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존재이유, 마약에서 찾다[검찰 왜그래]
마약범죄 급증에 수사 전문성·노하우 주목
존재가치 증명하고 수사권회복 여론 얻을까
사건을 전해 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검·경에 “수사역량을 총동원해 조직을 뿌리뽑으라”며 분노를 표출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은 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단속해야 한다, 검찰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단속하라”며 검찰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검찰 수사권 쪼그라드는 동안 마약 압수량 ‘8배’ 뛰었다
마약범죄의 확산은 있어서는 안 될 크나큰 비극입니다. 다만 문재인 정권 시절 ‘정치수사’ ‘권한남용’ 비판을 받으며 존재의 위협을 겪었던 검찰로서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뜻밖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검찰개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권은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쪼그라들었고 남은 수사권마저 완전히 박탈당해 기소청으로 전락할 위기로 내몰렸습니다.
거듭된 조직 축소를 거치면서 마약 수사 기능도 약해졌습니다. 2018년 검찰의 마약 수사 컨트롤타워인 대검찰청 강력부가 폐지되고, 6대 지방검찰청의 강력부도 통폐합됐습니다. 이어서 시행된 검·경 수사권조정은 검찰이 500만원 이상의 마약 밀수 범죄만 수사할 수 있도록 했고, ‘검수완박’은 검찰이 마약 대량 유통과 밀수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그 사이 마약범죄는 눈에 띄게 급증했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7년 압수한 마약량은 154kg인데 재작년은 1295kg으로 5년 사이 8배나 뛰었습니다. 올해 1~2월에 검거된 마약사범은 2600명으로 전년 동기(1964명) 대비 32.4% 늘었습니다. 작년에 검거된 마약사범은 총 1만8395명으로 역대 최다였는데, 이 추세대로면 올해는 2만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마약범죄의 급증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지만, 검찰의 대응 역량이 약해진 틈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급증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수사기관의 총력대응이 시급하다는 덴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러한 여론을 읽은듯 “대한민국은 원래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 마약 확산을 막지 못하면 모두가 정말 후회할 것”이라며 최근 대검찰청에 ‘마약·강력부’를 최대한 신속히 재설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마약범죄 소탕을 명분으로 검찰 수사권 회복의 포석을 깐 것입니다.
마약·조직범죄 수사 전문성 쌓아온 檢…‘존재할 이유’ 보여줄까
사실 마약범죄는 경찰이 수사할 수 있고,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을 신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검찰의 역할에 무게를 실어주는 이유는 검찰이 창립 후 수십년간 마약 수사 관련 전문성과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마약은 공급이 수요를 결정한다는 난해한 특수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약범죄는 단순히 투약자들을 붙잡는 데 그치지 말고 공급의 ‘윗선’을 추적해 생산·밀수 조직까지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특히 마약은 해외에서 주로 유입되기 때문에 관계기관, 해외 수사기관과의 공조가 필수적입니다. 검찰은 대형 조직범죄를 추적하고 외부 기관과 공조한 경험이 많습니다. 이러한 노하우는 단기간에 획득하는 게 불가능하고 다른 기관으로 쉽게 넘길 수도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입니다.
또한 마약 수사는 정치적 문제와 거리가 멀고 민생과 밀접합니다. ‘정치 수사’ ‘권한 남용’ 논란에 시달려온 검찰이 여론을 우호적으로 되돌리는데 유리한 현안입니다.
물론 이는 검찰이 마약범죄 소탕에 혁혁한 성과를 거뒀을 때의 얘기입니다. 앞으로 보여줄 수사 과정이나 성과가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못미치면 검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또다시 존재의 위기를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검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마약범죄 소탕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민에게 성과를 홍보하는데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이 알맹이 없이 성과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지,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마약 오염 위기에서 구하고 존재가치를 증명할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배운 (edu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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