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병사의 ‘과시욕’과 허술한 시스템… 美 기밀 문건 유출 전말
직무상 1급 비밀에 접근 가능
韓 “유출 맞아… 정확성 따져야”
21살 유출범 테세이라는
義父 퇴역한 102 정보비행단 근무
통신망 관리… 사이버 시스템 훈련
중무장 FBI 요원들 자택서 체포
유죄 판결 땐 수십년 중형 전망
美당국 기밀 출력 관행 도마위
일일 정보 브리핑 접근권 축소
訪美 정부 고위당국자 밝혀
“아직까지 아무것도 확정 안돼”
대통령실 ‘거짓’ 입장과 온도차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3일(현지시간) 전 세계 곳곳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미 정부 기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주(州)방위군 소속 21세 잭 테세이라(사진) 일병을 체포했다. 이번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관련 수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AP통신은 테세이라가 매사추세츠 주방위군의 공군 내 정보부서 소속으로 직무상 1급 비밀(TOP SECRET)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밀 통제망이 말단 병사에 의해 뚫린 것으로 나타난 만큼 미국의 비밀 취급 시스템에도 대대적 정비가 불가피할 것을 보인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 각자는 (기밀유출 방지와 관련해) 비공개 계약서에 서명한다. (문건 유출은) 고의적인 범죄 행위”라며 “우린 이런 무단 유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4일 브리핑에서 “정보 유출이 된 것은 맞는 것 같다”면서도 “그렇지만 아직 전체적인 실상이 파악되지 않아 정확성에 대해선 계속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출된 정보는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며 “조사 결과가 나오고 미 측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경우 합당한 해명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은 미국 정부 기밀 문건 유출 사건은 ‘군 내부자’ 소행인 것으로 13일(현지시간) 드러났다. 특히 미 공군의 예비전력 격인 주방위군에 소속된 말단 병사가 최고 등급 기밀에 접근해 온라인에 유출까지 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군사 최강대국 미국의 기밀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날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체포된 잭 테세이라(21)는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 채팅방을 운영하면서 기밀 문건 여러 장을 사진 파일 형태로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뉴욕타임스(NYT), BBC방송 등 외신들에 따르면 테세이라는 2020년 고향인 매사추세츠주 노스다이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지들의 영향을 받아 군에 입대했다. 고교 졸업 전인 2019년부터 기초 군사훈련과 기술 교육을 받았고 2021년 매사추세츠 주방위군에 정식 입대했다. 그가 배치된 부대는 공교롭게도 34년간 군복무를 한 뒤 2019년 중사로 퇴역한 의붓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102 정보비행단이다. 이곳에서 그는 군사 통신망 관리를 담당하면서 사이버 전송 시스템 전문가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진급해 일병 계급장을 단 뒤 가을에 연방군에 동원됐다. 테세이라는 최근까지 케이프코드 기지에서 야간 교대근무를 했으며, 얼마 전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그의 모친은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테세이라가 게임, 총기, 군사 장비 등에 관한 대화가 오가는 채팅방에서 ‘OG’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채팅 참가자들 인터뷰를 토대로 보도했다. 약 24명의 채팅방 회원들은 대부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방 안에 고립된 10대들로 테세이라를 존경하며 따랐다고 한다. 채팅방에서 그는 열성적인 총기 애호가였고, 세계 소식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보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채팅방 회원들은 특히 테세이라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주요 사건에 대해 예언하듯 말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신화 같은 존재”, “전설”로 추앙받았다고 전했다. 테세이라가 자신의 정보력 과시 등을 위해 기밀 문건을 유출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테세이라는 이런 점에 미뤄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정보 수집·사찰 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내부 고발자’ 유형이 아니라 ‘자기 과시형’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테세이라는 간첩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징역 수십 년의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테세이라가 미국 형사법의 특징 중 하나인 유죄협상 제도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형벌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외신들은 1급 비밀(TOP SECRET)로 분류된 기밀 문건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다수인 점이 이번 사건을 통해 문제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문 의제 등을 조율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정부 고위당국자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가 최근 논란이 된 기밀문서 유출 사건과 관련해 곤혹스럽고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고 밝혔다.
고위당국자는 이날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 당국자들이)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한 기색도 역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중간중간에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약속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맹에 있어서 자신들이 큰 누를 범한 것 같고, 정말로 ‘한국에 대해서 잘 하고 싶다. 그리고 오해가 없길 바란다’ (등) 그런 성의 있는 답이 계속 오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그런 반응이 도청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고위당국자는 “결과적으로 사실 관계를 떠나 우리 정부가 많은 의혹과 비판을 받게 됐고 동맹 관계가 훼손될 수 있는 여러 오해가 남게 됐다는 뜻”이라며 “한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곤혹스럽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판단한 바에 의하면 미국이 도청을 했다고 확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또 미국이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도청이 없었다고 발표한 것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았다”며 “(도청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도 아직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지금까지’라는 전제를 달아 ‘확정된 사실이 없다’고 밝힌 것은 도청 논란이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일축한 기존 대통령실 입장과는 온도차가 있는 대목이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서는 “사이버 안보 협력에 대한 별도 문건이 발표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문건에) 정보 공유나 생산, 분석 및 활용, 이행 차원에서 신뢰를 재구축하는 조치 등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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