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종교 박해·세계 대전까지 극복해 맺은 결실’ 버메스터 소토 보체 리저브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을 따라 올라가면 에우로페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온다.
에우로페는 페니키아의 공주였는데, 신 중의 신이라는 제우스가 에우로파를 그리스 크레타 섬으로 데리고 가 유럽 문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에우로페라는 그리스 이름을 라틴어로 읽으면 ‘에우로파(Europa)’고, 이를 영어식으로 읽어 ‘유럽’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내내 순탄했던 적이 드물다. 비교적 최근인 근대에 들어서도 17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한 차례도 전쟁이 그친 적이 없다. 1600년대 시작은 3차 오스만 - 합스부르크 전쟁이 열었고, 이후 30년 전쟁과 포르투갈 독립전쟁, 영란전쟁이 줄줄이 이어졌다. 18세기는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었고, 19세기부터는 크림전쟁과 보불전쟁으로 유럽 대륙이 시끄러웠다.
전쟁은 인류사에 비극이지만, 때로는 예상 밖의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일부 와인 전문가들은 포트(port) 와인 역시 전쟁의 산물로 여긴다. 포트 와인 탄생 배경에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00년이 넘게 이어진 백년 전쟁이 있다. 백년 전쟁 패배로 영국은 수백 년간 보유했던 프랑스 내 영토를 잃었다. 그중에는 와인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가 속한 가스코뉴(Gascogne) 지방도 있었다.
와인을 가져올 대체지가 필요했던 영국이 눈을 돌린 곳은 런던에서 가까운 포르투갈 북부 도시 포르투였다. 이 지역에서는 30여 종에 달하는 포르투갈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비교적 최근인 20세기까지도 큰 나무 발효조에 사람이 들어가 발로 포도를 밟아 으깨는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강을 따라 자리잡은 비탈길에 계단식으로 일군 포도밭은 낮에는 따뜻한 햇볕이 들고, 해가 진 다음에는 강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포도 열매 내실을 다지도록 도왔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포도를 수작업으로 만든들, 영국까지 실어 나르는 방법이 문제였다. 포르투에서 런던까지 거리는 2000킬로미터(km)가 넘는다. 지금 내륙으로 이동을 해도 만 하루가 넘게 걸리는 고된 길이다.
항로를 이용해야 했던 1500년대 무렵에는 이보다 최소 10배 이상 긴 시간이 걸렸다. 반면 프랑스 보르도에서 런던은 파리에서 도버해협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다.
1500년대 영국인들에게는 긴 항해를 버틸 만큼 안정적인 저온 보관 기술이 없었다. 더운 포르투 지방에서 배에 실은 와인들은 영국에서 뚜껑을 열면 곧잘 식초로 변질돼 버렸다. 영국인들은 대안을 찾은 시기는 200여년이 지난 17세기 무렵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변질을 막기 위해 주정강화(fortified)라는 해법을 찾아냈다. 포도를 으깨고 발효한 다음, 숙성시켜 만드는 일련의 와인 양조 과정 사이에 도수 높은 증류주 브랜디를 섞으면 와인 속에서 활동하던 효모는 발효를 멈추고 사라진다.
이렇게 만들면 평범한 레드 와인도 독한 브랜디와 섞여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지만, 오랜 항해와 험한 뱃길에도 버틸 수 있는 와인으로 성격이 바뀐다.
버메스터(Burmester)는 1730년 설립한 이후 300년 가까이 포트 와인을 만들어 온 브랜드다. 버메스터라는 이름은 독일에서 마을 이장을 가리키는 부르고메스트레(Burgomestre)에서 나왔다. 이름처럼 버메스터 가문은 내내 독일에서 살았지만, 15세기 종교 박해를 피해 독일 북부 묄른을 떠나 영국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영국 런던에서도 버메스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인 테니스 그랜드슬램 대회가 열리는 윔블던 올 잉글랜드 클럽 인근에서 한블록만 더 가면 이들의 이름을 딴 버메스터 로드가 나온다.
17세기 중반부터 이들은 영국에서 번 돈을 기반으로 포르투에 와인 저장고를 차리고 버메스터라는 이름으로 포트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을 덮친 전쟁 포화는 이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려 하면 번번히 전쟁에 휩싸였다. 1700년대 초반에는 영국 스페인 전쟁이, 1700년대 후반에는 영국이 개입한 미국 독립 전쟁이, 1790년부터는 프랑스 혁명 전쟁이 벌어졌다.
19세기 시작은 내내 나폴레옹 전쟁으로 점철됐고,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이 사그러들 기세를 보이자 마자 영국과 미국은 재차 영미전쟁에 돌입했다. 이 시기 포르투의 여러 와이너리들은 문을 닫았다. 다만 버메스터는 믿을 만한 포르투갈 현지 명(名) 생산자들 손에 회사를 맡겨놓고 어떻게든 브랜드를 이어갔다.
1834년 유럽 대륙이 잠시 전쟁에서 벗어나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당시 24살이었던 버메스터가의 요한 빌헬름 버메스터는 주거지를 다시 포르투로 옮기면서 무너졌던 포트 와인 브랜드를 다시 살리기 시작했다. 그는 1885년 임종 전까지 50년이 넘도록 회사 경영에 참가하면서 버메스터를 포트 와인 명가로 발돋움 시켰다.
그러나 버메스터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1914년 유럽 전역을 뒤흔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버메스터’라는 이름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포르투갈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제국 편에 서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교전햇다.
포르투갈 정부는 버메스터가 독일 명문가라는 점을 들어 포르투에 세운 버메스터 포트 와인 회사 역시 독일 회사라고 판단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당시 주인이었던 구스타브 버메스터에게 모든 포트 와인 관련 자산을 포기하고 24시간 안에 포르투갈을 떠나라고 다그쳤다.
이후 버메스터 경영권은 여러 사람 손을 거쳐갔다. 구스타브 버메스터는 절친한 포르투갈 친구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전쟁이 끝난 후 이 경영권을 구스타브의 친척 칼 길버트가 찾아 왔다. 이후 20세기 말 코르크 전문 제조기업 아모림그룹이 버메스터를 사들였다가, 2005년 다시 현 소유주 소제비너스(SOGEVINUS)로 버메스터를 매각했다.
소제비너스는 현재 칼렘(Calem), 바로스(Barros), 콥케(Kopke), 피스트(Feist), 허치슨(Hutchison) 같은 유명 포트와인 하우스를 대거 보유한 기업으로 주요 지분을 스페인 대형 은행 카익사노바(CAIXANOVA)가 가지고 있다.
카익사노바 대주주가 베네수엘라 은행 바네스코(BANESCO)인 점을 감안하면, 독일 명문가가 시작한 버메스터는 지금 베네수엘라 은행 재벌 후안 카를로스 에스코테의 소유인 셈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도 버메스터는 여전히 여러 포트와인 브랜드 중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보통 포트와인은 오래도록 숙성해야 제 맛이 난다고 알려졌지만, 버메스터는 포트와인 중에서도 20년 이하로 숙성한 브랜드들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포트와인 전문가 크리스찬 골릭은 “보통 여러 포트와인 브랜드가 특정 해에 수확한 포도로만 만드는 빈티지 포트에 집중하지만, 버메스터는 병에 넣은 지 얼마 안 되는 제품들이 가격 대비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버메스터가 자랑하는 ‘소토 보체 리저브 루비 포트’는 첼로를 사랑했던 버메스터의 딸을 위한 헌정 포트와인이다. 소토 보체(sotto voce)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목소리’를 뜻한다.
딸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이 와인은 편암과 사암, 화강암이 섞인 토양에서 자란 포도나무에서 딴 열매를 이용해 유난히 풍성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주정강화 와인 부문 최고의 와인에 주어지는 ‘베스트 오브 2023′을 받았다. 수입사는 비케이트레이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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