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들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길"…영화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
지난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이 영화는 같은 이름의 연극을 준비하는 한 극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극단은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입니다.
“제가 따로 다큐멘터리를 배운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극단을 따라다니면서 연습과 공연 현장을 그냥 다 찍었죠. 편집할 때 보니까 촬영 회차가 250회 정도 되더라고요.”(이소현 감독)
이 다큐 영화를 만든 이소현 감독은 JTBC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 연극 홍보영상 찍다 다큐 영화 찍기로…배역 다툼에서 시작된 다큐 촬영
이 감독이 극단 어머니들을 처음 만난 건 2019년 2월이었습니다. 일본 NHK 방송이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는데, 당시 이 감독은 동시녹음 기사(영화나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배우의 대사, 주변 소리 등을 녹음하는 스테프)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애진 어머니(김순덕 씨) 집에 촬영을 하러 갔어요. 그때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들이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을 준비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홍보 영상이 필요하다고 하시길래 제가 찍어드리기로 했었죠.”
며칠 뒤 연극 홍보 영상을 찍으러 간 날, 이 감독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힙니다. 연극의 주연 자리를 두고 예진 어머니(박유신 씨)와 영만 어머니(이미경 씨)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겁니다.
“하필 제가 간 날이 캐스팅 발표날이었어요. 결국 그날은 촬영을 못 했습니다. 홍보 영상인데 배우들이 싸우는 모습을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감독은 개별적으로 어머니들 댁에 찾아갔습니다. 홍보 영상에 쓸 짧은 인터뷰라도 찍으러 간 겁니다. 근데 인터뷰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고 합니다.
“주연을 맡은 예진 어머니는 행복한 마음에 두세 시간 동안 말씀하셨어요. 반면 영만 어머니는 '내가 왜 이런 역할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라며 또 두세 시간을 털어놓으셨죠. 게다가 다른 어머니들도 이런 상황이 짜증 난다고 하소연하셨고요.”
이때 이 감독은 어머니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생각했던 '세월호 (피해) 가족' 이미지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어머니들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분이 더 있을 것 같아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어머니들의 다양한 감정 드러내고 싶었다”
어머니들이 촬영에 동의하긴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보면 울거나,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또는 그리워하는 이런 모습들이 많잖아요. 근데 어머니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웃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식사도 하세요. 이런 모습이 다큐멘터리에 낱낱이 담기면 '아이 잃고 저렇게 웃어도 돼?', '아이 잃은 사람이 밥 먹으면서 행복해하네?' 이런 오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셨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했을 때, 밥 먹는 모습은 절대 촬영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촬영은 3년 6개월 동안 이뤄졌습니다. 촬영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되었을 때쯤, 촬영본을 살펴보던 이 감독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들이 웃는 모습도 그렇지 않은 모습도 다양하게 찍혔더라고요. 그때 과연 '피해자다움', '유족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어머니들의 다양한 감정이 생기롭고 친숙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어머니들의 평소 모습과 스스럼없는 인터뷰를 담아냈습니다. 감독과 어머니들 사이의 유대감이 깊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제가 JTBC 뉴스 같은 곳에서 나왔으면 그렇게 털어놓지 않았을 것 같아요. 촬영 초기에는 어머니들의 하소연을 제가 들어주니까 더 편하게 이야기하셨던 것 같고요. 나중에는 신뢰가 쌓이면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아이들을 기쁜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영화 됐으면”
요즘 이 감독과 어머니들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 개봉을 비롯해 극단 공연과 각종 인터뷰로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머니들께서 신나셨어요. 패션지 화보 촬영도 하시는 등 거의 걸그룹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세요. 이제 심해지면 연예인병 걸릴 것 같다는 농담도 합니다. 관객과의 대화(GV)에 가면 오히려 제가 제일 어두운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서로 웃기려고 하셔서 제가 체통을 지키시라고 말씀도 드립니다.”
이 감독은 이번 영화가 세월호를 다르게 기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모두 고통스러웠잖아요. 사람들이 참사를 기억하겠다고는 하지만 그 기억이 아프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잊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께서는 예뻤던 우리 아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우리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기쁜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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