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박은석 “외줄타기 하는 불안정한 삶..나만의 색 찾아가는 중”[인터뷰 종합]

김나연 2023. 4. 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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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나연 기자] 배우 박은석이 연극 ‘파우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박은석은 ‘파우스트’에서 젊은 파우스트 역을 맡았다. 작중 파우스트(유인촌 분)는 신과 내기를 한 악마 메피스토(박해수 분)와 거래로 마법의 약을 마시고 젊음을 얻게 되는 인물. 지난달 31일 개막해 공연에 한창인 박은석은 “원캐스트는 오랜만에 해서 체력적으로 많은 조절이 필요하다. 매일 1300석이 되는 공간이 꽉 차다 보니 매일 첫공 하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전이라는 점 때문에 ‘파우스트’에 끌렸다는 박은석은 “굵직한 걸 하고 싶다는 목마름도 있었다. ‘파우스트’가 무겁고 어렵고 거대한 무게감이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았고, 어떻게 보면 대학로에서 10년 넘게 연극 해왔던 저로서는 또 다른 도전이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알을 깰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다만 고전극인만큼 대사에 있어서는 한층 더 어려움이 뒤따랐다. 박은석은 “그런 장면이나 고전적 문맥은 유인촌 선생님 화술이나 톤을 가져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그걸 모방이라기보다 흡수하는 게 어려웠지만 공연이 진행되면서 확실히 이게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어졌지만 영혼은 아직도 늙은 파우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또 그레첸(원진아 분)과 있을 때는 완전 다른, 사랑에 빠진 청년처럼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진정성 있게 느끼며 뱉어야 하는 만큼 “발이 땅에 닿아있는 연기를 하는 걸 배웠다”는 그는 ‘원캐스트’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전했다. 박은석은 “체력적으로는 확실히 단점이다. 체력관리를 잘 해야하고 특히 목 관리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근력 운동이 될 수도 있다”며 “장점은 많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호흡으로 있으니까 변수가 적고 사람들끼리 케미도 훨씬 좋아진다. 모두가 집중이 돼 있다”고 말했다.

박은석은 파우스트가 마법의 약을 먹고 젊음을 얻은 2막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1막에서 뒤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다. 그날의 흐름, 유인촌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그걸 흡수하고 있다가 받아서 2막에서 잘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며 “마녀의 약이 단순히 젊어지는 것도 있지만 사랑의 마법 약이라 생각한다. 큐피트의 장난처럼.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2막에서는 오로지 그레첸한테 집중하고 있으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잘 풀리는 것 같다. 그레첼과 첫 만남 첫 신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전했다.

젊은 파우스트를 연기하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늙은 파우스트가 말한 ‘두 가지 영혼’의 존재였다. 박은석은 “두 가지 영혼의 존재감을 많이 가져가려 한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고. 그런 내면이 젊은 파우스트의 가장 큰 고민이자 모든 현대인을 비추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파우스트’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 박은석은 이번 도전을 통해 얻은점을 묻자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인내심도 배우고 있고, 팀워크도 배우고 있고, 조금은 절제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또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팀원들이 보여주는 서포트와 그런 사랑이 사실은 원캐스트가 아니었다면 못 느낄만한 것이다. 극단 시스템을 처음 해보는데 극단이 힘들면서도 그 중간에는 ‘여기는 사랑이 있는 공간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서로 지나치고 인사 대충하기 쉬운데 매일 컨디션 물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위로해주고. 그런 것들이 놀랍다. 잊고 살았던 부분이기도 하고. 맨땅에 헤딩하며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쳐가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말들과 위로가 이렇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연기적으로는 어떤 걸 얻었을까. 박은석은 “결국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다 결론적으로는 연기에 도움이 된다. 배우는 삶과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제가 이런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무대 위에 올라가서 사랑이나 위로나 격려를 연기할 때 더 잘 표현되지 않을까 싶다. 저는 발성, 동선 이런 걸 떠나서 매일 삶 자체가 연기공부다. 직업병인 것 같다”며 웃었다.

어느덧 박은석이 연극을 통해 관객을 만난지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며 “그때나 지금이나 성향이 변하진 않고 똑같다. 느낌상 그때도 연기가 너무 좋았고, 작품에 목마름이 있었고, 작품을 가리지 않고 읽었을 때 내가 이 작품을 하는 게 상상되면 무조건 뛰어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비슷하다. 저는 지금도 편식이 없다. 계산하지 않고 대본을 봤을 때 내가 하는 게 상상되는 게 있고 전혀 안 그려지는 작품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작품 선택 기준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도전적이고, 거칠게 살아온 것 같다. 그게 제 성향이고. 몸도 안 사린다.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이렇게 밀어붙이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그 안에서 여유를 찾고 싶다. 배우로서 꼭 (작품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 같진 않더라. 그 안에서 개인적 여유도 필요하고, 관객들 또한 제가 1년 내내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그 어떤 작품하나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적어도 내가 택한 작품은 관객들과 제가 느낀 감동이나 내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지점을 공유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면 현재 박은석이 목말라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현재 OTT가 굉장히 많고 아시아 시장이 인기도 많고 힘도 있다. 그만큼 좋은 기획들도 있고 좋은 작품도 있다. 물론 자극적이고 대중한테 잘 팔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 사회가 봐야 하는 그런 작품, 휴먼드라마 같은 작품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자극적인 것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간 본질을 잃게 되고, 본질적인 것만 얘기하기엔 너무 빠른 템포의 시대라 집중력이 떨어져 있지 않나. 그 중간을 잘 가져갈 수 있는 작품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고 털어놨다.

작중 파우스트가 그랬듯, 박은석이 느끼는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불안정하다. 주변에 회사 생활 하는 친구 보면 정해진 삶, 안정적인 삶이 있다. 제때 휴가 가고, 몇 개월 치를 먼저 계획할 수 있거나, 은행 대출이 잘 나온다거나. 이런 것들이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갇혀있는 것도 있지만 보장되는 부분도 확실히 있다. 저는 너무 불안정하다 보니 내가 얼마만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한해가 안 좋을 수도, 좋을 수도 있다. 지금 잘한다고 내년이 보장되는 게 아니고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다”라고 고민을 전했다.

이어 “너무 많은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이고 많은 플랫폼, 많은 경쟁자들도 있다 보니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나로서 내 자리를 계석 지켜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갈등도 있다. 결국에는 내가 거기에 따라가거나 그 그림자에 갇혀있다기 보다 내 색깔, 내 빛을 내는 게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나만이 낼 수 있는 빛과 색을 항상 찾아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이 길이 아닌가?’하고 돌아갈 때도 있고. 항상 그렇다. 인생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40대에 접어든 박은석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향후 10년”을 꼽았다. 그는 “연기적 인생과 개인적 건강에 대해 지금부터 관리 들어 가야 한다. 물론 예전에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몸소 느껴지고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가져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10년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묻자 “딱히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계획 없이 평생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획 없이 살고 싶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거기서 오는 회의감이 있을 뿐더러 사실 삶이 아름다운 게 계획보다 더 좋은 일들이 있을 때 있다. 그래서 그냥 매 순간 거기에 진실성을 담고 진정성 갖고 임한다면 그 다음 문이 열릴거라 생각하며 산다”고 답했다.

그는 “등산도 마찬가지다. 꼭대기만 보며 걷다 보면 지친다.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지?’하지 않나. 이런 인생을 살고 있다. 종이배 하나 접어서 물 위에 얹어놓고, 그 흐름대로 가다가 가끔 젖어서 찢어지면 좀 쉬다가 새로운 종이배를 접고. 그렇게 살아왔다”면서도 “향후 10년은 종이배보다는 플라스틱 정도로, 조금 더 단단한 배를 접어서 들이닥치는 흐름을 더 잘 타야죠”라고 덧붙였다.

현재 박은석은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소속사가 없는지 거의 1년 됐다. 물론 그 사이에 연락 오시는 분들도 있고 지금도 있다. 천천히 알아보고 있다. 물론 좋은 기회 있어서, 삼박자가 맞아서 뚝딱 가면 좋긴 하겠지만 지금 제가 빨리해서 빨리 떠야하는 나이는 아니다. 지금부터 평생 할 연기기 때문에, 앞으로 함께 배를 타야 하는 식구들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석은 ‘파우스트’를 하며 어떤 평가를 얻고싶냐는 질문에 “당연히 ‘연기 좋다’, ‘연기 잘 한다’, ‘이런 연기도 가능하구나’라는 평을 듣고 싶다. 향후 또 하나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고, 단순히 대학로뿐 아니라 언젠가 극단 작품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본 ‘파우스트’ 중에 가장 재밌는 ‘파우스트’였다고 하면 성공한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delight_me@osen.co.kr

[사진]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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