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내릴테니 계속 살아주세요”…전셋값 수억씩 낮추는 집주인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3. 4. 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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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아파트 전세 60%, 2년 전比 가격↓
수억원씩 내린 가격에 거래 체결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급매·급전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전셋값 하락으로 ‘역전세’(2년 전보다 가격이 내려간 전세 계약)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1분기 전국 아파트 전세 거래 10건 중 6건은 2년 전보다 가격이 내린 ‘역전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전셋값 흐름과 금리, 입주물량 등을 살펴볼 때 내년 상반기까지는 역전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5일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아파트 전세 거래 2만7952건 중 1만7016건(60.88%)이 2년 전(2021년 1분기)과 견줘 더 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이는 국토교통부 실거래 공개시스템 자료를 토대로 2021년 1분기와 2023년 1분기 동일 단지, 동일 면적에서 전세 계약이 1건이라도 있었던 경우를 비교한 결과다. 대상은 최고가 거래로 한정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계약 매물은 사실상 제외했다.

전국 시·도 중 역전세 거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로, 1102건 중 948건(86.03%)에 달했다. 이어 세종 76.08%, 인천 70.33%, 부산 68.57% 순으로 집계됐다. 수도권은 64.57%, 지방은 55.03%로 각각 조사됐다.

일례로 대구 달서구 감삼동 삼정브리티시용산 전용 84㎡는 지난달 2억4000만원(호갱노노 자료)에 전세계약을 체결됐는데, 이는 2년 전 평균 전셋값 대비 2억3400만원 낮은 가격이다.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5단지 전용 84㎡도 같은 기간 1억원 떨어진 1억9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역전세가 늘어난 이유는 잇단 고금리 기조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전세 물량이 쌓이며 시세가 하락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1분기 7.78%(3월27일 기준) 내렸다. 여기에 매매가격 하락과 공급량도 영향을 미쳤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영향을 받으면서 집값이 급락한 지역 위주로 역전세 발생 비율이 높았다”며 “최근 침체의 골이 깊은 대구의 경우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전세 시세 하락이 더욱 가팔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역전세 증가를 서울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거래된 아파트 전세 63.21%(6683건 중 4224건)가 지난해 1분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이 체결됐다. 동일 단지·면적에 최고가로 한정한 통계라 실제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우성1차 전용 125㎡는 2년 전 평균 전세가 대비 4억2500만원 내린 7억원에 지난달 전세 계약을 맺었다. 서초동 서초롯데캐슬클래식 전용 120㎡도 올 초부터 11억원 중반대 거래가 이어졌다. 2년 전보다 4억원 이상 떨어진 값이다.

올해 1분기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가격 하락흐름이 정체하는 양상이지만, 2021년과 비교해 전세 가격이 낮은 곳이 다수인 데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전세가율이 점점 하락하고 있어 역전세발 하반기 매물 급증 우려는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 아파트 시장…하반기 역전세 위험 주시
시장에서는 당분간 역전세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올해 초 부동산 규제지역을 대거 해제하고, 주택전매 제한 기간을 단축하는 한편 중도금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등 규제를 푼 영향에 서울 아파트 시장이 바닥을 찍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상당수는 주택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주식시장처럼 단기간에 추세가 전환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강남 3구 일부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단기간의 변동폭이 컸던 데 따른 평균 회귀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로는 21.01% 내렸는데 권역별 하락폭은 도심권 11.91%, 동북권 22.95% 등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평균과 비교해 높고 낮음을 따져 반등하거나 추가 하락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년 하반기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하락을 주도했던 역전세 매물이 여전히 많이 쌓여 있다.

아파트정보업체 아실 자료를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 대부분이 평균 가격 기준으로 2021년 대비 올해 전세가격이 낮다. 강남구는 2021년 평균 전세가격이 8억6921만원이었는데 올해는 7억5944만원으로 1억1000만 원가량 낮았다. 서초구와 송파구 역시 2021년 대비 올해 각각 9000만원(8억3817만원→7억4637만원), 7000만원(6억7751만원→6억644만원)가량 낮았다.

전세 거래량 역시 2021년 대비 30% 정도밖에 소화되지 않아 역전세에 따른 매도 압력이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작년 상반기에도 전셋값이 비쌌다”며 “내년 상반기까진 역전세난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성진 부땡톡 대표는 “내년 하반기는 돼야 역전세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전셋값 흐름과 함께 금리와 입주물량을 주시해야 하는데 신규 입주물량이 많을수록 전세 매물도 늘어나 전셋값에 더 강한 하방 압력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역전세 현상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 갭투자와 맞물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집값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영끌 갭투자가 유행한 바 있다. 많은 주택 매수자들이 전세를 끼고 대출을 한도까지 끌어 모아 집을 샀지만, 그 때 주택 매수를 가능하게 했던 고액 전셋값이 지금은 영끌 갭투자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셋값이 내려가면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차액을 돌려줘야 한다. 이미 무거운 빚을 지고 있는 영끌 갭투자자들에게는 돌려줄 돈이 없어 결국 집을 급매로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정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역전세로 인한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집값 하락세를 부추겼다”면서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집값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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