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1억원이 입금됐다···"잘못 보냈다"는 세입자, 돌려달라는데 [이슈, 풀어주리]

김주리 기자 2023. 4. 15.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풀어드립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냅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 김주리 기자가 ‘풀어주리!' <편집자주>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이미지투데이

“돈을 잘못 입금했다”며 돌려달라는 부탁,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3월 말, 40대 여성 A씨의 통장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550만원이 들어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A씨는 즉각 은행 측에 확인을 요청했고, 은행으로부터 '잘못 보낸 돈으로 보이니 입금자가 오송금 반환 신청을 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았다.

며칠 후 A씨는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된다. 최근 자신의 집에 월세를 내준 세입자 B씨로부터의 연락이었다. B씨는 "우리 아들이 얼마 전 A씨의 통장으로 돈을 잘못 보냈는데, 오늘도 또 잘못 보냈다"며 "입금된 돈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통장을 확인한 A씨는 깜짝 놀랐다. 통장에 30분 전 입금된 ‘9900만원’을 포함해 1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총액인 1억450만원을 B씨 명의의 통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은행으로부터 안내 받은대로 "오송금 반환을 신청해달라"고 말했으나 B씨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계좌로 송금해줄 것을 요청했다. 은행에서 '오송금 반환 신청이 안되니 따로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수상함을 느낀 A씨는 자신의 통장이 혹 탈세 통장으로 이용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찰서를 찾았고, 이 같은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월세계약서를 전세계약서로···가짜 도장까지 만든 치밀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린 A씨의 글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오갔다. 네티즌들은 '사기'가 아니냐는 의심부터 '집이 매각된 건 아닌가'라는 등 다양한 내용을 추론하며 A씨를 우려했다.

설득력을 얻은 건 '대출사기'가 의심된다는 추측이었다. 금액이 입금된 순서가, 최근 시행되고 있는 청년 전세자금 대출방식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최초로 주장한 네티즌은 "세입자가 만 34세 미만인 아들의 이름으로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것 같다"며 "1억1000만원으로 전세 서류를 만든 것 같고 550만원은 5% 계약금인 듯하다. 90%까지 대출이 되니 9900만원이 입금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황을 제시했다. 즉, 월세 세입자인 B씨가 아들인 C씨의 이름으로 A씨의 집을 상대로 1억1000만원 계약의 위조 전세 서류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해당 네티즌은 "동사무소에 가서 '확정일자'를 확인해보라. 청년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확정일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동사무소와 경찰서를 찾은 A씨는 마침내 세입자 B씨와 그의 아들 C씨가 자신이 B씨와 맺은 '월세계약서'를 1억1000만원어치 '전세 계약서'로 위조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 이들은 대담하게도 A씨의 도장까지 새로 파서 계약서에 찍어 놓았다. 계약서에 작성된 A씨의 이름과 주민번호 옆에는 세입자인 B씨의 전화번호를 적어 A씨가 눈치채는 것을 피했다.

A씨는 "내가 여자고 어리니까 만만하게 보였나"라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 1억원을 자신의 계좌로 보내달라면서 협박까지 했다. 멘탈이 다 털렸다"고 공분했다.

이어 A씨는 "내가 사는 곳은 외진 시골이다. 내가 아니라 노인 세대였다면 세입자의 계좌에 1억원을 송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름 돋는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들을 상대로 사문서 위조 혐의로 소송을 냈다.

"온라인 신청만 하면 승인"···청년 전세대출 악용 사기 속출
HF 홈페이지 캡처

정부에서 보증하는 청년층 주거 안정을 위한 전세보증금 대출 제도의 허점을 노려 조직적으로 대출금을 편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3월 수원에서는 서류를 조작해 인터넷 은행에서 전세 대출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20대 등 3명이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해 4월 허위 임차인을 내세워 전세 계약서를 작성한 뒤 인터넷 은행에 정부 지원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을 신청해 1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무주택, 무소득 청년이면 누구나 대출을 신청할 수 있고, 인터넷 은행에선 비대면 서류 접수 등 형식적인 심사를 거쳐 대출해주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바로 이틀 전 청주에서도 지난해 2월 허위로 작성한 임대차 계약서로 은행에서 전세 대출금 1억원을 편취한 20대 브로커가 구속됐다. 또 다른 브로커와 이들에 속아 범행에 가담한 무주택 청년은 주택 소유자를 상대로 허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이들 또한 비대면 서류 접수 등의 과정만으로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청년 전용 전세대출은 만 34세 이하 사회 초년생 등을 대상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하고 국내 금융기관에서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다른 상품들보다 대출 금리 또한 낮다.

경찰 관계자는 “허위 전세 계약을 통한 정부 지원 대출 사기는 단순히 가담만 해도 범죄 공범으로 입건될 뿐 아니라 대출금을 변제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HF 등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제도 개선 건의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주리 기자 rainbow@sedaily.com 김주리 기자 rainbow@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