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이 로비스트" 자처한 이정근…증거인멸 정황도

김진아2 기자 2023. 4. 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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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모 장관과 언니동생"…인맥 과시하며 돈 요구
일부 청탁 실행…"로비스트 기질 있어" 자칭도
무마 정황, 보석도 청구…法 "성찰 없다" 일침

사업가로부터 청탁을 빌미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뉴시스DB. 2022.09.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각종 청탁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해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1심이 이례적으로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데는 지위를 이용해 수억원대 돈을 받아 챙긴 정황이 뚜렷한데도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는 태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스스로를 '로비스트'라 칭하며 범행을 저지르고, 수사가 시작되자 허위증거를 만드는 등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했던 정황까지 모두 판결문에 적시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의 1심 판결문에는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과 행정부처 장관 등 정계 인맥을 과시하며 사업가 박모씨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일부 알선을 실행해 옮긴 정황 등이 담겼다.

이 전 부총장은 박씨와 만났을 무렵인 2019년 당시 50억원가량의 부동산, 10억원 상당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담보 설정 등으로 현금 유동성은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는 2013년과 2015년에는 각각 2700만원, 6800만원 상당의 세금을 체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재판부는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이 전 부총장이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실제 이 전 부총장이 당시 모 부처 장관을 'A씨와 친언니 동생처럼 지낸다'는 등 정치권 인맥을 언급하며 박씨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정황이 담겼다. 또 박씨의 청탁에 대해서 일부 기관에 연락을 취해 '잘 부탁한다' '편의를 봐달라'고 하는 등 일부 알선을 실행한 사실도 적시됐다.

뉴시스DB.


실제 재판 과정에서 박씨는 이 전 부총장이 '초선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이 등을 거론하며 선거 자금이 부족하니 도와 달라고 여러번 부탁했다" "공천을 받으려면 로비를 해야하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진술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이 전 부총장은 지난 2020년 박씨와 대화 과정에서 '내가 해보니까, 나는 로비스트로서 기질이 있어''나는 역시 로비스트가 맞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이 발각될 것 같자 이 전 부총장은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청탁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자 박씨는 '미안하지만 동생, 1억 주면 웬만한 정치인들은 더한 것도 해준다'는 등 압박을 받던 이 전 부총장은 일부 금원을 반환했는데, 재판부는 "차용금 채무 변제를 위한 것이 아닌 채무 변제를 가장한 자금 회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의 범행을 법정에서 증언한 박씨의 진술이 설득력을 갖춘 반면 이 전 부총장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씨의 진술은 세부사항은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주요 부분은 믿을 만하다"며 "박씨로서는 금품 명목을 차용금이라 주장해야 민사적으로 반환 청구가 용이한데도 알선 등에 관해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짚었다.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전 부총장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면서 박씨가 거짓을 말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가 이 전 부총장에게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보다도 높은 형을 내린 것은 그가 재판 과정에서 뚜렷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는 등 행보를 보인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는 이 전 부총장에게 징역 4년6개월 선고와 9억8000만원을 추징을 명령했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검찰 수사관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앞에서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검찰은 윤 의원이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대표 선거 관련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윤 의원 및 관련자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2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3.04.12. 20hwan@newsis.com


이 전 부총장은 결심공판에서 "박씨와 같은 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어버린 제 무능에 대해 수치스러울 뿐이고, 주제넘게 이웃을 돕고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정치를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는 "구속 이후 반성과 참회를 하고 있고 이 때문에 보석 신청조차 요청하지 않았다"고 호소했지만 선고 직전인 지난 6일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위당직자란 지위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정치자금과 알선 대가로 10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했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공판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며 범행을 부인했고, 금품 공여자를 비난하며 잘못된 행동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공공기관 등 직무 공정성에 대한 사회 시노리를 저해했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훼손해 민주정치 발전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져버렸다"며 "정당인으로서 고도의 염결성이 요구되는 점을 고려하면 엄벌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 전 부총장 사건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확산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취 파일을 분석하던 중 2021년 5월 전당대회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 전 부총장으로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에 나섰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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