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새롭고 참신하게!…기자부터 바꿔라”

KBS 2023. 4. 1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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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북한에선 태양절을 명절 중의 명절, 최대 명절로 중시하면서 이를 계기로 내부 결집을 꾀하는데요.

이런 때 선봉에 서서 총공세를 펼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집단이 있습니다.

네, 바로 기자와 방송원 등 우리로 치면 언론인들인데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기자동맹 대회까지 열어 주민들을 향한 언론의 강력한 사상전을 촉구했습니다.

북한의 ‘기자’라고 하면 남북정상회담 같은 때 만나봤었는데요.

대체로 좀 딱딱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북한 기자들에게 이번 기자동맹 대회에선 ‘새롭고 참신한 기사를 쓰라’는 당의 주문이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네,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엔 줄곧 참신하고 효과적인 선전선동을 강조해왔는데요.

그래서 보도방식도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클로즈업 북한>에서 북한 기자들의 변화상, 짚어드립니다.

[리포트]

태양절을 앞두고 김일성 사적지에 모인 사람들.

하나같이 수첩을 들고 기록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기자, 방송원, 출판인 등으로 구성된 조선기자동맹원들입니다.

["참가자들은 당중앙의 충실한 대변자, 출력 높은 확성기, 잡음 없는 증폭기로서의 영예로운 사명과 임무를 다해나갈 열의에 넘쳐 있었습니다."]

2001년 이후 22년 만에,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으로 기자동맹대회를 연 겁니다.

이번 대회에는 조선중앙TV 방송원 리춘히, 노동신문 논설위원 동태관 등 언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는데요.

과거 대회와 마찬가지로 경제난이 가중된 상황에서 사상전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새롭게 제시한 언론의 역할이 흥미롭습니다.

‘인민을 고무하는 기사를 기동성 있게 내라’면서‘새롭고, 참신한 기사로 실효성과 침투력을 높이라’고 주문한 겁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번 기자대회에서 굉장히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형식이나 이런 것들에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일종의 혁신을 강조하는 거죠."]

‘시대의 선도자’‘혁명의 나팔수’로 불리는 북한 기자.

내부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 당국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인데요.

출신 성분은 물론, 강도 높은 사상 검열을 거쳐 까다롭게 선발합니다.

[김주성/탈북 작가/유튜브 ‘남북의 썰’에서 : "북한은 직업군에 작가, 기자가 따로 있어요. 그 정도로 기자, 작가들은 직위가 높아요. 특히나 작가보다 더 높은 게 기자예요. 토대 중에 토대가 좋아야죠. 어학(관련학과를) 졸업한 다음 어느 직종에 있든 간에 당 조직에서 파악해서 추천하면 특수양성기관에 가서 그 기관을 거치고 졸업을 하면 그다음에 졸업할 때 노동당에서 얘 괜찮네 그러면 너는 노동신문사 배치 이렇게 되는 거죠."]

양성 기관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기자들이 외부에도 잘 알려진 조선중앙TV, 노동신문등에 배치되는데요.

가장 인정을 받는 기자는 중대 보도나 정치행사 진행을 맡게 됩니다.

기자와 비슷한 방송원, 조선중앙TV의 입으로 불리는 리춘히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자의 역할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중앙TV/2016년 1월 6일 : "주체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4차 핵실험 공식 보도를 맡으며 김정은 시대에도 입지를 지킨 핑크 레이디, 리춘히.

정권 수립 73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어깨에 손을 대고 귓속말을 하거나, 기념사진 촬영장에선 가장 먼저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았고, 지난해 4월, 태양절을 앞두곤 평양 보통강을 조망권으로 둔 초호화 고급 빌라를 선물 받았습니다.

[조선중앙TV/2022년 4월 13일 : "리춘히 방송원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그가 살게 될 경루동 7호 동으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북한 언론인의 역할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준 겁니다.

이 때문에 북한 기자들은 당과 수령을 떠받들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인정받기 위한 기사를 쓰는 걸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정춘모/北 강원일보 공훈기자 : "제 마음속의 기둥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수령님, 우리 조국입니다. 이것은 제 한 생의 총화이기도 합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아무래도 핵심부서에 있으면 상승이동도 조금 더 용이하다고 볼 수가 있겠고 거기서 조금 더 당의 방침이라든지 북한의 입장을 좀 더 잘 설명하고 잘 설득할 수 있는 글이나 보도나 이런 것들을 하게 되면 확실히 주목받을 수가 있겠죠."]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새롭고, 참신한 기사란 어떤 걸까요?

답은 달라진 보도 형식에 있습니다.

["여기는 역사의 땅 포평입니다. 전국 학생 소년들이 배움의 천리길 답사행군을 시작하기 위해서 모여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김일성 따라 배우기’수업이라 불리는 배움의 천릿길 행군.

약 보름가량 이어지는 행군을 올해는 조선중앙TV 기자가 동행했습니다.

김일성 우상화라는 주제는 같지만, 일방적인 전달에서 벗어나 직접 현장을 취재하고 참여도 대폭 강화한 겁니다.

뻔한 인터뷰 대신 현장의 다양한 소리도 담아냅니다.

["(학생 동무 힘듭니까?) 좀 힘듭니다. (좀 힘듭니까?) 네."]

["(학생 동문 가방을 두 개씩 멨구만요. 누구 가방입니까?) 이 동무 가방입니다. (여학생을 도와주는구만요. 끝까지 갈 수 있습니까?)네, 일없습니다. (괜찮습니다.)"]

["(학생 동무 모닥불이 잘 안 핍니까?) 저 모닥불을 처음 피워봅니다. 그런데 연기가 나한테만 오고 정말 힘듭니다."]

김 위원장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관광지 소개 방송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보세요. 네, 과장 동지 도착했습니다."]

기자가 대중 속에서 온천 체험에 나선 겁니다.

기자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그대로 전파를 탔습니다.

["방송기자 동지로구나!"]

기존의 무겁고 딱딱했던 이미지를 벗고 친근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재밌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로 기사로만 뉴스를 전달했던 기자들이 화면 곳곳에 등장하며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건, 글보다 동영상에 익숙해진 주민들을 겨냥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북한 표현으로 손전화기 가지고 언론을 접하잖아요. 북한도 그런 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 변화에서 특히 언론인들 기자들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이었고 종이신문 시대에서 소위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단순히 기술적인 매체의 차이뿐만 아니라 기사 작성이나 이런 것도 바뀌잖아요. 포인트도 바뀌게 되고 그런 것이 불가피하다는 거죠."]

한편으론 조금씩 외부 문화가 들어오면서 그에 따른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란 분석입니다.

기성세대들에게도 외부 소식은 늘 인기 있는 뉴스라고 하는데요.

[김주성/탈북작가/유튜브 ‘남북의 썰’에서 : "북한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동신문)지면이 그거예요. 먼저 국제 소식이에요. 그다음에 6면에 남조선 소식. 궁금하니까. 그걸 가장 먼저 보고 국내 소식은 밤낮으로 학습이나 강연회 이런 걸 통해서 듣던 소리라 보지도 않아요."]

또 북한의 MZ 세대, 장마당 세대들은 외부 문화 수용에 있어 훨씬 더 적극적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 당국이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인터넷, 휴대전화 등을 통한 외부 문화 유포 차단에 나설 정돕니다.

이 같은 법적 통제와 함께 선전 선동의 전면에 있는 기자를 활용해 나름의 혁신을 시도한다는 평갑니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김정은식 세계화’ 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김정은식’ 이라는 것은 굉장히 한계가 있고 북한식 이라는 걸 의미하고 (세계화는) 세계 보편적 기준을 쫓아가려는 것들이고 그런 것들을 중시하고 있는 거죠. 통제체제고 권위주의체제에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폭을 넓혀가고 있는데 막고 풀어주고 그런 당국의 노력이 있지만 그에 비해서 좀 더 자극적이고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는 외부 문화의 유입은 점점 빨라지는 거죠."]

현장을 누비며 대중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북한 기자들.

수단의 변화라는 한계 속에도 북한 사회에 어떤 변화를 미칠지 주목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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