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서는 농업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정책의 전환, 그리고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한 신품종 개발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13일 한림원회관 1층에서 ‘우리 식량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제209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박현진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이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식량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20%까지 떨어졌고,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도 전세계 39위로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그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곽 연구원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곡물자급률은 27%선에 그치고 있지만 해외농업을 통해 들여올 수 있는 곡물까지 포함한 곡물자주율은 100%에 달한다”며 “한국도 일본처럼 곡물자주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연구원은 식량안보 구축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식량안보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차원에서 글로벌 식량 수급을 심도있게 분석해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재설정하고 목표치 달성을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며 “기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서 식량부분만을 분리해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곽 연구원은 “특히 유전자가위 등 신기술을 활용해 생명공학 품종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2017년 농촌진흥청 산하 GM작물개발사업단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해체됐는지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열 경상국립대학교 SRC 식물생체리듬연구센터 석좌교수는 ‘생명공학품종 개발과 대책’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생명공학 작물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이미 29개국에서 GM작물을 재배하고, 42개국이 이를 수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2021년에 1115만t에 달하는 GM작물을 수입해 식품용과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GM작물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규제에 묶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가운데 기후위기에 대응해 건조한 날씨에서도 잘 자라는 GM밀 개발이 시작됐고, 광합성 효율을 높여 수확량을 33% 늘린 GM 완두콩도 개발됐다”며 “중국이 2016년 55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 다국적 농생명기업인 신젠타를 인수하고, 쌀을 비롯해 콩, 옥수수 등 다양한 GM곡물을 개발해 생산원가를 최대 10분의 1까지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일본은 유전가 가위 기술을 활용해 스트레스 저하 물질인 GABA 함량을 높인 토마토에 대해 시판을 허용했다”며 “우리나라도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작물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묶여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생명공학 품종 개발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이런 품종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유장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은 “국내에서는 NGO들의 비과학적인 논리에 휘둘려서 GM 작물이 단 한 건도 안정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일본에서는 이미 허용되고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의해 개발된 작물에 대해서도 강한 규제가 가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의 정책적 후진성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은 “2016년 새만금에서 대규모 농업을 하려던 기업이 생산자 단체들의 반대에 의해 좌절된 적이 있다”며 “이제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서라도 우리 농업을 보호의 관점이 아닌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한영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정부가 농정 과제 중에 가장 크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식량주권 확보”라며 “작년 말에 식량안보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전 정책관은 “정부 대책은 국내에서 식량 생산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 그리고 해외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식량 공급을 확보할 것이냐로 모아진다”고 덧붙였다. 전 정책관은 또한 “자급률이 1%인 밀과 24%인 콩의 국내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타작물 재배지를 단지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매수 방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겠다”며 “특히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해 농지 전용 기준을 보다 까다롭게 적용하는 등 농지를 보다 잘 보전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명자원부장은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신기술 활용 측면에서는 안정성, 기술력 확보,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 등 3가지 요소가 중요하다”며 “그 중에서도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가 별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중국이 콩과 옥수수를 수입하다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GM 상업화 재배에 나섰고, 남미 쪽에서는 가뭄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GM 밀 상업화를 추진했다”며 “우리나라도 식량안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국민적 소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정빈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을 위해 미국 등 선진국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식량과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원장은 “농지가 비농지가 되는 것은 쉽지만 비농지를 농지로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선진국일수록 농지 전용에 대한 강한 규제가 받아들여지는 것도 따지고보면 어린 시절부터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잘 교육받은 데 따른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임 원장은 이어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신품종 개발을 통해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논리적으로 잘 설득함으로써 국민적 인식을 개선하고 수용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혁훈 매일경제신문 농업전문기자는 “식량안보를 측정하는 지표로 곡물자급률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그 이유는 곡물자급률이 계속 낮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농지 면적이 줄고 육류 소비 증가로 곡물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인 만큼 우리나라가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따라서 해외농업을 확대해 곡물자주율을 높인다든지, 아니면 해외에 있는 곡물터미널을 인수한다든지 하는 노력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천혜의 항구를 보유한 새만금에 메이저 곡물업체들의 터미널을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단순한 자급률 개선보다 식량안보지수 강화 수단을 다각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