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도돌이표' 양곡 정책…식습관 바뀐지 언제인데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최근 몇 달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정국의 핵심 현안이 됐습니다. 치열한 논쟁 과정에서 여야는 쌀 과잉 생산을 막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시장격리 의무 조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렸습니다.
양곡관리법 논쟁은 쌀 재배면적을 줄이는 대신 밀과 콩 등의 재배 면적을 늘리지 못한 그간의 정책적 실패를 다시 조명했습니다. 점점 취약해져가는 식량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는데요.
먼저 나경렬 기자입니다.
[양곡법, 결국 폐기… 쌀 강제 매입 이견 못 좁혀 / 나경렬 기자]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두가지입니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내용과 공급 과잉 문제를 막기 위해 쌀 재배면적 관리를 의무화하는 겁니다.
민주당은 밀과 콩 등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원하게 되면, 쌀의 과잉 생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정훈 /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4일)> "사전 생산조정을 통해서 사후적인 과잉생산을 완전히 제거하자는 게 양곡관리법의 취지라고요. 왜 이걸 인정하지 않아요? 생산조정을 하게 되면 시장격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요."
실제, 쌀 생산조정제를 시행한 이명박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 생산과 수요는 균형을 이뤘습니다.
과잉 생산 물량은 적었고, 정부의 시장격리도 최소화됐습니다.
생산 조정 없이 농민들에게 헥타르당 100만원을 지급했던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평균 5,500억원의 시장격리 비용이 들었습니다.
정부 여당도 쌀 생산관리제도의 중요성을 부각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뒤 내놓은 양곡관리법 대안에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겁니다.
다만, 남는 쌀을 강제 매수해주는 장치인 시장격리가 의무화된 상황에선, 생산조정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덕수 / 국무총리(지난 4일)> "강제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1헥타르의 농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강제로 국가가 수매해주게 돼 있는데 내가 왜 조정을 해야 됩니까? 왜 조정을 해야 하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다시 국회로 돌아온 양곡법 개정안.
재의결 기준, 찬성 200석을 채우지 못해 결국 폐기됐습니다.
'시장격리 의무 조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 컸습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과 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법안을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대통령 거부권 이후 불거진 여야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TV 나경렬입니다.
[이광빈 기자]
농민들은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도 정부의 거부권 행사에도 농민의 목소리는 빠져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김영민 기자가 농민들을 만나봤습니다.
[쌀값 하락에 수익 급감…농민, 개정안·거부권 모두 불만 / 김영민 기자]
[기자]경남 진주에서 23년째 벼 재배를 하고 있는 전주환 씨.
곧 볍씨를 뿌릴 시기이지만, 한숨부터 납니다.
<전주환 / 농민> "옛날에는 논에 벼를 심고 생산량을 늘리면 수입이 됐거든요. 지금은 어느 정도 쌀을 생산해야 소득이 줄지 않고 쌀값도 폭락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창원에 있는 한 양곡 창고에는 800kg의 벼 포대가 천장 높이까지 쌓여있습니다.
해마다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생산량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양곡 창고는 거의 포화상태입니다.
<조정환 /농민> "쌀 소비량이 줄어가지고 이렇게 쌓여 있는데 열심히 농사지어서 쌓여있는 거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전국 양곡 창고 3천여 곳의 약 80%가 재고 쌀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양만 180만 톤으로, 적정 보관량의 2배에 이릅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습니다.
반면, 비룟값 등 생산비는 25%가량 오르면서 농민들의 순이익은 급감했습니다.
지난해 300평당 논벼 순수익률은 27%로, 재작년보다 10% 이상 감소했습니다.
"600평 규모의 논입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돼 판매된 쌀 매출액은 약 180만 원입니다. 생산비가 150만 원가량 든 것을 감안하면 농민은 고작 30만 원을 벌어들인 셈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쌀 구매 방식을 놓고 설전이 오가고 있는데, 정작 농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농민들은 쌀에 대해 최저 생산비를 보장해주고, 핵심 농산물에 대한 국가관리와 연간 40만 톤이 넘는 쌀 의무 수입 폐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주환 / 농민> "이번에 발의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농민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을 위한 양곡관리법이 아닌, 정치권을 위한 양곡관리법이 아니었나."
정부는 벼가 아닌 콩이나 밀 같은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촌의 연령대와 환경 등을 고려한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김복근 / 농민 > "옆에 논에는 쌀농사를 짓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콩 농사를 지었을 때 물이 들어갔을 때 콩 농사가 되겠느냐."
갈수록 심각해지는 쌀 수급 불균형.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보다 현실적인 농업 구조 개선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합뉴스TV 김영민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쌀은 남아도는데, 식량안보는 뻥 뚫려 있습니다. 농부들은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 생산물을 창고에 쌓아두고 정작 우리는 먹을거리를 수입하기 바쁩니다.
우리나라의 2021년 식량 자급률은 44.4%였습니다. 2017년 48.7%와 비교해 3.3% 포인트나 줄어들었습니다. 곡물 자급률은 2021년 21%에 불과했습니다. 역시 해가 갈수록 감소하고 있습니다. 쌀 소비 분량이야 대부분 국내에서 조달하지만, 밀은 1%에 불과합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습니다. 수입 의존도가 높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식량 공급망 위기는 밥상 물가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서민의 한숨만 깊어지는 것이죠. 식량 자급률이 떨어질수록 식량 안보는 위태롭게 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의 2022년 '식량안보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13개국 중 39위였습니다. 2017년 24위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세부 항목 평가를 보면 한국은 식품 안전성과 빈곤율 등에선 점수가 높았지만, 식량 안보·접근 정책에선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기후변화가 점점 더 심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작지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더욱 오를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죠. 아예 수입 루트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 식량 위기는 주요 곡물 생산·수출국의 수출제한 조치를 불러왔습니다. 수십개 국이 식량·비료에 대해 수출 금지나 수출 허가제 등의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선 식량은 무기화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무기화하고, 중동이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이듯이 말입니다.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벼 경작지를 줄이는 대신, 다른 작물 경작지를 늘려가야 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명제가 됐습니다.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후속 대책을 내놨습니다. 농가에 주는 직불금을 대폭 확대해 벼 재배 면적 감축을 유도하고, 가루쌀을 활용한 식품 개발 등으로 쌀 소비를 늘릴 계획인데요. 쌀 공급 과잉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승국 기자입니다.
["세금 어디에 쓰느냐가 문제"…농민 위한 근본 대책은 / 이승국 기자]
[기자]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과적으로 농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황근/농림축산식품부 장관(지난 4일)> "지금도 남는 쌀을 더 많이 남게 만들고, 이를 사는 데 들어가는 국민 혈세는 매년 증가하여 2030년 1조4천억 원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쌀값은 떨어지고, 쌀 재배농가 소득도 감소할 것입니다."
정부 주장의 주요 근거는 지난해 10월 나온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입니다. 의무매입제가 시행되면 지난해 25만 톤이었던 쌀 초과 생산량이 2030년에는 64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실제 국내 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 현상은 심화하고 있습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계속해서 줄어,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인 57kg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쌀 생산량은 재작년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소비 감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밀이나 콩, 가루쌀 등을 재배하면 주는 농업 직불금 예산을 크게 늘려, 벼 대신 이들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겁니다.
또 대학생에게 아침 식사를 1천원에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고, 가루쌀을 활용한 식품 개발을 지원하는 등의 쌀 소비 증진 방안도 함께 내놨습니다.
<김인중/농림축산식품부 차관(지난 6일)> "똑같은 혈세를 쓴다고 해도 그걸 어디에 쓰느냐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쌀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쓸 거냐, 수급 불균형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쓸 거냐…."
하지만 농민 입장에서 여러 혜택이 있는 벼 재배를 포기하고, 대체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기 위해선 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석호/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쌀 농가만 소득세 면제예요. 노동력이 제일 조금 들고, 쉽고. 가장 중요한 점은 재정의 효율성입니다. '전략작물 직불제'에 집중해서 보다 더, 현재보다 더 강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서 쌀 (생산) 면적을 줄이고…."
농촌 고령화 등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한호/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농지) 가격이 좀 떨어져야 젊은 사람들이 쉽게 들어갈 거 아닙니까. 고령화되는 농업 노동력이 그대로 유지가 된 채 있으니까 농업 자산이 시장에 나오질 않아요. 고령농들이 쉽게 은퇴를 할 수 있고, 그쪽에 예산을 집중해주면 '은퇴직불금'이나…."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농업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치적인 고려 없는 장기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연합뉴스TV 이승국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리포트에서 전해드렸듯이 고령농이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농촌 현실상 쌀 농사를 다른 작물 재배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쌀 농사는 노동력에서 농기계 비중이 90%인 반면, 밭농사는 60%에 불과합니다. 쌀 아닌 다른 작물 재배의 수익성이 높더라도 고령자가 익숙한 농사법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노동력까지 더 많이 들어가면 작물 전환에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줄여나가도록 세심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정부는 농민들과의 소통을 늘려가 현실의 문제점을 함께 해결해 나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식문화에서 쌀 섭취가 줄어들고 밀과 육류 등의 소비가 늘어난 것은 이미 오래됐습니다. 당국은 수십 년간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작물 재배를 다양화하겠다는 대책을 반복해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결과는 어떤가요. 결과적으로 말뿐이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양곡 관리 정책의 실패는 식량 안보에 대한 위협까지 키웠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뜨거운 맛을 봤지만, 전쟁과 자연재해 등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글로벌 리스크는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양곡 관리 실패로 인한 출혈은 결국 우리의 주머니, 세금에서 이뤄집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양곡관리법 #식량무기 #전략작물
PD 김선호 AD 허지수 송고 이광빈2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
네이버에서 연합뉴스TV를 구독하세요
연합뉴스TV 생방송 만나보기
균형있는 뉴스, 연합뉴스TV 앱 다운받기
Copyright © 연합뉴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