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배’ 위그선, 제2 반도체 될 수 있을까

이장수 뉴프레임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2023. 4. 1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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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업체가 개발한 아론 M80, 세계 최초 선급인증 획득
시장 선점 위한 금융·정책적 지원 아쉬워

(시사저널=이장수 뉴프레임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은 수출과 수입 물동량 대부분이 해상운송 수단인 선박을 통해 이뤄진다. 선박은 대형 화물을 운반하는 데 유리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수면 비행 선박인 위그선(WIG·Wing In Ground)이 최근 새로운 해상운송 수단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그선은 속칭 '하늘을 나는 배'로 알려져 있다. 몸체와 날개가 해수면에 가까울 때 공기가 갇히는 에어쿠션(Air Cushion) 현상을 이용한다. 배가 물 위에 떠 비행하기 때문에 해수면 저항을 받지 않고 속도도 빠르다. 최대 시속은 250km, 순항속도는 시속 160~180k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연료비 역시 기존 선박이나 헬리콥터보다 20~50% 적게 들고, 정박지(계류장) 등 인프라 비용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하늘을 나는 배'로 불리는 위그선이 최근 새로운 해상운송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전남 여수에서 시험 운항을 하고 있는 위그선 모습 ⓒ연합뉴스

수면 효과 이용해 250km 운항 가능 

때문에 위그선은 그동안 해상 관광이나 화물운송 등 상업용뿐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위그선은 구소련 시절 군사용으로 개발돼 흑해에 처음 출현했다. 당시 서방 측은 워낙 거대하고 괴물 같아서 상세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나중에 정보가 공개되고 보니 지금의 위그선이었다. 구소련은 군사용으로 이 위그선을 사용하려 했으나 현실적인 문제 탓에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나라가 위그선 개발을 시도했으나 뚜렷한 실적 없이 계획을 접어야 했다. 경제성과 기술 부족, 시장 여건 등의 이유로 개발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일례로 위그선은 바다 위를 떠다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장애물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고속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충돌 방지를 위한 전방 감시 레이더와 상호 교신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담보할 기술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운송 효율 면에서도 위그선은 대형 선박에 비해 낮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한 업체가 세계 최초로 위그선 개발에 성공(선급인증 획득)해 주목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면 선박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아론비행선박(주)의 아론 M80이 주인공이다. 아론 M80은 그동안 문제로 지적됐던 위그선의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 위에서 전복되지 않는 삼동선(중앙 선체 양옆에 2개의 작은 선체가 추가되는 구조) 디자인을 적용, 엔진에 고장이 발생해도 물 위에 안전하게 착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론비행선박 측은 당분간 소규모 관광이나 정부의 관용선으로 투입될 5~8인승 위그선 위주로 생산할 예정이다. 최근 국내 연안여객선 업체인 울릉도코리아(주)와 위그선 20여 척을 납품하는 계약을 마친 상태다. 납품이 완료되면 속초나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1시간대 운항이 가능하다. 운항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울릉도는 물론이고 섬이 많은 남해안 도서 지역의 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도 추진 중이다. 올해 3월 이탈리아 최대 여객선사인 알리라우로 그룹과 5척(165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맺었다.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 등과도 수출계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대형 위그선을 개발해 기존 선박의 일부를 대체하고 군사용으로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위그선이 향후 반도체나 LNG선, 이차전지, SMR(Small Modular Reactor·소형 모듈식 원자로) 등을 잇는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국내 조선업체들이 새로운 분야인 위그선 사업을 선점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 같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6월 위그선을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했다. 통상 위그선은 해양수산부 고시 선박 기준(수면)에 따라 A타입과 B타입으로 구분된다. A타입은 수면 효과의 범위 내에서 운항하도록 승인된 수면 비행 선박이다. 반면 B타입은 수면 효과 범위를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국제엔진항공협회에서 규정한 항공기의 최저 안전고도(150m) 이하로 운항이 가능하다. 국내 업체는 주로 B타입을 개발 중이다.

중국·일본 등은 시장 선점 위해 대규모 투자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국내 위그선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로 생산업체 수가 많지 않다. 다양한 업체의 진출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위그선은 주요 핵심 부품인 엔진, 프로펠러 등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국산화도 필요하다.

정부 지원도 아쉬운 대목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위그선 역시 개발 초기에는 기술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창업 초기에는 운영자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은 담보 위주로 심사를 하기 때문에 대출 문턱이 높다. 납품 실적 요구 등으로 초창기 벤처 자금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중국이나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치열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며, 위그선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과 대조된다. 정부는 향후 장래성, 혁신을 감안한 사업성 위주의 검토가 필요하며 정부의 장기적이고 저리의 정책자금 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위그선의 경우 초도선 개발이 완료된다 해도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 부지와 생산설비 확보도 필요하다. 현재는 위그선 클러스터 지역을 추진하고 있으며 자금과 판매처 확보가 완료되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금 확보나 대량생산 체제 구축과 함께 위그선을 운항하기 위한 조종사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위그선은 수면 위를 비행기처럼 날기 때문에 조종사 배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조종사 양성에 필요한 전문 교육기관 확보도 필요하다.

중국의 파상공세에 밀려 그동안 침체된 국내 조선산업이 최근 회복되면서 수주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일감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다. 하지만 중국의 거센 도전으로 신규 수주 활동은 LNG선을 제외하고 잠시 주춤한 상태다. 주요 수요처인 러시아의  쇄빙선 등 대량 발주가 예상됐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주가 지연되고 있다. 위그선이 '조선 강국'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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