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할 처녀꽃·작은 동백 ‘명자나무’ 아시나요[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4. 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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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심으면 과년한 딸 바람 난다던 명자꽃, 출산율 높이려 온나라 심기 제안
산당화, 옥당화, 처녀꽃, 풀명자, 아가씨나무 등 봄꽃 중 가장 이름 많은 꽃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서울로의 화조도’ . 붉은 명자나무와 노란 죽매화(황매화)가 핀 서울로 7017 위에 참새가 명자나무 꽃잎을 물고 있다. 새가 꽃잎을 따먹기 위해서라기보다 꽃 속 꿀을 빨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2023년 4월 1일 촬영

<나 어릴 적에 개구졌지만/픽하면 울고 꿈도 많았지/깔깔거리며 놀던 옥희 순이/지금 어디서 어떻게 변했을까//자야자야 명자야!/불러샀던 아버지/술심부름에 이골 났었고//자야자야 명자야!/찾아샀던 어머니/청소해라 동생 업어줘라/어스름 저녁 북녘하늘 별 하나/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나 어릴 적에 동네사람들/고 예쁘다 소리 들었고/깐죽거리며 못된 철이 훈아/지금 얼마나 멋지게 변했을까//자야자야 명자야!/불러샀던 아버지/약심부름에 반 의사됐고/자야자야 명자야!/찾아샀던 어머니/팔다리 허리 주물러다 졸고/노을 저편에 뭉게구름 사이로/추억 별이 반짝반짝 거리네/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자야자야 명자야!/무서웠던 아버지/술 깨시면 딴사람 되고//자야자야 명자야!/ 가슴 아픈 어머니/아이고 내 새끼 달래시며 울고/세월은 흘러 모두 세상 떠나시고/저녁별 되어 반짝반짝 거리네/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70세 들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 서며 더욱 카리스마를 발하는 ‘가황(歌皇)’ 나훈아가 직접 작사한 ‘명자!’ 다. 이 노래 들으면 ‘명자나무’가 절로 떠오른다.“저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가슴에 꿈이 많아야 하고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 나훈아가 직접 작사한 ‘명자!’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주전자 들고 술심부름 하며, 어린 동생을 업고 집안일 하던 가물가물 ‘어린 명자들’이 동화 속 삽화처럼 되살아난다.

나훈아뿐 아니다. 안도현 시인을 비롯한 숱한 문인들이 이 촌스런 사람 이름 닮은 명자나무를 앞다퉈 의인화하며 노래했다. 안도현 시인은 ‘명자꽃’에서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라고 가슴 멍한 애처로운 사연을 노래했다. 그런가 하면 이영혜 시인은 시 ‘꽃잎의 기억’에서 “내 남편의 첫사랑은/명자, 명자나무”라고 명자꽃을 질투했다.명자나무는 그 이름처럼 애처롭게 다가오는 봄꽃나무다. 중년 이상 장·노년 세대에게 ‘어린 명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명자나무는 아파트 화단이나 공원, 정원 등에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홀로 심은 경우가 많아 무심히 지나치기 싶다. 동백꽃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동백꽃보다 작아 ‘작은 동백’으로 불린다.

벚꽃이 질 때쯤 서울로 7017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작은 동백’ 명자나무 꽃. 2023년 4월1일 촬영

공원이나 정원에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다 자라도 2m를 넘지 않는다. 꽃은 4월부터 5월까지 피는데 빨간색 꽃이 가장 많고 분홍색, 흰색 꽃도 핀다. 꽃이 지고 나서 8월쯤엔 누렇게 모과 모양의 과실이 익는데, 지름이 10cm 정도나 된다. 향기가 모과처럼 아주 좋아 과실주를 담그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한방에서는 가래를 삭여 주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8월에 타원 모양의 이과가 달리는데, 크기가 작은 것은 달걀 정도에서 큰 것은 어른 주먹 정도로 나무 크기에 비해 크며, 노란색으로 익는다. 모과와 비슷하며 과실주를 담는다.

명자나무는 크게 두 가지로 품종으로 분류된다. 오래전 중국에서 들어온 당명자 나무와 일본에서 관상용으로 수입한 풀명자나무가 그것이다. ‘명자’라는 이름도 중국 한자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산당화(山棠花)는 당명자 나무를 말하며, 명자나무 혹은 명자 꽃나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벚꽃이 질 때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명자나무꽃. 짙푸른 주목과 하얀 벚꽃, 붉은 명자꽃의 적백녹 삼색이 조화를 이룬다. 2019년 4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후원격인 무궁화동산에서 촬영

명자나무는 잎 뒤에 숨어서 피는 꽃이다. 마치 누군가 봐주길 기다린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핀다. 묘한 설렘을 갖게 하기에 명자나무는 위험한 사랑을 꿈꾸게 하는 나무라고들 한다.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를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불행은 장엄 열반이다./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견딤의 한 형식이라는 것을,/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잊지 마라.>

치명적인 사랑을 노래한 듯한 장석주 시인의 이 ‘명자나무’는, ‘명자나무’ 단어는 단 하나 밖에 없지만 명자나무 관련 시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시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눈물로 헤어진 사랑, 치명적인 상처를 입더라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잘못된 사랑, 불행으로 끝난 사랑의 간절함을 불꽃처럼 노래하는 듯하다.

시인은 불행으로 끝난 사랑을 ‘장엄 열반’이라 노래하며 승화했다. 시인은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상처와 불행을 치유하는 시인의 ‘명자나무’ 꽃을 두고 누군가 ‘가슴 속에서, 붉은 명자나무 꽃봉오리가 핏방울처럼 번진다’고 했다.

명자나무 만큼 이름이 참 많은 꽃도 드물다. 꽃 핀 모양이 청초, 우아하고 고결하며 정열적이어서 아가씨꽃이라고도 불렸고,영어로는 꽃 중의 여왕이라 부른다고 한다.명자나무는 경기도에서는 아기씨꽃 또는 애기씨꽃이라고 부르고, 전라도에서는 산당화라고 하며, 지역에 따라 옥당화, 처녀꽃이라고도 불린다. 산당화는 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기생꽃나무, 처녀 꽃, 아가씨 나무 등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옛날 어른들은 이 꽃을 보면 부녀자가 바람난다 하여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꽃이 아름다워 집의 아녀자가 이 꽃을 보면 바람이 난다고 했다. 예전에는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진초록 잎 뒤로 붉은 꽃잎을 살짝 내민 모습은 이미 성숙했기에 몸을 숨긴다는 의미다. 명자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과년한 딸이 바람난다고 한다.

시인이자 의사인 신종찬 신동아의원 원장은 특이하게도 명자나무를 “나라를 구할 귀한 나무”라며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신 원장은 “앞으로 명자나무를 온 나라에 많이 심었으면 좋겠다. 꽃이나 열매 때문이 아니다. 출산율 저하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기 남양주시 한옥카페 ‘고당’ 따락에 핀 명자꽃. 2023년 4월 9일 촬영.

“명자나무를 집안에 키우면 꽃이 너무 예뻐서 과년한 처녀들이 바람난다니 얼마나 유용한 나무인가. 우리 아파트 정원에라도 심어 과년한 제 딸이 시집가서 하루 속히 출산율을 높였으면 좋겠다. 사안이 시급하니 부질없이 시기를 다툴 일이 결코 아니다. ”

세계 최하위 출산율을 높일 ‘비법’으로 오죽했으면 명자나무꽃 심기를 통해서라도 찾아보자는 그 절박하고 절묘한 상상력과 명자꽃에 대한 가없는 사랑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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