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새장에는 문이 없다'…알리바바 손 뗀 손정의

정용환 기자 2023. 4. 1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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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억달러 알리바바 지분 매각
9년간 지분 34%→3.8% 축소

中당국 빅테크 군기잡기 후유증
민간기업 통제 '새장경제'의 본질
[사진= AP,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지분을 대량 매각했다고 합니다.

대량 매각!

증시에서 특정 주식의 대량 매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호입니다. 어떤 신호일까요.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함께 보시죠.

[사진= AP, 연합뉴스]
소프트뱅크는 올해 들어 '선불 선도계약(포워드 세일)'을 통해 72억달러(약 9조 3420억원) 규모의 알리바바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이제 소프트뱅크가 보유 중인 지분은 3.8%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8월에도 알리바바 지분을 23.7%에서 14.6%로 축소해 340억달러(약 44조 5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2014년 뉴욕 증시에 상장할 때(34%)와 비교해보면 정말 뚜렷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지분 축소입니다.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번 계약은 거의 바겐세일급 입니다. 금융정보업체 워싱턴서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최근 14개월간 매도한 알리바바 주식의 평균 매각 금액은 주당 92달러라고 합니다. 2020년 10월 기록한 317달러에 비해 70%가 깎인 가격입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8월 9.1%의 지분 매각으로 340억 달러를 확보한 반면 이번엔 10.8%를 매각하고도 72억 달러를 받는데 그쳤으니 얼마나 이익 축소를 감수하고 매도에 나섰는지 가늠이 됩니다.

코로나 빗장 풀렸는데…발 빼는 손정의

손정의는 알리바바 창업 초기인 2000년 이 회사에 2000만달러(약 262억원)를 투자한 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하자 기업가치가 3700배 이상 뛰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9년이 흐른 지금 34%→3.8%으로 손정의는 10분의 9의 지분을 정리해버렸습니다.

손정의의 비즈니스 안목이 예전만 못하다 하더라도 수축과 팽창, 들어가고 나가는 결단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의미심장합니다.

손정의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이쯤되면 손절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를 일인데요. 중국 시장이 코로나로 3년 간 걸어 잠궜던 빗장을 풀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알리바바의 지분을 대량 할인 세일 한다는 것은 더 기대할 게 없다는 결별 사인으로 읽힙니다.

손정의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무슨 신호를 포착한 걸까요. 오늘 칼럼에선 그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사진= 바이두백과 캡처]
디디추싱(차량 공유 서비스)ㆍ텐센트(게임과 SNS)ㆍ알리바바(핀테크와 전자상거래)ㆍ신동팡교육(온라인교육)….

중국이 인터넷+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육성했던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입니다. 경쟁 극심한 중국 시장을 장악한 스타 기업들이죠. 2021년 규제 당국의 군기 잡기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증시에서 바닥 모를 폭락을 경험했었죠. 이른바 세계 2위의 경제권이라는 나라에서 공산당 규제 리스크가 엄습하면서 곤두박질쳤습니다.

인터넷플랫폼 규제 사태의 저변에 깔린 '규제리스크', '공산당리스크'라는 말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궁극적 진면목이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통신ㆍ기기 혁명을 통해 천문학적인 규모와 화려한 성과 등으로 포장됐지만 나누고 나누는 인수분해의 끝은 '새장경제'입니다.

새장은 당ㆍ국가의 사회주의적 통제를 상징합니다. 새는 경제 특히 민영 사이드의 경제를 일컫습니다. 새장경제는 사회주의적 경제 통제의 완급과 강약을 둘러싸고 다양한 변주를 거듭했습니다.

[사진= 차이나데일리 캡처]
경제는 체제 안정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관리우선주의자들의 목소리가 클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경제의 활력을 통해 파이를 키워나가자는 성장주의자들이 득세할 때도 있었습니다. 새장의 크기를 제한하지 말고 크게 만들어 새가 마음껏 날게 하자는 시장주의자들이었습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새장경제론입니다.

30년간 고도성장을 달리던 세계의 공장 시대를 구가하면서 기억에서 희미해졌던 새장경제는 2010년대 다시 등장합니다.

앞서 1997년 IMF 사태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중국은 인프라 투자와 자재를 만들어내느라 전 세계 철강ㆍ시멘트ㆍ석탄ㆍ구리 등을 빨아들였습니다. 시장에 활기가 돌았지만, 과도한 투자에 의존한 성장은 공급과잉이라는 부메랑을 맞았습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이끄는 당ㆍ정부는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측 구조개혁'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때 새와 새장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른바 '등롱환조 봉황열반(騰籠換鳥 鳳凰涅槃)'입니다.

새장을 들어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 그리고 봉황으로 등극하자는 봉황열반입니다.

요지는 건설ㆍ철강ㆍ화학 위주의 구경제를 신경제로 바꾼다는 것이었죠. 일종의 산업 구조조정입니다. 낡은 산업 분야를 혁신 산업으로 바꾸고 구조조정하는 리모델링인 거죠. 이 정책으로 굴뚝 산업이 쓸려갔고 저임금 노동집약 산업이 기술집약 또는 자본집약 산업으로 대체됐습니다.

[사진= 바이두백과 캡처]
대표적인 지역이 선전과 상하이 일대였습니다. 저임금 임가공과 조립 공장이 난립했던 두 산업지대는 첨단 산업 단지로 도약했습니다. 내륙 출신 농민공들이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중국 전역의 이공계 대학 출신들이 채웠습니다. 젊은 피로 수혈했으니 도시 활력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겠죠.

이런 인적 구성을 바탕으로 인터넷 서비스업이 빠르게 생태계를 만들어갔습니다. 아이디어와 열정,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모델의 발 빠른 토착화 노력에 당국의 삼엄한 시장 보호 기류가 화학결합을 일으켰습니다. 구글 등이 기를 못 펴게 시장에 울타리를 치고 보호하자 중국의 인터넷 플랫폼 산업이 폭풍 성장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 복제한 中인터넷 경제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비즈니스 문화도 함께 꽃 피웁니다. 들고 나는 판단이 빠르다보니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순발력 있게 회사를 옮깁니다. 노동 시장이 유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도 유연하고 자유롭습니다. 빨라야 하니깐요. 이 바닥에선 그게 비즈니스의 생명력을 보전하는 안전장치였습니다.

[사진= 바이두백과 캡처]
인터넷 플랫폼 업계처럼 정보 공유도 빠르고 트렌드 부침도 심한 비즈니스 모델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품기엔 너무 커버렸습니다. 자유롭고 유연한 생태계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이냐, (정권)안정이냐. 균형점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중국 경제로선 축복이자 '신박한' 경사였습니다. 중국에서 체급을 키운 플랫폼 기업이 막강한 자금력과 인재풀, 다양한 노하우를 앞세워 파고들면 우리 시장은 방어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알리바바의 공세 앞에서 쿠팡과 네이버 전자상거래의 미래는 쉽게 점치기 어려운 일이죠. 텐센트나 바이두의 클라우드 컴퓨팅 비즈니스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처지도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美증시 상장 성공한 기업에 급브레이크

중국과 가장 인접한 우리 경제로선 공습 경보가 울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런데 급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공동부유를 내세워 글로벌 플레이어 예비 후보들을 당국이 불러 세워 소위 '줄빳다'를 때렸던 거죠. 해외 증시엔 신규 IPO도 못하게 막았으니 자금력을 앞세워 해외시장 진출을 구상했던 기업들은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사진= 바이두백과 캡처]
중국 당국은 이 섹터가 너무 나갔다고 보았습니다. 독과점을 수술대에 올렸고 케이맨 군도 같은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놓고 미 증시 우회 상장으로 이른바 '꿀을 빠는' 그런 지배구조도 갈아엎었습니다. 알리바바엔 황금주 같은 걸 도입해 당의 입김을 강화했습니다.

황금주는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임원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입니다. 중국에서는 '특수관리주'로 불립니다. 중국 국유기업들이 황금주 자금을 댑니다.

새장경제론 "새장보다 큰 새는 용납 못한다"

새장보다 커버린 새는 용납 못 하는 중국 경제 특유의 생리 구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손정의는 2020년 마윈이 소프트뱅크 이사회에서 물러나자 알리바바 이사직에서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알리바바 지분을 거의 정리해버렸습니다. 손절의 모양새입니다. 3년의 시간, 그동안 손정의는 무엇을 본 걸까요.

'새장보다 더 큰 새는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질에 닿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손회장의 180도 방향 전환을 보면서 '새장에는 아예 문이 없다'고 판단하고 행동한 건 아니었는지, 그 깊은 속내는 시간이 흘러보면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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