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감산 카드 꺼낸 삼성전자의 승부수 [권상집의 논전(論戰)]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삼성전자가 25년 만에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투입량을 줄여 생산량을 감축하는 감산 계획을 공개했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삼성전자가 반도체 감산을 공개적으로 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감산 소식이 나오자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나타냈다. 삼성전자는 거시 환경이 급변해도 늘 핵심역량에 꾸준히 투자하며 역발상 전략을 통해 반도체 치킨게임을 주도해온 기업이다. 감산을 선택한 이재용 회장의 승부수는 무엇일까.
삼성의 변화를 몰고 온 메모리 불황
삼성전자는 인터브랜드가 주관한 2022 글로벌 브랜드 파워 순위에서 전 세계 5위를 차지한 국가대표 기업이다. 삼성보다 앞서는 브랜드는 애플, MS, 아마존, 구글뿐이다. 일본의 자존심 도요타, 혁신의 대명사 테슬라, 반도체의 명가 인텔, 페이스북의 메타 등도 삼성전자의 브랜드를 넘지 못했다. 지난 30년간 삼성전자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가전 등 부품과 완제품을 잇는 완벽한 포트폴리오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부품 산업을 상징하는 DS(Device Solution: 반도체·디스플레이)와 완제품을 의미하는 DX(Digital Experience: 스마트폰·가전) 부문은 전략적으로 삼성전자의 실적을 잘 견인해 왔다. 부품과 완제품의 시장 상황과 수요·공급의 흐름이 각각 달라 환경이 급변해도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구조다. 예컨대, 2019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 시 갤럭시노트10이 성과를 지켜낸 방식이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토대로 성과를 창출하던 상황에 급제동이 걸린 이유는 삼성전자의 실적 하락에 있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선방해도 수요 둔화에 따른 반도체 업황 악화는 삼성전자의 적자 폭을 키우는 '미운 오리'가 되는 데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자존심인 DS 부문에서만 4조5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낸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다. 시장에선 인위적으로 반도체 감산에 나서야 업황이 살아날 수 있다며 삼성을 압박했다.
지난 1월 감산을 시사한 경영진에 이재용 회장은 "자신 없으세요?"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불황 때마다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경쟁자들이 감산과 축소경영에 나설 때 삼성은 지속적인 투자로 경쟁자를 밀어냈고, 불황이 끝나면 해당 시장을 더욱 확고히 장악해 나가는 승자의 법칙을 유지해 왔다. 반도체 감산 방향에 대해 '자신 없냐'고 물은 이재용 회장의 의도는 경영진에게 역발상 전략을 주문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역발상을 꿈꾸기엔 회사 안팎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스마트폰, 컴퓨터, 그래픽 메모리, USB 등에 사용되는 데이터 저장용 부품이다. 해당 품목은 경기 사이클을 심하게 탄다. 우리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몇 년간 불황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96% 줄어들었다. 수요가 줄어들면 공급을 줄이는 건 상식이다.
사실 삼성전자의 고민은 넥스트 메모리 반도체에 있다. 늘어난 재고를 풀기 위해 감산을 결정하면 업황은 어느 정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다만, 공급을 줄여도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회복세가 더디다면 기대하는 업황 호전 역시 쉽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메모리 반도체는 글로벌 경기 흐름, IT 분야의 세트제품 생산 여부에 늘 의존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 취임 후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이유다. 2022년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매출액의 30.1%, 영업이익의 54.8%를 담당하고 있다. 모바일·네트워크는 아직 영업이익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고 디스플레이 역시 매출액과 영업이익 양쪽에서 15% 미만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30%에 불과하다. 70%가 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삼성은 이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로 시스템 반도체, 전장, AI를 꼽았다. 세 가지 모두 수요 감소, 시장 상황에 영향을 덜 받는 미래 성장엔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업체 주문에 따라 생산을 진행하기에 재고 부담과 경기 사이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부문의 강자 TSMC는 반도체 불황을 그래서 늘 피해 간다. 전장과 AI는 바퀴 달린 컴퓨터 콘셉트의 모빌리티 적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삼성전자의 새 고민, 미래 먹거리
그러므로 반도체 감산 이후가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삼성은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대만의 TSMC는 선도기업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선언했다. TSMC는 올해만 무려 50조원을 투자한다. 막대한 투자로 경쟁자를 압도하는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과 동일한 방식이다. 퀄컴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TSMC에 의존하는 상황이어서 추월이 쉽지만은 않다.
하만 인수를 통해 공들인 전장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가 아직 부족한 편이다. 2016년 삼성전자는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하기 위해 80억 달러(9조3800억원)를 투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M&A(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였지만 영업이익 면에서 하만은 삼성에 지금도 2% 남짓을 보태는 실정이다. AI 역시 블루오션을 넘어 레드오션으로 치닫고 있다. 어느 하나 삼성이 자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야다.
관건은 M&A에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M&A를 3년 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 동안 별다른 소식을 전해 주지 못했다. 물론, 부회장 직속 신사업 TF를 꾸린 후 수능 수석 합격으로 유명한 정성택 부사장이 해당 TF장을 맡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및 전장 M&A를 조용히 물색하고 있다. 올해 시설투자액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53조원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전장, 배터리에 열심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첨단기술 기업의 미래 패권은 어디에서 결정될까? 모빌리티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자율주행차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는 모빌리티의 혁신 속도는 삼성전자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모빌리티 시대를 전망하고 있는 시장 그리고 대중은 이재용 회장이 경영진에 던진 질문을 조만간 그에게 다시 던질 것이다. "자신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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