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장관 ‘4대강 보 물그릇론’…가뭄 아닌 정치 효용성 노렸나
환경부 “죽산보에 강물 담아 나주호 보내겠다”
농림부 이미 추진…“보 수문 열어도 양수 가능”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연일 ‘4대강 보에 물을 가둬 가뭄을 막을 수 있다’는 이른바 ‘물그릇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환경부는 한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4일 국회에서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주관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환경부는 이 자리에서 최근 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영산강·섬진강 유역 중장기 가뭄대책안’을 환경부가 발표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지방상수도 현대화 △수계기금 관련 법 개정 △댐 비상용량 활용 등 기존에 나온 대책이 대다수였고, 정작 한 장관이 강조한 4대강 보를 활용한 정책은 영산강 죽산보와 나주호 간선수로를 도수관로로 잇겠다는 방안이 유일했다.
박재현 물통합정책관은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 영향까지 고려한 극한가뭄(하루 부족량 57만톤으로 가정)을 대비해 죽산보에 저류된 강물을 나주호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산강 죽산보에 저류된 물을 나주호를 대신해서 농업용수로 대체 공급하겠다. 그러면 나주호에서 공급해야 할 물량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나주호는 광주∙전남 지역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4대 저수지 중 하나다. 14일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을 보면, 나주호의 저수율은 36.8%(3월말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영산강 죽산보 ‘물그릇 효과’는 없다
하지만 이 사업은 이미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영산강 죽산보 상류에서 나주호에서 나오는 간선수로까지 도수관로를 연결하는 사업이 현재 기본계획 수립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주호까지 보내는 데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우선 간선수로까지 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산강 죽산보에서 나주호 간선수로까지는 13.5㎞로, 이 구간을 도수관로로 잇는 데 47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용수로 이용하려면 나주호까지 24.8㎞의 도수관로를 더 건설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경우 예산은 1천억원을 훌쩍 넘긴다.
이 관계자는 또 “죽산보 수문을 열어도 양수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즉, 영산강 물을 굳이 보에 담아두지 않아도 강물을 길어 나주호 방향으로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물그릇 효과’를 강조하는 환경부와는 달리 보에 물을 가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 13일 충남 보령댐 도수관로를 찾아 “가뭄 지역과 보의 거리가 멀어서 물 공급이 어렵지 않냐는 지적이 있지만, 도수관로가 그런 (보에 가둔 물을 멀리 보낼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며 “보령댐 도수로 사례처럼 4대강 가뭄 대응에 보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보령댐 도수관로는 가뭄 빈발 지역인 충남 서부의 용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금강 백제보에서 보령댐까지 22㎞ 구간에 설치됐다. 하지만 662억원 공사비용에 견줘 보령댐 생활∙공업 용수 공급량이 5% 미만 늘어나는 데 그쳐, 도수관로를 이용한 장거리 물 공급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환경장관이 ‘가뭄 대책’ 외치는 또 다른 이유
환경부가 주장하듯, 4대강 보를 물그릇으로 활용해 가뭄을 막기 위해서는, 가뭄이 빈발하는 내륙∙산간 지역으로 장거리 도수관로를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보령댐 도수관로 사례에서 보듯, 도수관로 같은 중앙집중형 용수 공급 시설은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지천에 다수의 양수장을 마련하는 등 분산형 용수 공급 시설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남대 연구팀 등은 2018년 <한국농공학회지>에 낸 ‘나주호 가뭄 용수 공급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사업비의 집중 투자가 필요한 ‘영산강~나주호 도수관로’ 건설보다 (용수 공급의) 말단부에 양수장을 설치하는 등의 분산형 대책이 더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중앙집중형(시설)은 영농 지역까지 수로의 연장이 길어져 수로 손실이 더 커진다. 반면 말단부에 설치되는 분산형 시설은 수로 손실을 저감하면서도 가뭄 감소 효과는 더 크다”고 밝혔다.
4대강 보를 활용해 가뭄 피해를 줄이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환경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경부 장관의 잇따른 발언이 정책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전환경연합은 13일 “환경부는 가뭄을 핑계 삼아 4대강 사업을 부활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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