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초기 지원 가장 절실… 귀농인들 자립 기반 다지는 게 목표” [귀농귀촌애(愛)]

한현묵 2023. 4. 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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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성룡 전남 광양귀농어귀촌협회장
귀농 2년만에 수억원 빚더미··· 기댈 곳은 없었다
하수오 작물 2년간 종자값 등 2억2000만원 들여 재배
수확 눈앞서 물난리 한푼도 못 건져 고스란히 빚더미

나성룡 전남 광양귀농어귀촌협회장은 귀농 후 ‘억울한 빚더미’에 앉았다. 귀농 3년째인 2019년, 그는 약용 작목인 하수오 농사를 짓기로 했다. 흰머리를 검게하고 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수요가 있는데다 가격도 비싼 편이라 고소득을 기대해 볼만 했다. 

약초 재배 교육을 받은 나 회장은 농협에서 귀농자금 1억6000만원을 빌려 하수오 종자를 샀다. 광양 진산면의 논 3960㎡(1200평)을 임대해 하수오를 심었다. 하수오는 뿌리당 500원으로 비싼 편이다. 하수오는 구멍 하나에 3∼4개를 심지만 생육시기에 튼실한 한 뿌리만 남겨놓고 모두 솎아줘야 한다. 나 회장은 자식 키우듯이 2년간 하수오 재배에 온 정성을 들였다. 2021년 여름 하수오 뿌리는 50cm 크기로 자랐다. 두 달만 더 자라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계약 재배를 해 판로 걱정도 없었다. 계약재배 납품 가격은 ㎏당 1만3500원으로 수확만 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회장의 부푼 꿈은, 그해 여름 물난리로 물거품이 돼 버렸다. 여름철 계속된 장마로 하수오를 심은 논에 배수가 되지 않으면서 뿌리가 모두 썩어버렸다. “인재예요” 그는 논에 물이 빠지지 않는 것은 논 옆에 들어선 코레일의 신역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신역사가 완공된 이후 논의 배수로가 사라졌어요. 게다가 역사 처마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논으로 떨어졌어요” 나 회장은 논의 배수로가 있었다면 물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수오는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농작물이다. 당연히 보험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나 회장은 물난리로 하수오를 한 개도 건지지 못하면서 빚더미에 나앉았다. 하수오 종묘값 1억6000만원과 2년간 재배에 들어간 6000만원을 합해 모두 2억2000만원의 빚을 지게됐다. “억울해요. 너무 억울해요” 나 회장은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민신문고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해당 기관은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억울하게 2억원대의 빚을 졌지만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억울하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가슴앓이가를 하다가 건강도 잃을 뻔했다. 나 회장은 억울한 빚을 받아들이기로 체념했다. 

그는 매월 30만∼40만원에 달하는 귀농자금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한다. 귀농 첫해에 구입한 1320㎡(400평) 임야에 심은 매실과 고사리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4월 7일 광양 진천의 고사리 밭에서 본 나 회장은 농부였다. 그는 허리를 숙여 고사리를 찾아 꺾은 후 허리춤에 찬 포대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는 풀속에서 자라는 고사리를 잘도 찾아냈다. 수확한 고사리를 삶아 건조까지 해야 판매를 할 수 있다. 고사리 농사를 지어도 한해 수입은 4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산에 능이버섯 채취도 한다. 능이버섯은 ㎏당 15만원으로 쏠쏠한 소득원이다. 한푼이라도 벌기위해 동네 일손돕기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나 회장은 광양 백운산에 반해서 귀농했다. 인천에서 직장에 다니던 그는 2010년 백운산 등산을 했다. “부모의 품처럼 포근했어요” 백운산 품에 살겠다며 광양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렇다고 당장 귀농은 하지 않았다. 광양의 한 대기업에서 건설노동자로 6년간 일을 했다. “노조 일을 했는데,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어요”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는 귀농해 정부와 지자체의 불합리한 귀농제도 개선에 앞장섰다. 정부는 4950㎡(1500)∼6600㎡(2000평)의 농사를 짓는 소농인에게 직불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귀농인은 이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귀농인의 성패는 귀농 후 3년간에 달려있어요” 나 회장은 귀농 초기가 가장 지원이 절실한 시기라고 했다. 대부분 소농으로 귀농한 귀농인들이 소농 직불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그는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귀농 5년차인 2021년, 160명의 회원이 가입한 광양귀농어귀촌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임기 2년의 직선제로 바뀐 지난해 그는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나 회장은 억울한 빚을 지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귀농인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 회장은 협회의 여러 동아리를 만들고 이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관심있는 작물 동아리를 꾸려 농업법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게 목표예요” 나 회장은 협회에서 자금을 지원해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는 동아리 활동의 체험장으로 하수오를 재배했던 논을 내놓았다. 올해는 선도 동아리를 선정해 지원의 선택과 집중할 방침이다.

나 회장은 주말에 예비귀농인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도 그는 예비 귀농인 4명과 함께 고사리와 두릅 수확 체험을 했다. 선도 귀농인을 찾아 이들에게 작물 재배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에게 적합한 작물이 어떤 것인지 짧은 시간이지만 체험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나 회장은 정부와 지자체에 쓴 소리를 했다. “논과 밭의 가격이 3.3㎡(평당) 30만원이 넘어요. 귀농자금 3억원으로 3300㎡(1000평)을 사면 남는 돈이 없어요” 그는 귀농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땅이라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귀농인에게 싼 값에 임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광양=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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