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환장했다는 이 음식...영혼의 단짝 있었다는데 [전형민의 와인프릭]
로마 제정을 개막한 카이사르, 프랑스의 황제이자 전쟁천재였던 나폴레옹, 독일 통일을 완성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소설 몬테크리스토백작을 쓴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들은 활동했던 시기부터 영역까지 전부 제각각이지만 역사 속에서 당대의 위인이자 천재로 불립니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지만 재밌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모두 한 가지 음식, 굴(Oyster)에 꽂혀 있었다는 점이죠.
카이사르는 ‘탬즈 강에서 먹은 굴 맛’을 잊지 못해서 브리타니아(현대의 영국)를 정복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굴을 사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버섯과 굴을 좋아해 전장까지 공수해 먹었다고 하고요. 비스마르크는 한 번에 175개의 굴을 먹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아이젠하워의 굴 사랑은 유명해서 진급할 때마다 선물로 굴 상자를 받곤 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위인열전에 이어 왠 굴 얘기냐고요? 오늘 소개할 와인이 굴과 영혼의 단짝으로 유명하거든요. 앞서 소개해드린 소비뇽블랑이 화창한 봄을 닮았다면, 요즘이 딱 어울리는 봄비가 내리고 난 뒤 촉촉해진 꽃밭을 거니는 듯한 와인, 샤블리(Chablis)입니다. 아마 한 번 맛 보면 굴 요리를 먹을때마다 찾게될껄요?
샤블리는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160㎞ 정도 떨어져 있는 원래는 레드와인을 생산하던 욘 지역의 일부입니다. 프랑스 수도인 파리와 욘 강(L’Yonne)을 통해 교류가 가능한데다, 거리도 멀지 않아 와인을 물처럼 마시던 시대에는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을 공급하는 식수원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포도나무계의 흑사병 필록세라가 프랑스 전역에서 창궐하면서 욘 지역 포도나무도 대다수가 쓰러졌습니다. 여기에 철도가 운송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값싼 철도를 통해 파리로 와인들이 보급되기 시작하자 이 지역 와인들은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결국 욘의 와이너리들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됩니다. 하지만 몇몇은 끝까지 남아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고급화 전략을 선택하죠. 편하게 마시는 와인 대신 고품질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 집중한 것인데요. 이게 시장에 먹혔습니다.
샤블리 마을 주변 오래 전 융기된 언덕을 중심으로 샤도네 품종 포도나무를 키웠는데, 이 과실을 양조한 섬세하고 순수한 화이트 와인이 인기를 끌게된 겁니다.
키메리지언(Kimmeridgien)이라고 불리는 토양인데요. 내륙의 한 가운데인데도 땅을 파보면 굴과 조개의 화석이 풍부하게 나옵니다. 오래 전 깊은 바다나 호수였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거죠. 결국 샤블리는 굴과 조개의 화석이 잔뜩 나오는 심해토에 깊게 뿌리내린 포도나무 과실로 양조한 와인인 셈인데요. 그 덕분일까요? 굴과 영혼의 단짝으로 불릴 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참 재밌는 인연입니다.
이 특이한 석회질 점토와 서늘한 기후는 샤도네 포도의 산도를 더 강하게 키우고, 과실미를 살짝 억눌러 주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샤블리는 달지 않고 순수하면서 깨끗한 향과 맛을 지니게 되죠. 글 처음에서 봄비가 내리고 난 뒤 촉촉해진 꽃밭 같다고 표현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세상 먼지를 다 씻어내린듯한 깔끔함 속에, 미세하게 몽글몽글 꽃향과 과실향이 올라오거든요.
여기에 플린트(Flint) 뉘앙스가 추가됩니다. 부싯돌로 표현되는데 약간 짭짤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쇠 냄새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주 특이한데, 한번 빠지면 잘 헤어나오기 어려운 중독성 있는 뉘앙스죠.
이 뿐만 아니라 샤블리는 근대 양조기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통까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합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서 이제는 명품이라고 불리는 샤블리가 탄생한 겁니다. 와인 만화 ‘신의물방울’에서는 샤블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것저것 마셔보고 시험해본 결과, 샤블리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아. 하나는 몹시 드라이하면서 샤블리의 특징인 미네랄이 두드러져. 또 하나는 사과와 복숭아, 파인애플, 서양배, 감귤류의 향과 과실 맛이 넘치듯한, 향이 풍부한 샤블리야.”
이게 무슨 모순적인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높은 등급의 샤블리는 오히려 음식의 맛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인기있는 와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샤블리도 자체적인 등급체계를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쁘띠 샤블리·샤블리·샤블리 프리미에 크뤼·샤블리 그랑 크뤼 입니다. 쁘띠 샤블리는 극단적인 단조로움을 보여줍니다. 가볍고 신선하고 깔끔하죠. 어떤 분들은 쁘띠 샤블리를 처음 접할때 ‘뭐야? 레몬물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하더라고요.
반대로 등급이 올라갈수록 다양하고 오묘한 향과 맛이 늘어납니다. 특히 과일향과 꽃향, 미네랄 풍미가 늘어나고 최고급 샤블리들은 여기에 꿀향까지 추가되기도 합니다. 제일 큰 차이는 프리미에 크뤼부터는 대부분 오크통 숙성을 거친다는 것 입니다. 당연히 오크 뉘앙스가 추가되고, 풍미가 더 복잡·다양해지겠죠.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크통 발효를 거치면서 샤블리 특유의 찌릿찌릿한 산미가 둥글둥글해지고 꿀향이 생기면서 오히려 굴의 비릿한 맛을 부각시키게 됩니다. 맛과 향의 복합성과 다양성이 걸림돌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고급 샤블리는언제 먹냐고요? 프리미에 크뤼나 그랑 크뤼는 그냥 단독으로 즐기면 됩니다. 언제든 가볍게 한잔하고 싶을때 식전주로 샤블리만한 게 없거든요. 고급 샤블리는 입에 넣는 순간 머릿 속이 꽃밭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실 겁니다.
한 가지 더 팁을 드리자면, 쁘띠 샤블리와 샤블리 등급을 구매할 때 빈티지를 고를 수 있다면 생산된지 5년을 넘기지 않은 녀석을 추천합니다. 이미 말했듯, 낮은 등급 샤블리들은 그 신선함이 생명입니다. 아무리 병속에 잠들어있다고 해도, 너무 오래된 것은 신선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죠.
다만 프리미에 크뤼나 그랑 크뤼라면 얘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장기숙성에 적합한 훌륭한 포도와 그에 걸맞는 우아한 오크 터치가 가미됐을테니까요. MW(Master of Wine, 와인계 최고권위자) 중 한 분은 유튜브에서 “2014년 빈티지 고급 샤블리는 보이는대로 사서 나한테 보내달라. 값은 다 치루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어라? 아직도 가만 앉아계신가요? 굴 제철이 4월까지인데… 굴과 샤블리가 함께하는 이 아름다운 봄날을 그냥 보내시려고요?
※최근 플린트 풍미와 샤블리의 뉘앙스가 키메리지언 토양이 가진 특별한 떼루아가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호주의 한 지역에서 양조한 와인이 샤블리와는 전혀 다른 떼루아지만 비슷한 뉘앙스를 보였다는 연구입니다.
본문에는 아직까지는 와인 업계에서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키메리지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앞으로 자세한 연구를 통해 해당 내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연구해야할 것이 더 많은 와인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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