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문어는 빨판으로 먹이 맛 본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4.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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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피부의 지방 물질 닿으면 먹이로 파악
매복 사냥하는 오징어는 물에 녹는 쓴맛 감지
캘리포니아 두점박이문어가 농게를 사냥하는 모습. 문어는 팔에 있는 빨판으로 해양생물의 피부에 있는 지방 성분을 감지해 먹잇감인지 파악한다. 빨판으로 맛을 보는 셈이다./Peter Kilian

문어보고 숙회만 떠올리면 안 된다. 무척추동물이지만 포유류에 맞먹는 지능을 갖고 있다. 여덟 개 다리를 팔처럼 사용해 수조의 잠금장치를 풀고 미로(迷路)도 생쥐만큼 잘 탈출한다. 간단한 도구도 사용한다.

문어의 팔에 또 다른 능력이 추가됐다. 팔에 달린 빨판이 혀가 된다는 사실이다. 문어는 팔에 닿는 물체가 먹이인지 피해야 할 대상인지 미리 간을 보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벨로노(Nicholas Bellono) 미 하버드대 분자세포생물학과 교수와 라이언 힙스(Ryan Hibbs)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병원 신경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문어와 오징어의 빨판에는 각자 서식 환경에 특화된 맛 감지 수용체 단백질이 있다”고 밝혔다. 힙스 교수는 현재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 있다.

문어 사진이 실린 2023년 4월 13일자 네이처 표지. 문어가 팔에 달린 빨판으로 먹잇감을 건드려 맛을 본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Nature

◇빨판이 촉감과 맛을 동시에 감지

과학자들은 문어, 오징어 같은 두족류(頭足類)가 다른 동물과 달리 독특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예를 들어 문어는 뇌보다 팔에 더 많은 신경세포가 있다. 덕분에 각각의 팔이 따로 뇌가 있는 것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문어는 팔마다 200개 이상 달린 빨판으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먹잇감의 맛까지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의 벨로노 교수는 지난 2020년 셀지에 ‘캘리포니아 두점박이 문어(학명 Octopus bimaculoides)’의 빨판이 먹잇감에 닿으면 다른 물체를 감지할 때와 다른 신경신호가 전달된다고 발표했다. 빨판에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촉감과 맛을 동시에 감지하는 것이다.

벨로노 교수는 이번에 텍사스대의 힙스 교수와 함께 저온전자현미경으로 문어의 빨판에 있는 화학촉각 수용체(chemotactile receptor)가 단백질 5개로 구성된 원통 구조임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도 26개 발견했다. 이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맛을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어 빨판의 맛 수용체는 물에 녹지 않는 기름 분자에 결합했다. 물고기 피부나 문어의 알, 또는 바다 밑바닥의 화학물질이 대부분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이다. 문어는 바다 밑바닥에서 팔에 닿는 물체가 먹잇감인지 아니면 보살펴야 할 알인지 간을 보는 셈이이다. 물에 녹는 물질은 다른 신경전달물질 수용체가 감지했다.

문어 팔에 달린 빨판. 먹잇감이나 물건을 붙잡아 촉감을 감지하는 동시에 지방성 물질을 받아들여 맛까지 볼 수 있다./Anik Grearson

◇매복 사냥하는 오징어는 쓴맛까지 감지

연구진은 같은 두족류인 오징어도 빨판에 비슷한 구조의 맛 수용체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전자를 해독한 결과, 문어와 오징어는 3억년 전 공동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각각 독자적으로 맛 수용체 단백질을 진화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문어와 오징어의 빨판에 있는 화학촉각 수용체는 모두 사람처럼 신경전달물질을 감지하는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에서 유래했지만, 오징어의 단백질이 주로 수용성 분자를 감지한다는 점에서 좀 더 원형과 비슷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문어와 오징어가 사는 환경이 달라 빨판의 혀도 다르게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문어와 오징어는 모두 팔에 달린 빨판으로 먹잇감을 낚아챈다. 하지만 사냥법은 다르다. 문어는 먹이를 잡을 때 여덟 개 팔을 모두 쓰며 오징어는 10개 중 빨판이 있는 촉수 두 개만 쓴다. 빨판도 오징어가 적다. 벨라노 교수는 “오징어가 적은 수의 빨판으로 환경을 파악하다 보니 물에 녹는 분자만 감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징어는 물에 녹는 쓴맛 분자를 감지하는데, 이는 오징어의 매복 사냥에 적합한 방식이다. 쓴맛이 감지되면 독성이거나 해로운 물질로 감지하고 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문어가 감지하는 물고기의 피부 지방은 물에 녹지 않아 오징어처럼 떨어진 채 감지할 수 없다. 문어는 오징어처럼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팔로 건드리고 먹이인지 간을 본다. 일종의 탐사형 사냥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미세한 구조적 적응이 어떻게 특정 생태 조건에서 새로운 행동을 낳는지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클리프 랙스데일(Cliff Ragsdale) 미 시카고대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그렇게 빨리 많은 통찰력을 얻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라며 “이번 발견은 앞으로 빨판이 어떻게 문어의 뇌에 감각 정보를 보내고 또 뇌가 이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같은 많은 질문을 제기했다”고 평가했다.

사우스웨스턴병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한국인 과학자 강깊은 박사와 김정주 박사는 문어의 맛 수용체 구조를 밝힌 네이처 논문에 공동 제1 저자로 등재됐다. 강 박사는 숙명여대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포스텍을 나와 독일 카셀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박사는 문어와 오징어의 화학촉각 수용체 비교 논문에도 공동 제1 저자로 등재됐으며, 김 박사는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22-1

Nature(2023), DOII: https://doi.org/10.1038/s41586-023-05808-z

Cell(2020),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0.0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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