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물이 있다?... 물과 술 이야기 ⑤[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3. 4. 15. 07: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위스키 위스키와 브랜디는 증류주, 즉 스피릿(spirit)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독주이다. 각각 맥주와 포도주의 알코올 농도를 높인 액기스라고 보면 된다. 게티이미지

맥주와 포도주에 이어 지난번에 증류주, ‘스피릿(spirit)’에 대해 알아보면서 우선 주니퍼 열매로 만든 진과 폴란드·러시아산 보드카를 공부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위스키, 테킬라, 압생트, 럼, 브랜디 같은 다양한 증류주를 차례로 살펴봅시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세계적 술이지요. 스카치(Scotch) 위스키와 아이리쉬(Irish) 위스키가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됐지만 미국의 버번(bourbon), 캐나다의 커내디언(Canadian) 위스키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훌륭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산토리도 세계 위스키 대회에서 상을 받은 상급품 위스키를 제조하는 솜씨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위스키는 게일(옛 아일랜드) 언어로 ‘생명의 물’을 뜻하는 ‘우스게 바하(uisge beatha)’란 말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게 통설입니다. 12세기 수도승들에 의해 처음 제조돼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수출됐다는 겁니다.

맥주의 원료인 맥아를 발효시켜 여러 차례 증류시킨 후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는 방법을 씁니다. 미국은 주재료 옥수수와 밀, 호밀을 배합한 주정(酒精)을 사용하죠. 바로 이 주정의 차이가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의 차이를 만듭니다.

몰트(malt)는 맥아를 의미하는 단어로, 싱글 몰트 위스키는 단일 증류소의 원액만을 사용해 만든 위스키입니다. 물,보리,효모의 3개 재료만 써서 가장 순수한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맥아를 건조시킬 때 이탄(泥炭,peat)과 해탄(海炭,cokes)을 태워 그 열과 연기가 배어들므로 특유의 석탄 냄새 같은 향(smokey)이 납니다.

그레인 위스키는 옥수수·밀·호밀 등 다른 곡물을 주정으로 써서 만든 위스키입니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마스터가 적정 비율로 섞은 혼합(blended) 위스키가 스카치 위스키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가격을 낮추고 맛도 복잡하게 만들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하네요.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야 위스키란 명칭을 달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연중 저온의 자연 환경 덕분에 숙성 과정에서 자연 건조로 증발돼 사라지는 ‘천사의 몫(angel’s share)’이 가장 적어 유리하다고 합니다.

얼굴합성 뉴트리노 생활과학 컷

테킬라는 아가베(용설란)를 주원료로 한 멕시코의 전통 증류주입니다. 테킬라는 멕시코의 대도시 과달라하라 북서쪽 마을 이름이라고 하네요.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미에 들이닥치기 전부터 전통적인 아가베 술이 있었으며, 이를 증류해 현대식 스피릿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테킬라는 화끈한 정열의 술로 알려져 숙취로 악명이 높죠. 하지만 과음에 고통이 따르는 것은 모든 술이 마찬가지이니 누명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위스키나 브랜디에 비해 저급한 술로 인식된 것은 제국주의 시절의 편견이라 하겠습니다. 테킬라의 사촌 격인 메즈칼은 같은 용설란 술이지만 좀 더 향토색이 짙은 스피릿입니다. 가끔 병 속에서 발견되는 벌레는 아가베에 기생하는 바구미 또는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그냥 눈에 띠기 위해 마케팅용으로 넣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특별히 해롭진 않지만 이로 인해 메즈칼이나 테킬라 음주를 꺼리는 이도 많죠. 현대 테킬라 위원회는 애벌레, 전갈 등을 병입(甁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브랜디 브랜디는 포도와 여러가지 과일을 재료로 써서 만든 스피릿이다. 곡물을 증류한 위스키와 더불어 브랜디는 과일 증류주로 종류가 다양하다. 게티이미지

압생트는 프랑스인들이 ‘초록 요정’이라고 부르는 유럽산 증류주입니다. 약쑥의 라틴어 학명(學名)인 아르테미시아 앱신튬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우리에겐 별로 익숙지 않지만 고호, 랭보 등 화가와 작가들이 즐겨 마시던 독주라고 합니다. 알코올 함량이 무려 70%에 달하는 데다 주재료인 쑥의 쌉싸름한 향기 때문에 접근하긴 좀 어려운 주종입니다. 압생트는 약쑥, 영어로 그랜드 웜우드로 불리는 약초가 향정신성 화합물 ‘튜존’을 함유하고 있어 예술적 영감과 창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통념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너무 독해 범죄 등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는 비판으로 인해 한동안 금주령의 철퇴를 맞기도 했습니다. 럼은 쿠바 등 카리브해 섬나라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래한 스피릿입니다. 사탕수수의 당밀이나 즙을 주원료로 해 달콤하지만 도수 높은 독주입니다. 해군과 해적 등 선원들의 술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럼은 오크통에 담겨 숙성되는 기간에 따라 화이트에서 골든으로 가는 백색, 황색의 시기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포도와 다른 과일을 증류한 브랜디를 알아봅시다. 네덜란드어 ‘불에 태운 와인(브란데바인)’에서 명칭이 유래한 데서 알 수 있듯, 와인을 배로 교역할 때 양을 줄이기 위해 증류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프랑스 브랜디의 지존 코냑과 아르마냑은 특정 지역의 이름입니다. 샴페인이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스파클링 와인만 따로 부르는 명칭인 것처럼요. 그 생산지의 토양과 기후, 포도나무 같은 종합적 지력(地力)을 일컫는 ‘테루아(terroir)’가 바로 차별의 포인트입니다. 이들 말고도 노르망디 지방의 칼바도스 같은 사과 주정 브랜디, 독일의 체리 브랜디 키르쉬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수 지역에서만 선호되는 전통 스피릿도 있습니다. 중국의 백주(白酒)나 일본의 쇼츄(燒酒)는 그 나라에서 사랑받는 술입니다. 한국인의 소주도 한류 붐을 타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점점 보급되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노르웨이에는 감자와 밀, 호밀 등을 재료로 한 아쿠아비트가 있죠. 효모가 발효시킨 천연 술의 알코올을 강화한 스피릿은 천사와 악마의 양면을 갖고 있습니다. 약주든 독주든 약이 될 만큼 활용하는 게 지혜겠지요.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 혹은 가장 무서운 물, 술 이야기를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했습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뉴트리노 블로그 https://blog.naver.com/neutrino2020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