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⑲'개천에서 용난다'던 사시, 왜 폐지됐나…부활론 꿈틀

황두현 기자 2023. 4.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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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통한 양성 전환, 직업선택 자유 침해 안해"…사시 폐지 합헌
"법조인 양성 우회로 필요" vs "합격자 늘려 문제 해결해야" 의견 팽팽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 소속 회원들이 2019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변호사시험 합격률 증가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9.2.1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사법시험(사시)은 한국 사회 대표적인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꼽혔다. 단 한 차례 시험 합격만으로 일평생 부와 명예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모두 46명으로 단일 직업군 중 가장 많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부작용도 있었다. 가늘고 좁은 '사시 패스'라는 사다리에 올라타려다 번번이 불합격해 취업 시기마저 놓치는 '고시 낭인'을 낳았다. 합격자가 응시인원의 2%대에 불과해 법률 전문가를 선발한다기보다 탈락자를 추려내는 시험이란 비판도 있었다.

정부와 국회는 사법개혁의 하나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을 추진하며 사시 폐지를 공식화했다. 2009년 1000명이던 시험 합격자는 2016년 100명까지 줄었고 2017년 폐지됐다.

'다양하고 전문화된 전문가 양성'이라는 취지에 따라 로스쿨 도입 후 10여년간 1만7000여명의 법조인이 배출됐다. 해방 후 사시에 합격한 법조인에 버금가는 수다. 그만큼 법률서비스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고 법조인의 몸값도 많이 낮아졌다. 개업을 했던 변호사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기업에 취직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반면 3년간 정규 교육 과정이 의무화되면서 공평한 기회의 문이 차단됐다는 지적도 있다. 수천만원의 학비, 매년 늘어나는 불합격자, 20대 위주의 합격자 선발이 비판의 근거로 꼽힌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 '계층 이동 사다리' 사법시험 역사 속으로…헌법재판소 '사시 폐지' 합헌

1947년 조선변호사시험에서 출발한 사법시험은 1950~1963년 고등고시 사법과라는 이름으로 16차례 치러진 뒤 1964년부터 60여년간 이어진 뒤 2017년 59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시행 초기 엄격한 절대평가제로 연간 합격자는 수십명대에 불과했다. 1980년대 문턱이 대폭 낮아지며 300명으로 정원이 늘었다. 사법시험 부작용이 부각되고 법조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2000년대 들어 합격자 수는 1000명까지 늘었다.

네자릿수 법조인을 배출하던 사법시험은 2007년 로스쿨이 도입된 이듬해 1005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시험 폐지를 앞두고 기존 준비생을 위해 단계적으로 합격자를 줄여나갔기 때문이다.

1회 변호사시험(변시)이 치러진 2012년 합격자는 1451명을 기록했으나 사시는 506명까지 줄었다. 변시는 합격자가 1500명대 유지하는 동안 사시는 303명(2013년)→202명(2014년)→106명(2016)으로 급감했다. 변시가 1600명을 넘은 2017년 사시는 55명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로스쿨 도입으로 제정된 변호사시험법은 사시 폐지에 쐐기를 박았다. 변호사법 부칙은 '사법시험 폐지는 2017년 12월31일부터 시행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석사학위 취득자 또는 취득예정자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규정해 일반인의 법조인 시험 응시 기회를 원천 차단했다.

논란이 이어지던 2012년 12월 사법시험 준비생 단체는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조인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은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사법시험 폐지' 관련 변호사시험법 위헌확인 선고를 앞두고 있다. .2017.12.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헌재 "시험 통한 선발→교육 통한 양성 전환…도입 취지 살려야"

2016년 9월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시험법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사시 존폐를 둘러싼 첨예한 사회적 대립을 보여주듯 재판관들의 의견은 5(합헌)대 4(위헌)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다수 재판관은 "법조인 양성을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하고 기존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일정 기간 응시 기회를 준 다음 단계적으로 폐지하도록 한 것은 적합하다"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로스쿨과 병행하면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면 제도 도입 취지가 훼손되고, 소수만 배출하면 사시를 존치할 이유가 없다"며 "사시가 존치하면 시험 폐지를 전제로 로스쿨에 입학했거나 입학을 준비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설명했다.

사법시험과 로스쿨을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어 병행할 수 없다는 제도라는 취지다.

헌재는 나아가 "무제한 시험 응시로 발생하는 인력 낭비와 누적 합격률 저하를 방지하려는 공익은 시험에 응시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더욱 중대하다"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조용호 재판관은 "로스쿨을 통해 양성되는 법조인이 사시를 통해 선발된 법조인보다 경쟁력 있고 우수하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고, 출신 계층·가치관의 다양성 등과 관련해선 로스쿨이 사시를 따라오지 못하므로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또 "로스쿨은 필연적으로 고비용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어 특별전형이나 장학금제도만으로는 고액의 등록금을 해결하기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성·김창종·안창호 재판관은 "사법시험과 로스쿨은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어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며 "두 제도가 장점을 살려 서로 경쟁하고 문제점을 보완하게 하는 것이 국민 권익 신장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

◇ '사시 부활 논쟁' 현재 진행형…변호사 예비시험 도입 주장도

사법시험이 완전 폐지된 지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사시 부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9대,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사시 재도입 취지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지난해 발의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은 '변호사예비시험'을 신설해 이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자는 내용이다.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시험 자격을 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에 따른 대안이다.

사시 부활론은 정치권에서도 힘을 받고 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약으로 제시했고, 지난달 당선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사법시험 도입 재추진 의지를 천명했다. 당연히 논란은 더 가열되는 모양새다.

지난 3월에는 로스쿨 3곳 중 2곳이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제도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가 2017학년도부터 5년간 25개 로스쿨을 평가해보니 19곳이 조건부 인증 또는 한시적 불인증 평가를 받았다.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 회원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시험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17.10.1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법조인 양성 우회로 필요" vs "합격자 수 증원해 문제 해결"

사법시험 도입을 주장하는 진영은 기회의 불평등과 미흡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운영 실태를 지적한다. 반면 로스쿨 쪽은 정원 확대를 통해 해소될 문제이며, 두 제도를 병행할 시 부작용이 더 크다고 반박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나승철 변호사(46·사법연수원 35기)는 "법조인이 되는 우회로가 있어야 한다"며 "변호사예비시험은 하나의 방법"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로스쿨을 갈 여력이 없는 이에게도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줘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 연평균 등록금은 1425만원으로 집계됐다. 3년간 등록금으로만 4200만원 넘게 필요한 셈이다. 배 의원은 당 "2021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의 3.9개월치"라며 "일용직 근로자는 8개월 넘어 모아야 하는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나 변호사는 "사법시험을 재도입하면 로스쿨 제도가 흔들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로스쿨이 사시보다 못한 제도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로스쿨 최초 인가가 유지되면서 학교 간 경쟁이 미흡해 교육 수준도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스쿨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현재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사법시험을 재도입하는 것보다 두 제도를 병행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이상경 서울시립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는 "합격률이 2~3%대에 불과한 사법시험은 희망사다리가 아닌 희망 고문"이라며 "수많은 고시 낭인이 생겨나면서 사회적 손실 컸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변호사 예비시험이 도입되면 로스쿨 학생들이 시험을 치러 일반인의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며 "예비시험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도입된 만큼 로스쿨 학생의 응시를 막을 방법도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제도의 발전·보완을 위해서는 변호사시험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합격자가 늘면 시험에 5년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제도로 생기는 '오탈자'(변호사시험 5번 탈락)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원적 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모두 망가지는 길"이라며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늘려 공공과 민간의 영역에서 법치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aus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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