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호화 변호인단엔 마약전문 검찰 전관…“어이가 없네”
영화보다 영화 속 노래가 더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미셸 파이퍼가 슬럼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나왔던 영화 <위험한 아이들>과 영화 주제가로 쓰인 쿨리오의 노래 ‘갱스터 천국’도 그렇다. 영화도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나 노래는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빌보드 집계에 따르면 그해 1995년에 발표된 가장 히트한 노래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주연 배우와 가수의 실제 삶은 반대로 흘러갔다. 미셸 파이퍼는 그 영화 뒤로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간 반면, 단숨에 힙합계의 슈퍼스타로 부상했던 래퍼 쿨리오는 얼마 안 있어 인기가 추락했다. 그 뒤로 들려온 쿨리오의 근황은 영화에 깜짝 출연하거나 여자친구를 폭행해 물의를 일으키는 등 음악과 상관없는 것들뿐이었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쿨리오의 이름을 다시 본 건 작년 가을이었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그게 그와 관련한 마지막 소식이 되는 듯했지만, 며칠 전 깜짝 뉴스가 전해졌다. 그의 사인이 단순한 심장마비가 아니라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뒤늦게 공식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미국에서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바로 그 펜타닐이다. 이 약은 극소량만 먹어도 생명이 위태로운 대신, 값은 싸고 구하기도 쉽고 중독성은 강해 엄청난 속도로 미국에 퍼져 총기 못지않은 사회문제가 되어버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마약과 관련해 가장 떠들썩한 사건은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사건일 테다. 한두번도 아니고 한 종류도 아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의 발표에 따르면 유아인은 프로포폴, 대마초, 코카인, 케타민, 거기에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졸피뎀까지 손댔다고 한다. 팬들은 선망했던 스타가 습관적으로 온갖 종류의 마약을 투약해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뒤이어 강남 학원가에서까지 마약을 이용한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주변에 마약이 얼마나 널리 퍼져버렸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유아인의 유명한 대사가 지금 상황을 보는 우리 마음을 대변해준다. “어이가 없네?”
유아인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뒤로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면면이 아주 화려한데, 대표 변호사인 박성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잠깐 알아보자. 그는 검찰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국내 마약 수사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검사였고,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장기 연수를 다녀와 대검찰청 마약과장까지 지냈다. 10년 전 이승연·박시연·현영·장미인애 등 여러 연예인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을 수사해 기소까지 했으며 세번이나 검사장을 지내며 작년까지도 검찰에 근무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마약사범의 변호를 맡은 것이다. 뭔가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공인들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있다.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감내하겠다는 무언의 합의가 그들이 벌어들이는 고소득이나 쥐고 있는 권력에 포함된 것이다. 유아인은 그 합의를 깨뜨렸고, 공인으로서 삶은 상당 부분 제한될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구성에서도 볼 수 있듯 법적 처벌은 최소한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든 국민은 가능한 최고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지만,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 굳이 대검 마약과장 출신의 변호사를 콕 집어 내세운 유아인의 모습은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거침없이 도발하던 영화 <베테랑> 속 재벌 2세 주인공과 겹쳐 보인다. 돈 많은 마약사범이 작년까지 검찰에 몸담았던 마약 수사 전문 검사를 변호사로 내세운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영화 속 상황인지 현실인지 헛갈린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겁난다.
“요즘 마약 많이들 하네. 연예인들도 다 하고, 변호사만 잘 구하면 처벌도 별로 안 받는 것 같고, 재미삼아 한번 해볼까?”
이번 칼럼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이다.
래퍼 쿨리오는 ‘갱스터 천국’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죽음은 심장박동처럼 익숙하게 내 곁에 머물고 있어. 나는 스물셋인데 스물넷까지 살아 있을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결국 예언적 가사가 되었다. 그는 스물넷에는 살아있었지만 예순살은 맞이하지 못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심장박동이 멈춰버렸다. 이런 식으로 죽은 마약중독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금도 쌓이고 있다. 혹여나 마약도 법적 처벌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펜타닐에 중독되어 좀비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길. 그들이 비틀대며 걸어가다가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결코 천국은 아닐 것이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박은경의 스위트 뮤직박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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