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엄마는 매일같이 도자기를 빚었다[플랫][싸우는 여자들]
싸우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노동환경이나 성차별적 편견만이 아닙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싸우고,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과 싸우고, 잊혀져가는 기억과 싸웁니다. 실제 ‘싸움’이 직업인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항상 싸움의 연속입니다. 플랫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대상과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지, 지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지, 온갖 역경과 방해물에도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갑옷’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싸움의 온도와 단계도 함께 담아볼 예정입니다. 싸우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로 오인 받아서 손 한 번 못 잡아주고 눈물 한 번 못 닦아주고 그렇게 너를 보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그 못다한 모정을 엄마는 요즘 흙으로 모자상을 빚고 있다, 유엽아. 엄마처럼 상처받고 가족 잃은 사람들이 엄마가 만든 모자상 보고 조금이나마 용기 얻으라고, 위로 받으라고..
- -2022.02.16. 미디어아트 ‘비손’ 공연 中 故 정유엽군의 어머니 이지연씨(55) 발언 일부
지난해 2월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이지연씨(55)가 감정을 토해냈다. 이씨 부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18일 아들 정유엽군(당시 17)을 떠나보냈다. 방송반 활동을 열심히 하고 둘째형을 따라 해양대를 진학하고 싶어하던 애교 많은 막내아들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혼란 속, 검사만 14번 받는 동안 제대로 된 치료시기를 놓쳐 끝내 사망했다. 사인은 중증 폐렴이었다.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005212130025
지난 10일 찾은 경북 경산시의 이씨 자택엔 여전히 막내아들 유엽군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들을 본 뜬 도자기, 자신이 아들을 안고 있는 듯한 모자상 등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자주 울었다. 코로나19 확진자로 오해받고 계속 아프기만 하다가 떠난 아들을 마지막에 안아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했다. “제가 울보예요. 아들이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요.” 아들을 잃은 지 3년이 넘었지만, 엄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유엽이를 한번만 안아줄 수만 있다면...”
이씨의 싸움은 아들의 황망한 사망 이유를 묻는 데서 시작했다. 재난 응급상황에서 발생한 의료공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공공의료 확충 등 사고 재발방지를 담은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탄원서 서명을 받기 위해 이씨 부부는 지역 곳곳을 돌아다녔다. 경산시의회 의원들 일부는 서명 요청을 외면한채 병원을 두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씨가 밤새 고민해 길게 적어 전송한 문자는 무시당했다. 이씨는 그때 “정말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실 별거 없거든요. 같이 아파해주는거. 그게 인간적인 도리 아닌가요?” 이씨가 말했다. 작은 김밥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엄마 이씨가 사회 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들의 사망 이후 3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씨 부부는 아들이 전전해야 했고 코로나19 검사 오류를 낸 병원 2곳과 지자체,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싸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씨 부부는 ‘시의원을 욕하고 다닌다’ 등 거짓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이 이씨 부부에게 힘이 됐다.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청와대 앞에서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씨가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 건 싸움을 결심하기로 한 시점이다. 우연히 들른 공방에서 마당에 놓인 모자상을 보고 눈이 번쩍 떠졌다. 엄마가 아들을 뒤에서 안아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엽이를 한번만 안아줄 수만 있다면...’ 이씨는 아들을 떠올렸다. 그는 “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상이 참 따뜻하게 보였다. 유엽이를 너무 안아주고 싶더라”며 “코로나19로 오인받아 아이 혼자 먼길 떠날 때 무섭고 두려웠을 것 같은데, 묘지에도 혼자 있잖나. 모자상을 묘지 옆에 두면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모자상을 선물 받았고, 아들 묘지에 뒀다. 이씨는 자신이 위안 받은 모자상을 직접 빚고 싶어졌다. 공방을 다니며 배웠고, 지금도 열심이다. 공휴일에 아침부터 해가 질때까지 도자기를 빚은 날도 있다. 직접 빚은 모자상에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새겨 묘지에 두고 온 날, 이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같이 있으니까 서운해 하지마.”
이씨의 남편 정성재씨(58)는 직장암 3기 투병 중에도 2021년 아들 1주기에 경북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약 380km 거리를 도보행진 했다. 정씨가 천릿길을 걷는 동안 이씨는 더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씨는 도자기를 빚으면서 싸움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김질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3170600001
이씨는 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싸움을 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다잡을 때 “도자기를 빚었다”고 했다. 이씨의 싸움의 무기는 도자기 빚기였다.
도자기에 ‘얼굴 표정’을 담기까지...
도자기 빚기를 막 배운 이씨가 얼굴을 표현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도자기를 만들고 1년 반 정도 동안 이씨가 만든 수많은 모자상에는 ‘눈 코 입’이 없다. 이씨는 “얼굴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자꾸 슬프게 만들어졌다. 그 표정을 보면 저도 슬퍼지고 힘들어져 얼굴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유엽아, 누가 엄마한테 그러더라. 떠난 자를 기억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은 천국 간다고. 그래서 너도 천국 갔을 테니 행복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런데 아니지 유엽아? 우리 집에 있는 게 더 좋잖아, 그치?
- -2022.02.16. 미디어아트 ‘비손’ 공연 中 故 정유엽군의 어머니 이지연씨(55) 발언 일부
이씨가 초반에 만든 도자기는 모자상의 형태를 띈 조형물이었는데, 손을 유난히 크게 빚어냈다. 아들을 꼭 껴안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의 크기’가 느껴졌다.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려는 듯 고개의 기울기도 아래로 훨씬 기울어져 있다. “엽이를 보내고 나니까 누군가를 더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씨가 말했다.
지역주민들에게 탄원서를 받을 때 이씨는 유엽이 사건을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자신이 만든 ‘얼굴없는 모자상’ 전시회도 열었다. 전시를 위해 쓴 글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코로나 의료공백으로 사랑하는 아들 유엽이를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모자상으로 승화시켜, 깊고 따스한 모성애를 통해서 이 세상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이씨는 조금씩 “마음이 치유됐다”고 했다. 얼굴을 채워넣을 용기도 생겼다. 이씨가 얼굴을 빚어낸 모자상은 처음엔 슬픈 표정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표정이 차츰 밝아졌다. 표현방식도 다양해졌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모자상만 표현하다가 아이가 엄마 등에 편히 기댄 모습의 조형물도 만들었다.
올초엔 유엽이를 본 뜬 도자기도 빚어냈다. 옅은 미소를 띈 모습이었다. 이 도자기는 아들 책상 위 선반에 올려두었다. 혹여 잘못 건드려 깨질까 올려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제가 자식을 잃고 보니 어이없게 자식을 잃은 분들이 너무 많더라”며 “마음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는 유가족분들이 제가 만든 모자상을 보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도움이 된다면, 전시회를 열고 유족 혹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 모자상을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기증하고 싶은 곳은 병원이다. 이씨는 아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중간 정산을 위해 병원 수납창구에 가야 했다. 이씨는 “치료를 위해 가는 곳이 병원인데, 입구에 들어서서 바로 눈에 보이는게 수납창구인게 저는 좀 힘들었다. 수납창구 옆이나 수술실 앞에 모자상을 두면 조금이나마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도자기를 빚으면서 마음을 다독인 이씨는 “싸움을 하면서 포기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씨가 다니는 성당의 수녀님은 “한 가정이 무너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모든 정성을 쏟았다. 공공의료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단체를 만나고 응원 받았다. 주변의 지지는 이씨가 싸움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추진력이 됐다.
길고 긴 싸움은 현재진행형, 멈출 수 없는 이유
싸움의 끝은 어딜까. 이 아픔은 잊혀질 수 있을까. 아들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던 공공의료 공백은 채워질 수 있을까. 이씨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던 일을 꺼냈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위해 2020년 6월 서울을 찾았을 때 였다. 세월호 참사 발생 6년이 흘렀는데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씨는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괜찮아지나요?”
- -이씨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이 더 아프고 그리워요.”
- -세월호 유가족이 답했다
이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감정이더라”고 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 있잖아요. 그거 다 아닌거야..” 이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구멍이 숭숭 뚫린 공공안전·의료 체계를 맞닥뜨리면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마음은 계속 다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의 사망사건 이후 이씨는 조금더 시선을 넓혀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추모기간에 노란 리본 나눠주기에도 함께 한다. 지난 12일 세월호 9주기를 맞아서도 이씨 부부는 함께 했다. 지난달 18일 정유엽 사망 3주기에 경산에서 열린 추모콘서트엔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참석했다. 이들 모두 국가와 공공영역이 안전을 지켜주지 못해 벌어진 비극이었다. 국가와 공공영역이 계속 외면하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중이다.
이씨는 “정작 국가는 유엽이 일을 개인의 의료분쟁쯤으로 축소하려는 것 같다”며 “마치 ‘뾰루지’ 하나 같은 것으로 보는 거다. 하나 가지고 왜이렇게 유난을 떠느냐는 건데, 그대로 놔두면 더 번질 수 있다.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고 빨리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엽이 사건이 점점 잊혀지는게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제가 두려운 건 유엽이 사건을 겪고도 우리나라의 의료응급체계, 공공의료 확충 문제가 바뀌지 않고 넘어갈까봐, 그게 두렵다”고 답했다.
대구지역에선 ‘제 2대구의료원’을 짓는 사업이 검토됐지만, 기존 의료원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결론 나오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이씨 부부는 “현재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의료기관의 5%뿐으로, 이 수치를 15~25%까지만 끌어올려도 어떠한 질병이나 감염에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방에 간다는 이씨는, 3시간 정도 지나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도자기를 빚는 모습이 담겼다. 흙으로 빚어낸 여성의 얼굴이 묵묵한 책임감이 담긴 이씨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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