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의 돈을 편히 가져다 쓴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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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쯤이었나, 카카오뱅크에 합류한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은행 비즈니스가 이렇게 쉬운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증권사에서 힘들게 돈을 벌었던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카카오에 회사를 넘겨주기 싫다"고 말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혹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연계된 증권사 계좌이니 인터넷뱅킹이 안되는 계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그 책임감이 몇 곱절 더 무겁다는 것을 증권사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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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쯤이었나, 카카오뱅크에 합류한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은행 비즈니스가 이렇게 쉬운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증권사에서 힘들게 돈을 벌었던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카카오에 회사를 넘겨주기 싫다”고 말했다. 당시는 은산분리법 때문에 카카오뱅크 최대주주가 한국투자증권이었다. 쉽게 돈 버는 재미를 느껴 카카오뱅크를 넘기기 싫다는 게 본심이었다. 그때는 그럴 만했다. 2017년 7월 영업을 시작한 카카오뱅크는 불과 1년 6개월 만인 2019년 흑자 전환했다. 그리고 계속 흑자 행진 중이다. 증시 상황에 따라 실적이 급변하는 증권사 직원 입장에서는 쉽다고 느껴질 만하다.
저렴한 이자에 돈을 빌려 그보다 높은 이자에 대출을 내주는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나머지 부분)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쉽다. 증권사들은 이 사업의 ‘맛’을 살짝이나마 볼 때마다 환희에 젖곤 했다. 2011년 종금 라이선스 덕분에 예금자보호 혜택을 누리자 동양종금증권(현 유안타증권) CMA에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린 적이 있었다. 당시가 유안타증권의 ‘커리어 하이’다. 메리츠증권도 종금 라이선스가 있던 시절 CMA로 자금을 모았고, 이를 통해 부동산 PF 사업을 대거 확장할 수 있었다. 종금 라이선스가 없었다면 메리츠증권도 지금의 위상을 갖추고 있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쉬운 비즈니스는 스마트폰 시대에 생각지 못한 리스크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 뱅크런. 까딱 잘못하면 엄청난 수신고라도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질 수 있다.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경고한다.
개인적으로 토스뱅크를 비롯한 은행이나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지역농협보다 증권사가 우려스럽다. 증권사 또한 대형사는 발행어음 라이선스 덕에 사실상 수신회사가 됐다. 자기자본의 200%까지 투자자 자금을 끌어모아 여러 곳에 투자할 수 있다. 증권사는 이 돈의 약 30%를 부동산 대출에, 절반을 기업 대출에 쓰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한때 연 5%를 넘었던 저축은행 파킹통장 금리는 다시 3% 초반으로 내려갔다. 이제 증권사 발행어음 CMA가 모든 금융권을 통틀어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금리는 내리는 추세인데, 증권사들은 왜 아직도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최고 연 3.75% 이자를 지급하는 발행어음 CMA는 입출금이 쉽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혹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연계된 증권사 계좌이니 인터넷뱅킹이 안되는 계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발행어음이다 보니 예금자보호 기능이 없다. 증권사 고객들이니만큼 소문에는 빠르다. 경쟁사 프라이빗뱅커(PB)는 그 증권사는 위험하다면서 계속해서 불안을 부채질한다. 발행어음 CMA가 걱정된다는 염려는 기우일까.
최근 일부 저축은행 등을 대상으로 유동성 위기 찌라시가 돌았는데, 고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민감하지 않았다. 대부분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 밑으로만 예치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증권사는?
SVB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은 배경에는 사내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 ‘전통 뱅커’들의 입김이 적었던 것도 있다. IT기업들과 어울리는 은행이다 보니 안정성보다는 공격성에 초점을 맞춘 영업을 해왔던 것이다. 전통 뱅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항상 유동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PF의 부실을 계속 우려하는 지금, 다시 한번 뱅크데믹이 일지 않을지 염려된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그 책임감이 몇 곱절 더 무겁다는 것을 증권사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상시보다 많은 현금으로 방파제를 세워 태풍이 큰 문제 없이 지나가길 바라본다.
[안재만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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