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지급보증 담보자산 상향 검토… 금리인상은 물가경로 확인 후 결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현지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현지 시각)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끝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사례를 반추, “한국은 디지털 뱅킹이 활성화 돼 있어 예금 인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춘계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이날 현지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비롯한 미 은행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 은행 관계자들은) SVB 사태가 많은 정책적 과제를 남겼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라며 “SVB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형 은행과 소형 은행들은 문제가 없다는 점은 확인됐지만, SVB와 같은 중형 은행들은 디지털 뱅킹 등으로 인한 속도 관리 문제가 있어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어 “비슷한 사태가 한국에 발생할 것이란 말이 아니다. 한국은 훨씬 더 안전하다”고 전제를 달며 “만일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한국은 디지털 뱅킹이 발전돼 있어 예금 인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과거에는 은행 한 곳이 문을 닫으면 4~5일 내에 예금을 돌려줬다. 그래도 사람들이 기다렸다”며 “지금은 그만큼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파산하는 은행이 빨리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불안이 번지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 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보통 한국은행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들은 지급 보증을 위한 담보 자산을 갖고 있는데, (SVB 사태 당시 그랬던 것처럼) 결제가 확 늘어나면 그에 맞춰 담보도 늘려야 할 것”이라며 “은행의 담보 수준이 적절한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뱅크런 등에 대비해 지급 보증을 위한 은행의 담보 자산을 높이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높여야 하는지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안전장치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가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엔 물가가 3%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고, 하반기에도 물가가 3% 초반이나 그 밑으로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며 “유가, 미국의 통화정책 등 불확실성이 있으니 ‘지금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게 금융통화위원회의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말 부동산 가격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올해 초부터 하락 속도가 많이 둔화돼 걱정을 덜 하고 있다”며 “연착륙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세큘러 스태그네이션(경제활동의 장기침체)’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대비를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