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야당 강행 법이 아니다?
간호법이 여의도의 뜨거운 이슈가 됐습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대통령실은 양곡법에 이어 거부권 카드로 맞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본회의에서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종용하며 상정을 미뤄 충돌을 피했지만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의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간호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여야 간 쟁점 법안이 됐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심사보고서를 보면, 간호법안은 "의료법의 의료인 범주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간호에 관한 사항과 간호인력의 양성, 수급 및 근무환경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인 법률 체계로 제정"하는 법안입니다. 즉, 의료법 안에 들어있던 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따로 법을 만들어 규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간호법안은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뒤 법사위에 가로막혔다가,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돼 본회의 상정을 앞둔 상황입니다. 2005년부터 간호법 제정을 요구해 온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사 단체들은 이대로 통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사단체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문항은 제1조입니다.
간호법안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을 도모하여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는데, 이것을 근거로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밖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하려 할 거라며 반대하는 겁니다. 의사 없이 간호사 단독으로 요양병원 같은 의료기관을 차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법을 개정해서 결국에는 추진할 거로 의심합니다. 물론 간호사 단체들은 간호법에는 그런 문구가 없을뿐더러, 의료기관 개설을 담은 법률은 의료법인데 간호사의 개설권은 명시돼 있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이재명 두 후보 모두 간호법 제정을 약속해 '공통공약'인데다,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게 작년 5월로 1년 가까이 지난 만큼 이제 처리할 때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여당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야당이 입법 폭주, 날치기 처리에 나섰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은 애당초 여당의원도 동의해 상임위를 두 번이나 통과한 법안이라며 재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간호법이 어떻게 본회의 문턱까지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작년 5월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이 법안을 상정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논의를 더 해야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런데도 위원장이 아랑곳하지 않고 심의에 들어가자 강기윤 간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은 자리를 떠버렸습니다. 다만 딱 한 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최연숙 의원이었습니다. 최 의원은 앞서 상임위 소위원회에서도 여당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심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통과된 법안은 법사위로 넘겨졌지만, 여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는 처리를 미뤘습니다. 결국 올해 2월 민주당은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합니다. 직회부를 위해서는 상임위 재적 위원 3/5이상, 즉 보건복지위 위원 15명 이상이 찬성해야 했는데, 표결 결과는 찬성 16명이었습니다. 복지위는 야당인 민주당 의원이 14명, 정의당 의원이 1명입니다. 무기명 투표이기는 하지만 법안을 반대해 온 국민의힘에서 1표 이상의 반란표가 나온 걸로 해석됩니다. 최연숙 의원은 이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본인도 언론 인터뷰에서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비례대표인 최연숙 의원은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38년간 간호사로 일했고,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간호부원장을 지냈습니다. 간호법 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간호법 상임위 처리과정에서 직역 대표로서 역할에 충실했던 셈입니다. 직회부가 결정되자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야당이 의사-간호사간 갈등으로 "의료대란을 일으켜서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위 소위부터 상임위 처리와 직회부까지 전 과정에 여당 소속인 최 의원이 참여하면서 '야당의 단독처리'라고 비난하기는 어렵게 된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도 찬성한 법안'이라며 줄곧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 의원은 원래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었습니다.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한 뒤 두 당이 합당하면서 국민의힘 소속이 됐지만, 원래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사무총장까지 지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20년 코로나19 자원봉사를 위해 대구 동산병원을 찾았을 때, 안 대표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간호법 제정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최의원을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정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겁니다.
여권이 대통령 거부권 카드를 천명하며 맞붙기에 난처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간호법 제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고 야권과 간호사 단체들이 주장하고 나선 탓입니다. 사실 대선 당시 공약집에는 간호법 내용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대한 간호협회와 가진 간담회에서는 "간호 협회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국민의힘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언론들도 '간호법 제정 약속'으로 보도했습니다. 물론 여권은 '대선공약이 아니었다, 또 정부와 여야 합의가 된 안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하지만, 거부권 행사 시 공약 파기 논란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간호법이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시점은 작년 5월입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으로 이미 기사화됐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도 법안을 발의한 데다, 의사 단체들의 강한 반발도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이어져 왔습니다. 당정이 최근 부랴부랴 중재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협의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핑계를 대기에는 군색한 이유입니다. 오는 27일까지 정부와 여야가 직역 갈등을 해소 할 만한 대안을 찾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세옥 기자(okle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3/politics/article/6474327_361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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