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번 친 가슴에 심장 기능 손상” 세월호 유가족 9년의 병마 [밀착취재]
정부의 의료비 지원 2024년 4월 15일까지
“아이들 죽은 이유라도 알면 가슴에 묻고
잊고 살려고 했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아
유가족 중 약을 안 먹는 부모가 없다”
“심장 기능이 50%도 안된대요, 가슴을 너무 쳐서 상처가 났대요.”
2014년 4월16일 일어난 세월호참사로 딸 김소정양을 떠나보낸 김정희(53)씨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건강도 잃었다. 참사가 터진 그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던 김씨는 난생 처음 하혈을 했다. 갑작스럽게 큰 충격을 받았던 탓이었다. 이후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묻는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김씨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5년에는 집회를 하다가 뇌혈관이 터져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고, 2016년에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죽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왜 살아야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차디찬 바닷물이 아이를 삼켜버린 2014년부터 김씨는 수면제를 먹고도 2시간 이상 잠든 적이 없다. 매일 오전 1시10분이 되면 자동으로 딸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온다. 1시10분은 소정양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던 시각이다.
요즘도 김씨는 잠에 들지 못할 때면 아이 방을 찾아 “너 뭐하냐, 자냐. 이 돼지야. 엄마 좀 재워주라”라며 괜스레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김씨는 “정부는 ‘10년이 지났으니까 괜찮아졌잖아’라면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데, 괜찮아진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13일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가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기간은 2024년 4월15일까지다. 2016년 3월28일 종료 예정이었다가 한 차례 개정을 통해 2024년까지로 늘어났지만, 피해자들이 치료되기에는 부족한 기간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미지양 아버지 유해종(62)씨는 3년 전부터 매일 4종류의 약을 한움큼씩 삼킨다. 유씨는 고지혈증, 골다공증, 고혈압, 지방간을 앓고 있다.
병원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마음이 편해야 운동도 하지 않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제 옛날처럼 아등바등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죽기 전에 우리 아이들 죽은 이유나 제대로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참사 이후 숫자 ‘16’을 싫어하게 됐다. 미지양의 생일(3월16일), 수학여행을 떠난 날(4월16일), 물 밖으로 나온 날(5월16일)이 야속하게 모두 16일이라서다.
유씨는 “미지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상을 차려줬던 게 생각나고, 좀 지나면 수학여행 가기 전에 ‘반장대회에서 반 친구들 기를 살려주겠다’면서 춤 연습하던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미지양은 반 친구들을 대피시키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세월이 가면 잊혀질 것”이라는 건 남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사자에게 상처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유씨는 “아이들이 죽은 이유라도 알면 가슴에 묻고 잊고 살려고 했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왜 사고가 났는지 알아야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가 힘이 있었으면 딸이 죽지 않게 할 수 있었을텐데 힘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세상에 대한 증오도 심해졌다”고 했다. 스트레스 탓인지, 해마다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유씨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모두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다”며 “유가족 중 약을 안 먹는 부모가 없다”고 전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봐도, 몸이 망가진 채 잘 낫지 않는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최지영(59)씨는 아들 권순범군이 떠나고 9년간 매일 같이 졸린 눈을 비비며 홍성에서부터 안산까지 차를 몰았다. 순범이가 왜 떠났는지 밝혀내는 일, 그 한 가지를 위해서였다. 단식 투쟁과 노숙을 반복하며 허리가 망가졌고, 스트레스로 온몸에 건선과 대상포진이 번졌다.
최씨는 나아질 방법을 찾아나섰다. 2015년 연극을 통해 치유를 시작했다. 상실감에만 빠져있지 않기 위해 희생자 엄마들과 함께 시작한 여정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던 단원고에서도 공연을 올렸다.
최씨는 “하루하루 먹는 것조차, 숨 쉬는 것조차 힘들지만 우리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서 같이 있을 때 만큼은 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도 여전히 4월이 다가오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기일이 가까워지면 유가족을 향한 혐오표현 적힌 현수막이 또 다시 여기저기 나부낀다. 유가족을 향한 왜곡과 조롱을 마주할 때 고통은 더욱 커진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니냐는 비난에 통증은 배가된다.
최씨는 “상태가 나아졌다고 해도, 속은 썩어 문들어졌지 않냐”며 “엄마들은 아파도 병원에 다니면서 죽기 살기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궁, 쓸개 등 장기가 제기능을 못하거나 암이 생긴 엄마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정부 지원금이 끊기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최씨는 “자식한테 미안해서 병원에 못 가고, 진실을 밝혀야 하니까 투쟁하느라 못 가다가 이제야 병원에 다니며 병을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며 “우리가 병원을 정신없이 (과도하게)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고, 꼭 필요한 때만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2021년말 발간된 ‘대한민국 재난 충격 회복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참사 피해자 과반이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2020년 기준 연구에 응한 유가족 254명과 생존자가족 33명 중 각각 64.3%, 51.7%가 병·의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각각 36.6%, 57.9%를 기록했는데, 유가족의 병·의원 이용률은 당시보다 크게 늘었고 생존자가족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연구를 진행한 채정호 교수는 “트라우마는 시간이 간다고 금방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참사 초기보다 5년 이후에 더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미국의 9·11사태는 20년이 훨씬 넘었는데 ‘생존자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다 지원한다’는 원칙으로 지금도 계속 지원하고 있다”며 “세월호참사가 ‘사회적’ 참사라고 결론이 났던 만큼 장기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개선에 나섰다. 지난달 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피해자 의료비 지원에 기한을 두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세월호피해자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세월호지원단 관계자는 “관계부처에서 의료지원금 연장 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안산=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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