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태양전지의 미래 ‘페로브스카이트’ 어디까지 왔나
열·수분에 취약… 안정성 해결해야 상용화
한국 기술력 세계 최고 수준… 정부 지원 따라야 시장 선점 가능
태양전지(Solar Cell)는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입니다. 비교적 최근에야 주목을 받다보니 나온 지 얼마 안 된 기술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태양전지의 역사는 거의 20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양전지의 기초가 되는 이론적인 현상은 광전 효과입니다. 물질이 빛을 흡수해 전자를 방출하는 걸 말하는데 이 광전 효과가 발견된 게 1839년입니다. 거의 모든 과학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아인슈타인이 이 광전 효과를 이론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되기까지는 먼 길을 돌아와야 했습니다.
태양전지가 처음 실용화된 건 1958년입니다. 미 해군이 개발한 인공위성 뱅가드1호가 태양전지 모듈을 달고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뱅가드 1호가 발사된 지 19일 후에 ‘화학전지는 고갈됐지만 태양전지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달고 기사를 냈습니다. 태양전지의 가능성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입니다.
이후 태양전지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신재생에너지를 대표하는 에너지원이 됐습니다. 발전효율이 높아지고 발전단가도 저렴해지는 개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전지의 등장입니다. 단어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도 힘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게임 체인저가 될 페로브스카이트가 무엇인지 송슬기 충남대 응용화학공학과 교수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A와 B와 X가 만나면 페로브스카이트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 광물의 구조를 말합니다.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이름은 이 광물을 처음 발견한 러시아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붙은 겁니다. 1839년에 처음 발견됐는데 광전 효과가 발견된 해와 같습니다. 의미심장하죠.
페로브스카이트의 화학식은 ABX3입니다. 여기서 A와 B는 양이온, X는 음이온을 말합니다. 양이온 두 종류가 각각 하나씩, 음이온은 세 개가 결합해 있는 셈이죠. 이런 복잡한 화학식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화학식을 이야기하는 건 페로브스카이트를 이루는 A, B, X가 특정 원소로 이뤄졌을 때 빛을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페로브스카이트가 어떤 구조일 때 빛을 흡수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전기를 통하는 능력이 좋은 지 연구를 통해 찾아내고 있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페로브스카이트를 태양전지에 광흡수물질로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겁니다.
태양전지를 세대로 구분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1세대는 실리콘 태양전지, 2세대는 박막태양전지, 그리고 마지막 3세대가 페로브스카이트 같은 유기물을 이용한 태양전지입니다. 1세대와 2세대에 비해 페로브스카이트가 가지는 강점은 가격입니다. 가성비가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실리콘 태양전지를 예로 들어볼까요. 실리콘 태양전지는 폴리실리콘과 잉곳을 용광로를 통해 녹이는 중간 과정이 필요합니다. 폴리실리콘은 암석·모래에서 규소(Si) 성분을 추출해 초순도로 가공한 것을 말하고, 잉곳은 이런 폴리실리콘을 녹여서 원기둥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쌉니다.
반면 페로브스카이트는 만드는 공정이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합니다. 송슬기 교수는 “일반 태양전지는 고효율을 얻기 위해서 단결정화, 증착 같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페로브스카이트는 값싼 전구체를 섞어주고 스크린 프린팅, 롤투롤 같은 간단한 공정만으로도 박막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리콘 전지가 딱딱하고 무거운 데 비해 페로브스카이트는 용액 상태인 것도 장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용액 상태인 페로브스카이트를 플라스틱 필름에 바르기만 하면 휘어지는 전지로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페로브스카이트의 두께는 250~30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합니다. 기존 실리콘 웨이퍼 두께가 150~20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인 것에 비하면 1000분의 1 수준인 겁니다.
◇한국 기술력 세계 최고 수준… 3년 내 상용화 전망
페로브스카이트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전지의 기술력은 효율을 누가 더 높이 끌어올리느냐로 판가름이 납니다. 고효율의 태양전지는 같은 환경에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문가들은 효율을 0.5%를 끌어올리는 것만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은 이미 실리콘 태양전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미국 재생에너지원이 발행하는 NREL 차트는 세계에 존재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공인효율을 보여줍니다. 이 차트에 있는 14개의 세계 최고 공인 효율 중 10개가 한국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입니다. 성균관대의 박남규 교수나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석상일 특훈교수 같은 석학들이 국내 페로브스카이트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반도체 박막 분야의 연구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태양전지 소자를 최적화하는 부분에서도 앞서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페로브스카이트도 단점이 있습니다. 수분이나 열에 취약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높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아직 상용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태양전지는 건물이나 자동차에 설치해놓고 외부 환경에서도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 전 세계 연구진도 페로브스카이트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첨가제를 넣는 방법도 있고, 실리콘 전지와 페로브스카이트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기업이 참여하면서 상용화를 향한 연구도 빨라지는 상황입니다. 국내에서는 한화솔루션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송 교수는 3년 안에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한국이 페로브스카이트 상용화의 과실을 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송 교수는 한국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합니다. 유럽은 2030년부터 모든 건물에 태양전지를 의무화하는 등 관련 시장을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는데, 한국은 정부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말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상용화되려면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면적화와 이를 위한 장비기술, 안정성 향상을 위한 봉지막 기술, 대면적 탠덤태양전지 기술 등의 개발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산학연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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