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돈의 힘이 또 승리”…여자프로테니스, ‘펑솨이 논란’ 중국 유턴

조성원 2023. 4.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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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솨이는 2014년 여자 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중국을 대표하는 테니스 스타다. (사진: 연합뉴스)


"여자프로테니스(WTA)의 중국 유턴으로 펑솨이에 대한 테니스계의 지지가 덧없이 사라졌다"
WTA가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의 안전 확인이 우선이라던 기존 입장을 뒤엎고 중국 투어 대회를 재개하기로 하자 영국 일간 가디언이 실은 기사의 제목입니다. 실망감이 드러납니다.

■ 여자프로테니스, '펑솨이 논란' 해소되지 않았지만 중국 대회 재개 결정

WTA는 오는 9월부터 중국 투어 대회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2021년 말 시작한 중국 투어 대회 보이콧이 끝난 것입니다. 지난해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변수로까지 거론되던 펑솨이 파문에서 WTA가 슬그머니 발을 뺐습니다.

여자프로테니스(WTA)가 13일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중국 투어 대회 보류 조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사진: WTA 홈페이지)


WTA는 현지 시각 13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2021년 펑솨이가 용기있게 나선 뒤 그녀는 물론 다른 선수들과 스태프의 안전을 우려해 중국 내 행사 운영을 중단했지만 펑솨이와 관련한 상황이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목표(펑솨이 안전 확인과 확보)를 완전히 이루기 어렵고,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선수들과 대회가 감당할 피해가 너무 크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다만 펑솨이의 지인들과 연락한 결과 그녀가 가족과 베이징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확신했고, WTA 선수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데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성명을 통해 WTA가 결국 펑솨이와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펑솨이는 지난해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스키 경기장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정작 WTA 관계자와 만나지는 않은 것입니다.

■ '펑솨이 논란'에 스포츠계 등 국제 사회 '들썩'

이른바 펑솨이 사태는 2021년 11월 펑솨이가 중국 SNS 웨이보에 장가오리 전 중국 부총리와의 과거 관계를 폭로하는 글을 올리며 촉발됐습니다. 해당 글은 20분 만에 삭제됐지만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습니다. 베일에 싸인 중국 권력자와 세계적 스포츠 스타 사이에 불미스런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글의 내용도 문제지만, 글을 쓴 당사자의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입니다. 실종설마저 돌았습니다. 중국 매체들이 사안을 전혀 다루지 않아 의혹은 더 커졌습니다. 세계 테니스계는 물론 유엔 인권사무소까지 나서 성폭행설 등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습니다.

파장이 확산돼 이듬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듯하자 중국 매체 대신 매체 관계자들이 개인 SNS로 펑솨이의 동정이 담긴 동영상을 흘렸습니다. '중국 특색' 대응이란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IOC도 나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펑솨이 실종설이 국제적 문제로 부상하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에까지 영향을 미칠 기미를 보이자 2021년 11월 IOC가 나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사진: IOC 홈페이지)


지난해 2월에는 실종설 석달 만에 펑솨이가 프랑스 신문 '레퀴프'와 인터뷰를 하며 처음으로 매체 앞에 나섰습니다. 자신을 염려해준 전 세계 스포츠계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글을 왜곡하거나 부풀리지 말라고 불만스런 목소리도 냈습니다.

펑솨이와 취재진 사이 사전 조율을 거쳤던 당시 인터뷰는 장가오리의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을 정도로 제약이 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터뷰를 실은 레퀴프의 편집장은 실제 펑솨이의 말과 행동에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행간을 읽어야 진실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펑솨이 인터뷰가 1면에 실린 프랑스 신문 레퀴프를 파리 시민이 읽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 WTA가 '중국 대회 보류'를 번복한 이유는?

의혹이 속시원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WTA가 '중국 대회 보류'라는 강경 카드를 접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WTA의 중국 투어 재개 결정에 대해 '중국 대회 보류 당시에는 WTA가 잃을 것이 없었다', '중국 회귀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는 뒷말들이 나옵니다.

중국 대회 보류를 발표할 때는 중국의 강도 높은 코로나19 방역 지침 때문에 어차피 중국에서 투어 대회를 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들어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되고 중국에서도 대회를 열 수 있는 여건이 되자 WTA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지난해 1월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경기장에서 관중 2명이 “펑솨이는 어디에 있나”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 테니스 시장 자체가 놓치기에는 너무 큽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시즌 당시 중국에서 9개의 WTA 투어 대회가 열렸습니다. 상금 총액 규모가 3천만 달러(약 390억 원)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WTA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보니 코로나19 기간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2020년 영업 손실이 1,650만 달러(약 214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상대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낮은 남자프로테니스(ATP)가 2020년 1,600만 달러(약 208억 원) 흑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위권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줄어드는 등 여자 테니스계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가디언은 WTA가 원칙적 접근을 버리면서 돈의 힘이 다시 승리했다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테니스계의 현실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도 이상하지 만은 않습니다.

■ "돈의 힘이 다시 승리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 대관식'으로 주목받은 지난해 10월 중국 당 대회 폐막식 때 후진타오 전 주석이 자의에 반하는 모습으로 자리를 떠나며 '신스틸러'로 떠올랐습니다. 불만에 가득찬 듯 계속 팔짱을 끼고 있던 후춘화 당시 부총리에게도 눈길이 갔습니다. 굳은 표정의 리커창 당시 총리와 함께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정치적 퇴조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현장 기자로서 이들 못지 않게 주목한 또 한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가오리 전 부총리입니다. 물론 펑솨이 논란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당 대회 폐막식에서 단상 1열에 앉아 있는 장가오리 전 부총리(1열 오른쪽에서 세번째).(사진: 조성원 기자)


그는 역대 공산당 지도부를 위한 단상 1열의 일원으로 의연하게 앉아있었습니다. 1년 가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만 보면 아무 일 없는 듯했습니다. 그동안 장가오리 전 부총리가 펑솨이 논란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논란이 더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입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WTA의 중국 대회 재개에 대해 "외교 문제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스포츠의 정치화에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말해 논란 자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WTA가 중국 대회 재개를 발표한 성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펑솨이는 잊혀질 수 없습니다...(중략)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그 목소리가 반드시 들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WTA는 계속 펑솨이와 전 세계 여성 발전의 지원자가 되겠습니다."

중국 대회 재개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WTA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합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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