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안전해져야만 사랑받는 존재[책과 삶]
‘문명의 타락에 대한 용서’로 해석
‘베스트셀러’ 홀로코스트 소설들은
아우슈비츠의 로맨스 등 희망 그려
소련의 하얼빈 유대인 핍박이나
최근 미국서 발생한 혐오 범죄 등
실제 사람들이 겪거나 겪고 있는
‘지옥의 모습’ 외면하는 현실 고발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서제인 옮김|엘리|1만8500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의 집’엔 해마다 100만 명이 찾아간다. <안네의 일기>는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다. 유대인의 죽음을 다룬 ‘홀로코스트 문학’도 종종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죽은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는 사례다.
저자는 ‘죽은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나 애착, 집착이 인간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가장 상냥하고 시민 정신이 투철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을 때조차” 말이다.
유대인은 “살아 있을 때는 혐오의 대상이 되다가 오직 죽어서 안전해져야만”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책 1장 ‘모두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죽은 유대인’이 이 문제를 주로 다룬다.
유대인 “죽어서 안전해져야만 사랑받는 존재”
2018년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부터 이야기한다. 직원이 야물커(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동글납작한 모자)를 쓰려고 하자 저지당한 것이다. 고용주들은 야물커가 박물관의 “독립적 위치”를 방해할 수 있다며 야구 모자 속에 안 보이게 쓰라고 했다. 죽은 유대인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에서 유대인 정체성을 숨기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 대목에서 <안네의 일기> 중 한 문장을 내놓는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는 내용의 이 문장이 무슨 문제일까.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되게 해준다.” ‘죄사함’ 즉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다. 안네는 “죽임을 당한 사실이 우리에게 무언가 교훈을 준다는 분명한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저자는 “유대인은 도덕적이고 교육적인 목표를 위해 죽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불꽃에 타들어가는 두 눈···5000개의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야
저자는 안네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집단 학살에 관해 썼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다.
노벨평화상 수상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이 아우슈비츠 수감의 고통을 쓴 <나이트>가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안네의 일기>가 이어졌더라면 비슷한 형태가 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책이다. 오프라 북클럽에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젤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잘만 그라도프스키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 호송과 소각을 하도록 강요받은 ‘존더코만도’의 일원이었다. 1944년 10월 7일 계획하고 하루밖에 지속되지 못한 존더코만도 봉기에서 살해됐다. 그가 “자유로운 세상의 시민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이디시어 쓴 기록이 사후 발견됐다. 한 여자가 그에게 “저, 아저씨, 죽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쉬운가요 어려운가요?” 하고 물었던 일 등을 기록했다. 저자가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들을 용기가 있기”를 바라며 인용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 타는 데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은 머리다. 두 개의 작고 푸른 불꽃이 양 눈구멍에서 깜박거린다. 이것들은 뇌와 함께 타는 두 눈이다. (…) 전체 과정은 이십 분쯤 지속된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 하나의 세계가, 재로 변했다. (…) 5000명의 사람이, 5000개의 세계가 불꽃에 먹혀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결같이 희망을 주는 ‘홀로코스트 문학’들 사례
사람들은 이 기록도, 그라도프스키도 잘 알지 못한다.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저자는 집단 학살에 관한 <다가올 세계>를 쓴 뒤 받은 e메일을 소개한다. “저는 사람들이 웃고 즐기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쓰는 것이 인류에게 조금 더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독자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수년간 미국과 해외에서 수백만 부씩 팔린 홀로코스트 소설들은 한결같이 ‘희망을 주는’ 소설들이다. <사라의 열쇠>는 “로맨스가 벌어지는 아우슈비츠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불운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희생하는 비유대인 구조자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견뎌낸 유대인 가운데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비유대인의 언어로 된 문학에서 그런 우울한 현실은 불편할 뿐 아니라 부적절하기도 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의 목적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의 과거와 관련해 가장 몸서리쳐지는 측면들에 관해 정직한 소설을 쓰는 일은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라고 되묻는다.
저자는 홀로코스트가 사랑의 중요성을 납득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홀로코스트는 사랑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전 세계 모든 사회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책임을 대변하는—이 세계에 ‘명령받음’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래 언제나 그것을 대변해온—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홀로코스트 속에 담긴 생존자들의 수치
저자는 ‘비유대인 구조자’ 즉 ‘정의로운 비유대인’이라 불린 이들 중 한 명인 미국인 배리언 프라이의 삶도 분석한다. 그는 한나 아렌트,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앙드레 브르통 같은 이들을 구조한 사람이다. 구조된 유명인들 대부분이 나중에 왜 프라이를 피하거나 무시했는지도 파고든다. 아렌트를 글이든, 만남이든 한 번도 프라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프라이의 구조엔 인도적인 이유, 인정 욕구, 유명인과 교류 등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당혹스럽고도 복잡미묘한 이 문제를 두고 저자는 프라이가 수백 명을 구했지만, 절멸 계획을 듣고도 그 자체를 막으려고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건 구조자와 구조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다. “(이 관계에는) 본질적으로 수치스러운 무언가가-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일의 굴욕이-있고, 그 수치스러움은 구조자들을 향한 적대감으로 드러난다.” 구조자들에겐 인생의 최고의 시기이자 삶의 가장 의미가 컸던 시기지만, 구조된 이들에겐 최악이자 가장 의미 없는 시기였다. 저자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 홀로코스트라는 사실 속에도 깊은 수치스러움이 담겨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무지를 깨친 게 있다. 머릿속에 ‘안중근’ 정도만 기입된 도시 하얼빈을 세운 이들이 유대인이란 점이다.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철도 노선 중 중국 쪽으로 파고드는 지선에 계획한 행정 중심지가 하얼빈이다. 누가 만주 같은 곳으로 이주해 오고 싶겠는가? 당시 러시아 재무장관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가 유대인들을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첫 번째로 온 유대인들은 1898년에 도착해 1903년에 공식적으로 공동체를 설립했다. 1904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쓴 기사 한 단락은 다음과 같다. “전 세계가 목격한 도시 건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지금 만주 한복판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베리아의 유대인들이 자금을 댔다. 유대인 사업가들은 하얼빈 최초의 호텔, 은행. 약국. 보험회사, 백화점, 출판사를 지었다. 1909년 무렵 40명의 시의회 의원 중 12명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 세운 도시 하얼빈…되풀이된 죽음과 추방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도망쳐 온 반공산주의 왕정주의자 백인들이 “적개심 가득한 반유대주의”로 파시스트 정당을 세웠다. 이들은 1931년 유대교 회당을 불태웠다. 이후 일본 헌병대는 러시아계 백인들과 유대인 경영주들과 그들 가족의 재산을 몰수했다. 납치, 살해도 저질렀다. 1945년 하얼빈을 점령한 소련은 유대인 지도자들을 정치범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냈다. 1949년 중국의 모택동주의자들이 하얼빈을 점령했을 때도 유대인 사업과 생계는 강탈당했다.
지금 하얼빈엔 “사망하거나 추방된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재산이나 “이베이 사이트에서 조달”한 물건으로 만든 ‘유대인 문화유산지구’가 들어섰다. 산 유대인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죽은 유대인의 무덤을 찾는 게 ‘관광 코스’ 중 하나다. 가짜 묘지와 가짜 회당이 포함됐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어진다. “유대인 문화유산지구라고 부르면 그 모든 성가신 도덕적 걱정거리는 선의의 안개 속에서 증발한다.”
‘죽은 유대인’ 외에 사람들이 또 사랑하는 ‘유대인의 돈’이다. 하얼빈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박물관은 전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가난한 유대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로 쓰인 공간은 배제한다. 돈은 해외 유대인의 투자 유치도 뜻한다. 또 하나는 “일종의 병적인 유대인 애호”에 관한 돈이다. <탈무드: 돈벌이를 위한 유대인의 가장 위대한 경전> 같은 책들의 인기에서 확인하는 애호다. 2007년 하얼빈에서 열린 ‘하얼빈과 세계 유대인 간 경제협력에 관한 국제 포럼’에는 하얼빈 시장이 한 말은 “세상의 돈은 미국인의 주머니에 들어 있고. 미국인의 돈은 유대인의 주머니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지혜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칭송입니다”였다.
샤일록은 싫고, 유대인 투자자는 좋다
유대인의 돈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베네치아)의 상인> 내용과 후대 해석 문제도 들여다본다.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같은 해석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중 하나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에서 샤일록 같은 사람이 “숨 쉴 허락이라도 받으려면 몇 년마다 한 번씩 허가서를 갱신”해야 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베네치아 시 당국은 금고가 바닥나자 수익의 새로운 원천을 찾으려고 고리대금업자와 전당포 운영자 같은 몇몇 직업인들만 유대인들을 불러들였다. 이들이 살 게 된 지역이 바로 ‘게토’다. 이 게토의 문은 밤에 잠겼다.
1475년 베네치아에서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트렌트에서는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에 태워졌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된 역사도 거론한다.
책은 기존 홀로코스트 책에서 잘 다루지 않은 여러 문제와 쟁점을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는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게 아니라 다만 시온주의에 반대할 뿐이다”를 두고 소련이 만든 “융통성 있는 가스라이팅 구호”라고 말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엔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 같은 표지판이 걸릴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1930년대 뉴욕시에 개명 청원한 이들 중 65% 이상이 유대인처럼 들리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로젠버그’를 ‘로즈’로 바꿔 입사 지원서를 쓰면 채용되리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저자는 개명한 유대인을 두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이 “이름을 바꾸는 바로 그 행위를 하는 동안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함으로써 모욕에 동참”한 점이라고 말한다. “여러 세대에 걸친 표지가 공공연히 역겨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말할 수 없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의 은밀한 모욕감을 상상해보라.”
나치 언론 고위자 ‘업적’ 기린 하버드 동문회와 ‘하버드 크림슨’
배리언 프라이와 하버드 동문인 에른스트 한프슈탱글도 1930년대 중반 미국에서 환영받았다. 독일 이민자의 자녀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부모의 나라를 위해” 독일로 돌아갔다. 히틀러와 친구가 됐다. 괴벨스의 계몽선전부에서 외신국 국장 지위까지 올랐다. 하버드 동문회는 반나치 시위가 벌어지던 1934년 해외에서 고위 관료가 된 그의 업적을 기리며 동문회 부대표로 임명했다. 학생 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명예 학위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프슈탱글은 1935년 프라이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하버드를 위한 만세 삼창’ 듣는 것을 총통이 매우 좋아했다고 자랑”했다.
책은 최근 수년 간 미국 유대인 살해 사건과 온라인 혐오와 증오 사건도 다룬다. 현실은 더 나빠진다.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이전 몇 세대는 홀로코스트라는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에 분개했다. 이들 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반유대주의를 표출하는 일에 대한 대중의 수치심”도 죽어간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유대인들을 혐오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40대이자 파란색의 눈을 지닌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히틀러는 너희 눈이 전부 검은색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같은 끔찍한 말과 상처를 ‘정신의 서랍 양말 칸’에 넣어뒀다고 한다. 여기엔 “가스실에나 가라”고 외치던 고등학생들, 저자가 유대인이라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며 흐느껴 울던 룸메이트 같은 기억도 들어 있다.
저자가 이 서랍 칸을 다시 열어 들여다보며 말하고 싶은 건 “문제는 우리에게는 죽은 유대인들이 은유가 아니며,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실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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