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격 1년도 안 됐는데…” 폭발물 테러에 일본 열도 충격
용의자 기무라 류지, 현장에서 체포
아베 전 총리 사망 때와 상황 비슷
일본 정치권, "민주주의 폭거" 규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선거 지원 유세를 하기 직전 발생한 폭발 사건으로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선거 유세를 하다 총에 맞아 숨진 지 1년도 안 돼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이번엔 부상자가 없었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23일 실시되는 중의원·참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와카야마 1선거구에서 출마한 후보자를 지지하기 위해 일본 와카야마현의 사이카자키 항구를 찾았다. 기시다 총리가 현지 해산물을 시식하고 지원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한 남성이 은색의 길쭉한 통 모양 물체를 던졌다. 남성 주변에 있던 어민들과 경찰이 그를 제압하던 중 이 물체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나고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기시다 총리는 인근 경찰서로 피신했고 용의자 기무라 류지(24)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아베 전 총리 피격 때와 정황 유사... 경호는 개선
이번 사건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 사건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해 7월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나라현에서 지원 유세를 하다가 야마가미 데쓰야(42)가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았다. 기시다 총리는 중의원 보궐선거 지지 유세를 하러 와카야마현에 왔다가 폭발 사건을 당했다. 나라현과 와카야마현은 간사이 지역 내 이웃해 있다. 두 사건의 범인이 모두 젊은 남성이고 현장에서 체포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반면 피해와 경호 수준은 달랐다. 아베 전 총리는 범인 야마가미가 직접 만든 총을 맞고 숨졌지만 기시다 총리를 겨냥한 듯한 폭발 사건에서는 폭발음과 흰 연기만 발생했을 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또한 아베 전 총리의 피격 당시에는 경호가 매우 허술했지만 이번엔 기시다 총리 주변에 경찰관이 여러 명 배치돼 경호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용의자가 은색 병 같은 물체를 던지자 바로 기시다 총리를 감싸고 피신시켰다. 수 초 후 폭발음이 나고 흰색 연기가 발생했을 때 기시다 총리는 이미 현장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아베 전 총리의 사망 후 경찰청 장관이 사임하고 경찰이 요인 경호 체제를 크게 강화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범인을 제일 먼저 제압한 사람이 경찰이 아닌 어민이었고 배낭 속 소지품을 검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경호가 불완전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그럼에도 “경찰청에 요원 경호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치권 "선거 기간에 벌어진 행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일본 정치권은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응원 유세 중 총에 맞아 숨진 데 이어 또다시 거물 정치인의 응원 유세 현장에서 폭발 사건이 벌어지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자민당의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논평을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매우 유감이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립여당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도 “지난해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폭발물을 이용한 사건이 발생한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트위터에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번 사건을 아베 전 총리 사망 당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 규정하며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행동인 것처럼 언급하는 일본 여당과 달리, 일본 네티즌 사이에선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 사이에서 고위 정치인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불안해 하는 분위기다.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역시 정치적으로는 아베 전 총리와 비슷한 입장을 취했지만 통일교 신자였던 자신의 어머니가 고액 헌금 등으로 자신의 가정을 불행에 빠뜨린 데 분노해 범행을 일으켰다. 한 네티즌은 “궁핍에 시달리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며 “실질임금 하락, 격차 사회, 소비세 증세, 물가 상승 등으로 국민의 분노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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