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30년②]"휴일 월요일로 바뀌고 주말에 딱 한 번 쉬었죠" 10년 전으로 돌아간 캐셔의 일터
마트 노동자들 "일요일 휴일 박탈은 건강권·휴식권 침해"
"휴일이 월요일로 바뀌고 한 달 동안 주말에 딱 한 번 쉬었어요. 격주 일요일에 쉴 때는 딸들 가족과 식사했는데 지금은 모이질 못하네요."
대구 대형마트 캐셔 신모씨
대구의 대형마트들이 10년 가까이 이어온 격주 일요일 의무 휴업일을 월요일로 바꾸고 한 달이 지난 지난달 24일 대구의 대형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신모(58)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라진 주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난겨울 95일 동안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 반대 시위에 참가하며 막내아들(24)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전업 주부였던 그는 2002년 대형마트에 입사했다. 아홉 살, 여덟 살 난 딸과 세 살 아들을 키우는 데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버겁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섰다. 그는 "경력 단절이 돼 이전에 하던 일은 다시 못하게 됐다"며 "계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마트에서 하는 일은 신씨의 생각과 달랐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참아야 하는 일도 잦아 마음을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개인 사정과 상관없이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손님의 발길이 뜸한 비수기에는 관리자와 면담을 거친 동료 캐셔들이 갑자기 출근하지 않는 등 고용도 불안했다.
그사이 신씨 가족은 주말이 사라졌다. 엄마를 찾는 막내가 가장 큰 피해자였다. 신씨는 "휴일에 가족과 식사를 하거나 나들이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지금도 아이가 가족과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전했다. 그는 "그때는 가정이 위태롭다고 느꼈을 정도"라는 말도 했다.
신씨에게 '일요일이 있는 삶'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고 일요일 휴일을 강제하자 찾아왔다. 2014년에는 그가 다닌 마트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그는 "노조가 생긴 뒤 이유 없이 해고되는 일도 사라지고 이전에는 쓰지 못했던 연차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일자리는 경력 단절 여성에게는 반쪽이나마 좋은 일자리였다. 김영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의 대다수 일자리는 최저임금 인상률만큼만 월급이 오르고 승진을 할 수 없는 무기 계약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임금 상승 규칙이 적용되지 않아 좋은 일자리라 할 수 없다"면서도 "①한국 여성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가 5년 미만인 반면 마트 여성 노동자는 10년 전후로 ②시내·주택가에 있으면서③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는 좋은 일자리"라고 말했다.
이들의 고용 안정 역시 마트에 노동조합이 생기고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뤄진 변화다. 웹툰 '송곳'이 2003년 프랑스에 본사를 둔 까르푸의 노조 파업을, 영화 '카트'가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와 노조 파업을 배경으로 삼았다.
의무 휴업일이 월요일로 바뀐 지 한 달. 대구의 마트 노동자들은 몸으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신씨는 "고객이 몰리는 '목금토일'을 연속으로 일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우리 평균 나이가 55세인데 몸이 너무 고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평일보다 주말 근무가 몇 배 힘들다 보니 쉬는 날엔 모두 집에서 누워 앓고 있는 지경"이라며 "노동 환경이 1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덧붙였다.
줄어드는 마트 노동자, 일요일 근무에 휴식권 침해 우려
최근 마트 노동자의 고령화로 해마다 정년 퇴직자가 나오고 있지만 인력 충원이 제때 되지 않아 노동 강도가 세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김영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와 부산노동권익센터가 부산의 마트 매장 노동자 57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이 중 약 절반(45.4%)이 최근 3년 동안 산업재해, 근골격계 질환 및 직무 관련 질병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답했고, 234명 중 3분의 1은 인원 부족으로 인한 노동 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다고 밝혔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노조 조사 결과 2021년 대비 2022년 이마트 점포 노동자가 약 1,500명 감소했다"며 "여기다 2018년부터 이마트는 근무 시간이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었는데도 빈자리에 추가 고용되지 않아 노동 강도가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일요일 근무 상시화'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한 달에 두 번 넘게 일요일 근무를 한 마트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노동 강도가 더 높고 일·가정 균형이 무너지며 우울 증상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사 결과도 있다.
휴일인 일요일에 쉴 수 없게 됨으로써 가족생활과 사회적 관계 맺기에 어려움도 커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의무 휴업일이 없는 일본의 마트 노동자들은 마트 이외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며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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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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