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4’, 시시포스의 신화[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존윅’(2015)은 애초에 반려견으로 시작했다. 은퇴한 전설의 킬러 존윅(키아누 리브스)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사는데, 죽은 부인은 편지와 함께 반려견을 남긴다. 존윅에게 반려견은 자식과 같은 존재다. 어느날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아들이 존윅 집에 들어와 반려견을 살해하고 차를 훔쳐 달아난다. 1편은 반려견을 죽인 사람들을 처단하는 이야기다. 킬러가 반려견을 죽인 악당을 처단한다는 간단한 콘셉트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며 속편으로 이어졌다. ‘존윅:리로드’(2017)에서 그는 살인이 허용되지 않는 콘티넨탈 호텔에서 사람을 죽여 전 세계 모든 킬러의 타깃이 된다. '존윅 3:파라벨룸'의 마지막에 이르러 호텔 옥상에서 떨어진 그는 ‘최고회의’를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다.
‘존윅4’는 최고회의와 일생일대의 전쟁을 펼치는 내용이다. 시리즈 가운데 가장 타격감이 높은 액션의 향연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스턴트맨 출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스턴트상이 존재해야한다고 주장한다)은 성룡에게 “액션 안무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베를린 나이트클럽, 파리 개선문 차량씬, 아파트 총격전에 이어 사크레쾨르 성당의 222계단 혈투씬에 이르기까지 CG를 하나도 쓰지 않고 리얼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관객의 심장을 뛰게한다. 앞서 살펴봤듯, ‘존윅’ 시리즈는 1편 단계부터 유니버스를 설계한 것이 아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킬러들의 권력기관인 최고회의, 성역의 기능을 하는 콘티넨탈 호텔, 파문, 1대1 결투 등의 설정을 만들어 세계관을 확장했다.
4편에서 신의 한 수는 과거 존윅의 동료였던 맹인 케인(견자단)의 등장이다. 스타헬스키 감독은 4편을 구상할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 ‘석양의 무법자’, 그리고 ‘자토이치’를 떠올렸다. 느슨한 콘셉트로 만들었던 케인 캐릭터는 견자단의 의견이 추가되면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는 “이소룡이 주윤발을 만났을 때”, “‘영웅본색’이 ‘첩혈쌍웅’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며 케인을 연기했다. 존윅과 케인은 최고회의의 음모에 빠져 서로를 죽여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케인은 존윅과의 우정을 잊지 않는다. 의리를 중시하는 성격은 ‘영웅본색’이, 서로 적의 입장이 된 상황은 ‘첩혈쌍웅’이 오버랩된다. 극 초반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에서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기 직전, 케인이 국수를 먹은 뒤 신발끈을 동여매는 장면도 견자단의 아이디어였다.
‘존윅 유니버스’의 매력은 ‘미스터리한 모호함’에서 나온다. 존윅은 과거에 어떤 과정을 겪었길래 전설의 킬러가 되었는가, 케인과는 어떤 우정을 나누었는가. 뉴욕 콘티넨탈 호텔 지배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은 왜 존윅을 위험에 빠뜨리고 도와주는가 등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3편에 등장했던 킬러 양성소인 발레 아카데미와 존윅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내년에 아나 디 아르마스 주연의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에서 베일을 벗는다. 윈스턴이 젊은 시절 뉴욕 콘티넨탈 호텔의 지배인이 되는 과정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TV시리즈 ‘콘티넨탈’로 제작돼 오는 10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견자단은 ‘케인’ 솔로무비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맹인 존윅’이 아니던가. 이렇게 ‘존윅 유니버스’는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랜스 랜드딕이 연기한 뉴욕 콘티넨탈 호텔 콘시어지의 이름은 ‘카론’이었다. 카론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네주던 뱃사공이다. 4편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액션씬은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잔꾀를 부려 지하세계를 탈출한 시시포스는 신들의 미움을 받아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끊임없이 반복하여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알베르 카뮈는 이 신화를 통해 반항, 자유, 열정의 키워드를 읽어낸다. 그는 이 세계에 반항하고, 희망과 내일이 없는 조건 속에서 자유로워지고, 주어진 모든 것을 소진하는 삶을 살라고 했다. 존윅은 시시포스처럼 신(최고회의)에 반항하고, 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고, 주어진 삶을 마지막까지 불태운다.
시시포스는 존윅을 통해 다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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