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韓中 수교 시점은…" MB 함께한 정주영의 방중길

김지훈 기자 2023. 4. 15. 06:2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91년 7월 당시 민간 사절단인 '현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대표단 일원이던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17대 대통령)이 현지에서 중국 측과 나눈 한중 수교 관련 비공개 대화 기록이 14일 발견됐다.

1991년 7월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에 민간 사절단인 '현대 대표단'을 이끌고 도착한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대표단 일원이던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17대 대통령)이 중국 측과 한중 수교 진전을 위해 나눈 비밀 대화록이 14일 발견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he300]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머니투데이DB

1991년 7월 당시 민간 사절단인 '현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대표단 일원이던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17대 대통령)이 현지에서 중국 측과 나눈 한중 수교 관련 비공개 대화 기록이 14일 발견됐다. 정 회장은 당시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과 수교가 예상되는 시점이 '늦어도 1992년 3월'이라는 중국 측 전망을 우리 외교부에 알렸다. 한중 양국은 1992년 8월 국교를 맺고 상대국에 대사를 파견했는데 정 회장의 '귀띔'이 사실상 근사치였던 셈이다.

이 회장은 중국 경제부처들이 한중 수교를 위한 집단 건의서를 작성할 계획이라는 동향을 중국 측 인사로부터 '귓속말'로 전해 듣고 외교부에 전달했다. 재계가 한중 수교의 막후에서 양국 정부 간 가교 역할을 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전=뉴스1) 김기태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해수호의 날을 앞두고 22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하고 있다. 이날 참배는 이 전 대통령과 함께 류우익 전 대통령 실장, 정정길 전 대통령 실장, 이재오 전 특임장관,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이명박 정부 인사 24명이 함께했다. 2023.3.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료=외교부

1991년 7월 미수교 상태였던 중국에 민간 사절단인 '현대 대표단'을 이끌고 도착한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대표단 일원이던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17대 대통령)이 중국 측과 한중 수교 진전을 위해 나눈 비밀 대화록이 14일 발견됐다. 정 회장은 한중 수교 시점은 '늦어도 1992년 3월'이라는 중국 측 전망을 우리 외교부에 알렸다. 한중 양국은 1992년 8월 국교를 맺고 상대국에 대사를 파견했는데 정 회장이 사실상 근사치를 제시했던 셈이다.

이 회장은 중국 경제부처들이 한중 수교를 위한 집단 건의서를 작성할 것이라는 동향을 중국 측 인사로부터 '귓속말'로 전해 듣고 외교부에 전달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 열린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5.11.24/뉴스1

외교부의 30년 경과 비밀해제 문건에 실린 기록들이다. 1991년7월 당시 노재원 중국 베이징주재 무역 대표부 대표(훗날 초대 주중 한국대사)가 외무부(현 외교부)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노 대표는 방중한 정 회장 등과 함께 중국 항공항천부, 중국 국제상회 측 인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해당 회동(7월23일) 전 노 대표가 정 회장과 독대할 때 중국 측 전망이라는 '1991년 3월 수교설'을 들었다.

노 대표는 "정 회장은 자신과 접촉한 중국 측 인사의 말이라고 하면서 한중 국교 수립이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실현될 것을 본다고 말하였음"이라고 썼다.

1991년 7월24일 정 회장은 톈지윈 중국 부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적극적 투자 요청을 받고 수교 전 대규모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톈 부총리에게 "대규모 투자 의향은 있으나 미수교 상태에선 투자 보장 등 협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중국의 정책이 변하면 국가가 기업의 투자를 보호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는 수교 이전 불가하다"고 했다.

/자료=외교부

당시 정 회장은 한중이 수교하면 타당성 조사를 거쳐 10억달러 규모 대형 투자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와 회동에서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 남북한을 동일하게 대우해 달라"고 중국 측에 요청했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년9월)을 앞둔 시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의 동맹인 중국의 반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 회장은 중국 건설부 부부장과 면담 과정에서 전해들은 중국 경제 관련 부처들의 한중 수교 기반 작업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노 대표는 "이명박 회장에 의하면 정회장이 건설부 부부장 일행과 면담 과정에서 그중 한 사람이 이 회장에게 귓속말로 중국 경제부처들이 합동으로 한 중 경제관계의 촉진과 심화를 위해 국교수립이 시급한 과제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상부에 제출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고 말하였다 함"이라고 본국에 보고 했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