예비역을 대상으로 예비역 복무를 거부하겠다는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예비역 3만 명 가까이가 서명했다. 수백 명이 이미 사법개혁에 반발하여 복무를 거부해 벌금과 옥살이를 치를 수도 있다.
나는 예루살렘의 집회에서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에서 온 샤아 시들로브스키(32)를 만났다. 그는 매주 집회에 참석했고 그날은 3개월 된 아들도 데려왔다. 전차 부대 출신으로 매년 한 달 가량 예비역 복무를 하는데 3월 마지막주에 닷새 간 복무를 할 예정이었다. 만일 부대에서 예비역 복무 중에 사법개혁 법안 어느 하나라도 통과되면 그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시들로브스키의 가족 절반은 이라크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 이라크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나머지 절반은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사법개혁이 통과되면 이 나라는 제 조부모께서 피신해 왔던 그 나라가 아니게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어쩔 수 없죠. 제 탓이 아니라 네타냐후 탓이니까요."
시위대가 '국가마비의 날'로 지정했던 3월 23일 아침, 경찰은 집회 지도부 여럿을 연행했다. 그날 오후 텔아비브에서는 물대포와 기마경찰이 시위대를 맞이했다. 같은날 저녁, 네타냐후는 다음주에 사법개혁 법안을 비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3월 27일 이를 연기한다.)
네타냐후는 "국가적 균열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베는 이를 믿지 않았다. "네타냐후가 실제로 한 얘기는 오늘부터 내가 독재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거죠." 그는 이튿날 아침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베는 낙심하지 않았다. "우린 가진 모든 힘을 갖고 싸울 겁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거고요."
한편 시들로브스키는 3월 26일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부대에 예비군 복무를 위해 소집될 예정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몇 주 내내 고민했다. 3월 25일 저녁, 갈란트 국방장관은 "점차 커지는 우리 사회 내 균열은 이스라엘의 안보에 명확하고 즉각적이며 실재적인 위협"이라고 공개 선언해 자신의 앞날을 결정지었다.
시들로브스키는 자신의 소속 부대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말씀 드리게 돼 가슴이 아픕니다만 내일 부대에 못 갑니다." 지휘관은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지금 예비역 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네. 군대는 우릴 필요로 하네. 우린 네타냐후의 군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대란 말일세."
"동의합니다." 시들로프스키는 답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근간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라는 우리의 가치관입니다. 그 계약이 짓이겨지고 있다면 저는 독재자를 위해 싸울 수 없습니다."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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