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 ⑥ "감춰진 보석같은 곳"…김꽃비 문화기획자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따라 강남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보내온 시간이 힘을 발휘한다고 믿어요."
광주에서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는 김꽃비(33) 씨는 15일 '지방 살이'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광주와 전남에서 나고 자라며 뿌리를 내린 김씨지만 문화 기획자의 꿈을 키우던 대학생 시절엔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에서 관련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환 학생으로 서울과 부산에 살며 새롭게 접한 문화, 새로운 자원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경험들은 오히려 그의 시선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놓았다.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제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환 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김씨가 지역 문화 자원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대학 졸업을 앞뒀을 무렵, 광주 근대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남구 양림동에서 추진된 문화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찾아왔다.
커피 애호가인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의 호를 본뜬 '다형 다방'의 관리를 맡았는데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 문화 공간이 마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실험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전시하고 싶다는 분들, 공연하고 싶다는 분들, 사랑방처럼 오가며 쉬어가는 주민들이 이 공간을 채워주셨다"며 "이런 문화 공간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나 시도들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의미도 있었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쥬스컴퍼니'에 입사해 문화기획자로 길을 걷게 된 그는 9년간의 활동 중 '1930 양림쌀롱'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았다.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그 시대 인물과 문화, 광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마을 축제였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는 그의 엄살 속에는 그만큼 치열했던 당시의 고민과 노력이 묻어나왔다.
기획자로서 '콘텐츠를 어떻게 잘 만들까'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이 축제가 마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지속 가능한 것인지'라는 부분까지 고민하는 프로젝트였다고 했다.
그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모으고, 되도록 마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며 "지역 생태계에 대해 더 생각하는 기획자로 성장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에 산다는 게 늘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대형 문화기획을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회사에서 전문적인 역할을 해볼 수 있다면 기획자로서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새로운 상상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큰 조직을 택하느냐, 아니면 지역에서 나의 일을 찾느냐 하는 진로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는 김씨지만 '지방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그는 "지금까지 소외받던 것들이 이제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역은 이제 여기(광주전남)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며 "(문화기획자에겐) 감춰진 보석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로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며 "의외로 지역에 굉장히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고, 더 생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회와 가능성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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