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마크롱의 '외교 참사', 한국엔 '예방 주사'?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2023. 4.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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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맥락을 읽는 재미

대통령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자주 외교, 대미-대중 균형노선을 표방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에서 격한 반응이 나오고 우방국들도 지금이 그런 소리 할 때냐고 반발하자 정부와 외교부는 주워 담느라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아, 프랑스 이야기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귀국길 언론인터뷰 폭탄 발언의 파장이 거세다. 우리가 미국의 졸개냐, 대만 갖고 미국 중국 싸우는 데에 우리가 왜 엮여야 되냐 등등의 발언이 일파만파의 충격파를 던졌다. 파장은 귀국길 인터뷰가 더 크지만, 이번 사안이 왜 국제사회에서 외교 참사로 평가되는지를 짚으려면 먼저 마크롱의 중국 국빈방문 자체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다극세계' 언급…이게 왜 위험하냐면

마크롱의 중국 국빈방문(4월 5~7일)에서 나온 마크롱의 발언과 외교적 결과물은 대체로 시진핑에겐 '내 귀에 캔디'지만 나토 회원국들의 속은 뒤집어놓는 내용이었다.

양국정상 공동성명에는 '다극(multi-polar) 세계'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더 확대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냉전 멘탈리티와 블록대결에 반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일반인의 언어로는 그냥 좋은 말을 다 써놓은 것 같은 문장이지만, 그렇지 않다. 외교적으로 보면 이 문장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중국과 프랑스가 손잡고 반대한다는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다극세계는 일극세계(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세계)보다 좋은가? 러시아와 중국은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간다는데,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데, 왜 미국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느냐, 미국이 뭔데 유엔을 통하지도 않은 제재를 러시아에 부과하느냐는 게 중-러가 '다극 세계'를 미는 속뜻이다. 유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엔헌장과 안보리 결의 등을 어기고 침략행위와 전범행위 및 무력도발을 일삼는 건 러시아와 북한이고, 그들에 대한 유엔차원의 조치를 막고 있는 건 중국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원하는 다극세계에서는 강대국들이 각자 자기 앞마당 일은 마음대로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동유럽과 북유럽의 인접국가들을 위협하든 말든, 중국이 공해상에 콘크리트를 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자기네 영해라고 주장하든 말든, 미국은 간섭하지 않는 게 그들이 원하는 다극세계다.

1936년 자신의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히틀러. / 출처 : 독일연방 아카이브-위키피디아


20세기도 이런 식의 다극세계를 원했던 정치가가 있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다.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히틀러는 소련과 영국, 미국에 끊임없이 '유럽대륙은 독일이 마음대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 대신 독일도 영국과 미주대륙과 소련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런 다극세계가 실현되면 한국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시진핑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원래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중국 해군은 서해를 자기네 앞마당으로 만들려는 '서해공정'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원하는 다극세계에서 동아시아는 천자의 나라와 조공국으로 맺어진 옛 중화(中華)의 질서로 돌아가게 되고, 미국은 이 지역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일극체제에서 대한민국이 손해 본 것과 이익 본 것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더 클까? 우리는 자원과 기술을 수입하고 상품을 수출해 먹고 살아온 나라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수입수출을 가능케 하고 국내적으로는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세계가 조화롭게 유지되는 게 중요하지, 극이 한 개냐 여러 개냐가 더 중요한 건 아니다.

훈련 중인 중국 군함. / 출처 : 환구시보 캡처-연합

프랑스는 그렇다면 왜 다극체제를 원할까? '제3의 슈퍼파워'로 행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냉전시기에는 자본주의-공산주의 진영 사이에서, 지금은 미중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며 유럽의 리더로 군림하고 싶어 한다. 프랑스는 한때 지중해와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를 아우르던 제국이었다는 자존심이 세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다가 미국과 영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방되었고 그 후로도 국제질서 주도권을 내준 데 대한 콤플렉스도 상당하다.
 

마크롱에 선물 안겨주고 '서방 분할' 시도하는 中


상대방이 강한 연합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갈라놓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시진핑 주석은 6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마크롱의 '자주적' 외교노선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중국과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독립적-자주적 전통을 가진 대국"이라면서 "중국은 항상 유럽을 다극화한 세계의 독립적 일극으로 간주하고, 유럽의 전략적 자주성 실현을 지지한다"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제3자를 겨냥하지도, 의지하지도, 제3자의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을 대놓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여기서 '제3자'는 미국이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해 줄 것을 시진핑에게 요청했다. 시진핑은 듣기는 했지만 푸틴을 압박해 휴전이나 종전을 끌어낼 뜻은 보이지 않았다. 미국·유럽 정치 전문 뉴스매체로 마크롱의 대통령전용기에 동승한 폴리티코는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과 관련해 일종의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눈에 띄게 언짢아했으며, 자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회담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전했다.

공동기자회견하는 마크롱과 시진핑, 6일 베이징 / 출처 : AP=연합


중국은 미국의 첨단 기술 공급망 분리로 답답해지는 부분을 프랑스가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방중의 경제적 성과를 필요로 하는 마크롱은 이번 국빈방문에 에어버스, 알스톰,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등 주요 기업 경영자 50명 이상을 데려왔다. 중국은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 구매에 합의하는 선물을 마크롱에게 안겨줬다. 마크롱은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등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떼어내려는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자동차나 배터리, 각종 소비재 등의 상품 교역에 있어서 중국과 완전히 결별할 수 없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적용된 첨단 반도체는 문제가 다르다. 미국은 이를 '돈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전쟁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보고 있다. 디커플링은 미국에 국가안보 이슈라는 뜻이다. 마크롱은 이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를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와 유럽연합 '갈라 치기' 의전 선보인 中

이번 방중에는 유럽연합의 우르술라 폰 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마크롱의 초청으로 동행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의 법안 발의 및 집행, 예산 분배, 회원국의 조약이행 감시 등을 담당하는 유럽연합의 행정부다.)

중국에 유화적인 마크롱과 달리, 독일 정치인인 폰데어라이엔은 중국에 대해 보다 엄격한 노선을 취해 왔다. 방중 며칠 전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을 향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앞서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해 내놓은 12개 항에 대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굳히는, '실현 가능성 없는 내용'이라며 평가절하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또 대중 '위험 완화(de-risking)' 개념을 추진한 바 있다. 즉, 유럽이 대중 외교에서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내야 하며, 유럽의 교역 대상을 다양화하고 무역과 기술을 지켜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크롱과 폰데어라이엔이 '굿캅-배드캅' 식으로 역할을 잘 나눠 시진핑을 상대했으면 나름대로 효과적인 대중 외교가 되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은 함께 베이징에 도착한 두 지도자를 전혀 다르게 대우했다. 마크롱에 대해서는 국빈만찬과 의장대사열을 포함, 극진한 예우를 다해 영접한 반면 폰데어라이엔에게는 현격히 격이 낮은 대우를 했다. 세 사람이 찍은 사진만 봐도 시진핑이 두 지도자를 대하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마크롱과 시진핑, 그리고 폰 데어라이엔. 6일. / 출처 : 베이징-AP


세 사람은 두 시간 정도 공동회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폰데어라이엔은 시진핑에게 "대만의 현상(status quo)을 바꾸려고 무력을 쓰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누구든지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베이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망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시진핑은 폰데어라이엔을 내보낸 뒤 통역만 둔 채 마크롱과 4시간가량 단독회담을 했다. 베이징 공식일정을 마친 뒤엔 마크롱만 남부 경제도시 광저우로 데려가 자신의 아버지가 쓰던 관저의 정원 산책과 티타임 등으로 각별히 대접했고, 쑨원대 강연을 마련해 중국대학생들로부터 아이돌급의 열렬한 환영을 받도록 배려했다.

결과적으로 마크롱은 중국에 대해 단합된 유럽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중국에 우호적으로 굴면 좋은 대접받고, 중국에 날을 세우면 푸대접받는다는 걸 보여주는 데 이용됐을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쓰던 광둥성장 관저의 정원을 마크롱에게 구경시켜 주는 시진핑. 7일. / 출처 : 광저우-AP

 

본격적인 말 폭탄…"우리가 미국의 시종이냐"

중국 국빈방문 자체가 외교적으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진짜 본격적인 사고는 귀국길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터졌다. 마크롱은 폴리티코와 레 제코(프랑스 경제일간지), 두 매체 기자들을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시켜 따로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말 폭탄을 쏟아낸 것이다.

"제3의 슈퍼파워로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발언은 시진핑과의 공동성명/회견에서 나온 수준의 발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센 발언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미국의 신하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유럽의 것이 아닌 위기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럽이 답해야 하는 질문은 '타이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유럽에게 이익인가'이며, 답은 '노'다.", "유럽인들은 우크라이나 위기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중국에게 타이완 문제를 놓고 '조심해! 행동 잘못하면, 우리도 거기 갈 거야'라고 신빙성 있게 얘기할 수 있느냐".

앞서 설명한 '다극세계'의 개념처럼 중국의 일은 중국이 알아서 하고 프랑스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힐 가능성이 다분한 발언들이다.

마크롱은 또 "달러의 역외성(域外性, extraterritoriality)"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양대 슈퍼파워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우리는 전략적 자주성을 지불(finance)할 시간도 자원(resource)도 없어 신하(vassal)로 전락할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유럽의 안보를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책임져 온 현실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인터뷰 기사 말미에 이런 추신을 달았다.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실)이 인터뷰의 전제조건으로 모든 발언의 검증과 '교정(proofreading)'을 요구했으며, 이는 폴리티코의 원칙에 맞지 않지만 프랑스 대통령의 얘기를 직접 듣기 위해 수락했다. (...) 대만과 전략적 자주권에 대한 그의 더욱 솔직한 발언들은 엘리제궁의 요청으로 삭제됐다."

도대체 발언수위가 얼마나 셌길래…하는 궁금증이 커지는 대목이다.
 

미국에 날 세운 '사이다 발언'...'외교참사'급 후폭풍

보도된 내용들만 봐도, 반미진영이 아닌 나라의 지도자 입에서 듣기 매우 어려운 수위의 발언이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유력 대선후보가 저런 말을 했다면 자주외교를 중시하는 일각에선 '사이다 발언'이라고 환호했을 것이다. 향후 우리 대통령이 저렇게 미국에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프랑스 정도 나라의 수반으로서 못할 말도 아니고, 전에 안 하던 말도 아니며, 딱히 틀린 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와 맥락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거다. 마크롱이 시진핑과 매우 유화적인 시간을 보내고 '갈라 치기'에 이용당한 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인터뷰를 한지 몇 시간 안돼, 중국은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중국군이 공개한 항모 함재기 이륙 장면, 지난 10일 / 출처 :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위챗 채널 캡처, 연합뉴스

같은 메시지를 전하더라도 단어와 표현을 가릴 필요도 있다. 대만과 관련해 프랑스는 미국과 같은 편에 서 있다는 걸 전제하고 (*결국 프랑스 대통령궁이 이 점을 새삼 강조하며 수습에 나섰다.) 미중이 서로를 자극하고 위기를 고조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점잖은 표현으로 강조하면 족했을 것이다. 신하, 부하, 졸개 등등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일을 이렇게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싸움으로 몰고 가면 마크롱에게 동참할 유럽국가는 오히려 줄어들며, 결국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는 비판이 유럽 내에서 잇따랐다.
 

격분, 조롱…미국 보수-진보 일치된 반응

당장 미국에선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마크롱 정부와 일을 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말을 아꼈지만 정치권과 외교 전문가, 언론이 한마음 한뜻으로 마크롱을 성토했다. 의회 유력인사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 주/공화당)은 정파를 떠나 미국인들이 마크롱 발언에 대해 느낄 감정을 노골적으로 담은 발언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아래는 주요 부분을 네 컷으로 요약한 것이다.​​​​​​​


동영상에서 루비오 의원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지만, 표정과 음성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있다. 위의 그래픽 둘째 컷 '너희 군대 우리 비행기로 실어다 줬다'는 부분에서는 '누구 덕에 지금까지 발 뻗고 잤는데? 전략적 자율성 운운할 능력이나 되느냐'는 경멸마저 느껴진다.

만일 한국 대통령이나 유력대선주자가 '우리는 대만 문제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면? 수학공식에 다른 숫자 대입해서 문제 풀듯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대만 문제와 중국의 위협에 집중할 테니, 북한 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 우리도 세금 아낄 수 있다'는 날 선 반응이 날아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굳이 실제로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리버럴/진보 언론의 대표 격인 뉴욕타임스도 대단히 비판적인 논조로 마크롱 발언 사태를 보도했는데, 제목이 이채롭다.​​​​​​​

"레드카펫에서 개집(doghouse)으로: 마크롱, 중국에서 돌아와 동맹국들을 경악시키다"


뉴욕타임스는 엘리제 궁이 마크롱 발언 후폭풍의 수습과 피해차단에 나섰다면서,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등거리(equidistant, 양쪽으로 같은 거리를 둠)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의 동맹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런 해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마크롱이 얼마나 동맹들을 동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는 대통령실 외에도 외교부, 주미대사 등이 전방위로 나서서 같은 표현을 반복하며 미국과 유럽 각국을 달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이 중국에 이어 네덜란드를 국빈방문하면서는 "우리의 유럽은 꿈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언어로 그 꿈을 꾸고 싶진 않다."고 말했는데, 그 '다른 나라'가 미국을 가리키는지 중국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로 비판했다. 마크롱의 쓸데없는 말 때문에 서태평양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억제력이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러-중 위협의 본질은 같다 : 다른 유럽국가들의 시각

미국은 원래 마크롱이 각을 세우려 한 대상이니 그렇다 치고, 그가 리더십을 쥐고 싶어 하는 유럽 내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안보 문제에 관해 새롭게 눈을 떴다. 유럽 각국의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국가는 러시아고, 러시아가 그렇게 망나니짓을 할 수 있게 뒤를 봐주는 건 중국이며, 우크라이나 문제와 대만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안(민주주의에 대한 권위주의 체제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믿고 의지할 건 나토(NATO) 군사동맹과 그 핵심인 미국이라는 게 다수 유럽국가들, 특히 러시아 가까이에 있는 국가들의 마인드다.

우크라이나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폴란드에선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나서서 마크롱 발언을 비판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의 양대 기둥을 형성하는 독일에서도 마크롱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당인 사회민주당(SPD)의 외교정책대변인 닐스 슈미트 의원은 베어보크 외무장관이 중국에 가서 "마크롱의 서투른 실수로 인해 생긴 오해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에 발언을 세 컷으로 정리했다.)


13∼15일 중국을 방문하는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방중 입장문에, 대만은 '남의 일'이라는 마크롱의 인식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독일 야당 유력인사인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의원(기독교민주연합, 중도보수 성향)도 '마크롱의 외교참사'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크롱은 미국과 파트너십이 아니라 경계선을 강조하는 그의 주권(主權)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유럽에서도 고립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울러, 이런 '나이브한' 인식이 오히려 중국의 간을 크게 만들어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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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독-불 균열…누구 좋은 일?

마크롱의 이번 발언은 그렇잖아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점 균열이 커지고 있는 독일-프랑스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두 나라는 경제구조가 다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독일은 저렴한 러시아 가스에 많이 의존했고, 그로 인해 효율적인 산업을 일궈 중국에 많은 수출을 해서 돈을 벌었다. 반면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고 중국 수출에 대한 의존이 상대적으로 낮아 독일에 비해 타격을 덜 받았다. 과거엔 독일이 유리했고 지금은 프랑스가 유리하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부담을 가급적 안 지려고 하고 대중국 문제에서도 너무 이기적이라는 게 독일의 불만이다.

독불 양국 국적을 갖고 있는 녹색당 정치인 다니엘-콘 벤디트는 <슈피겔>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숄츠 총리는 (동서독 통일당시) 헬무트 콜 총리가 갖고 있던 통합유럽의 유전자가 부족하다. 마크롱은 그게 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프랑스의 렌즈를 통해서 본다. 마크롱이 유럽의 재무장을 얘기할 때, 그건 프랑스의 재무장을 의미한다. 결국, 독일이나 프랑스나 각자 자국 중심 마인드에 갇혀 있다."

"유럽공동안보의 개념이 뭔가? 프랑스가 핵보유국이라는 게 (독일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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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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